춘추칼럼

국토를 박물관으로 가꾸자

서원·정자등 복원 문화공간 활용… 국가브랜드 높이는 계기 삼아야
   
▲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
여행의 자유화와 국민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우리 국민들은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역사가 오래된 나라들이나 산업이 발전한 나라, 자연환경이 빼어난 나라,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진 나라 등등. 국민들의 이러한 여행과 교섭의 경험은 동시에 각 지방자치단체들에도 영향을 미쳐 지방자치단체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어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하려는 노력을 가져왔다.
어떤 곳은 외국의 도시를 흉내내어 집들의 색깔을 바꾸는 곳도 있고, 외국 유명 건축가들로 하여금 건축하게 하는 곳도 있으며, 외국 축제를 본따서 축제로 특화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나 자기 지방을 잘 되게 하려는 생각은 동일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과연 우리의 삶의 모습에 얼마나 부합하는 것인지는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들이 그것 때문에 한국을 다시 찾고 그 도시를 다시 찾는 것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세계 여러 나라들을 어지간히 둘러 본 후에 내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의 변화는 남의 나라들을 들여다 보던 것에서 시선이 안으로 돌아와 내가 사는 이 땅을 진지하게 다시 들여다보는 자세이다. 다른 나라의 것을 자세히 알면 알수록 내가 사는 우리 조국에 더 애착이 가는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 떠오른 한 생각이 전 국토를 박물관으로 가꾸는 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세계 여러 섬을 보고 제주를 가본 사람이면 해안선이 그렇게 아름답고 다양한 모습을 가진 섬은 흔치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화산섬 겹겹의 역사 속에 남아 있는 삶의 모습들과 이야기, 높은 한라산과 완만한 기생화산들, 그들이 만들어낸 숲과 길들이 모두 박물관 아닌 것이 없다.



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남해안의 아름다운 항구들과 그리고 다도해에 떠 있는 섬들, 이를 생태친화적으로 가꾸고 해상교통로를 개발하면 남해안은 참으로 멋진 물의 나라다. 목포, 신안, 영암, 강진, 남해, 통영, 거제, 부산 등으로 이어진 도시들에는 문학과 예술과 역사들이 층층으로 쌓여 있다. 경주는 인류 역사에서 흔치 않은 세계적인 역사와 문화가 축적된 도시이다. 고대 문명교류의 중심이었던 제국 신라의 찬란한 모습은 아직도 땅속에 묻혀 있다. 신 경주를 만들어 현 주민을 이주시키고 한반도내 천년 고도의 도시를 완전히 복원하는 것은 한 국가단위를 넘어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적인 프로젝트다. 양동마을은 민속마을로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가 인정한 자랑거리이고, 안동은 조선의 유교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부여와 공주는 오랜 고도인 동시에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증명하는 현장이다. 일본 역사의 원류지로서 재조명하고 가꿀 곳이다. 익산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역사도시다. 산성위에서 내려다 보면, 익산들에 펼쳐진 들과 산과 마을과 역사유적은 그 전체가 온통 자연박물관이다.

남한강은 그 강 전체가 역사요 문화요 문학이다. 낙동강도 그러하거니와 금강도 마찬가지다. 강만 이런 것이 아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사찰들과 종택들, 그리고 서원과 정자들은 한반도 전역에 박혀 있는 반짝이는 보석들이다. 이러한 건축물들이 들어선 곳을 보면, 우리의 풍수사상에 따라 그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생태적인 환경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건축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주위의 근경과 원경의 복합경관 전체가 하나의 예술이다. 정자를 다시 손질하고 종택들을 모두 복원하여 단장하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오늘날의 문화유산은 원형보존으로 엄격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도 있으나, 문화유산 속에서 삶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활용보존도 문화향유권의 차원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서원과 정자들을 복원하여 지방의 문화·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종택들을 활용보존함으로써 역사의 향기 속에 우리 삶을 다시 쪄내는 일을 한다면 삶의 품격을 훨씬 올릴 수 있다. 국가브랜드라고 하여 당장 팔아먹을 것을 찾는데 급급하거나 눈앞의 돈만 보고 축제를 벌일 것이 아니라, 과거와 연결된 현재 속에서 한국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국토를 박물관으로 가꾸는 일을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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