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한국은 보수의 나라다

정치 아킬레스 건 지역볼모주의… 해법은 개헌아닌 중대선거구제
   
▲ 전용배 (동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스포츠사회학의 관점에서 체육·스포츠를 규정할 때,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체육·스포츠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는 개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포츠는 체제의 안정없이는 성장이나 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축구 강국이던 중동국가들이 최근 기량이 떨어지는 원인도 체제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즉 스포츠는 이념도 필요 없고, 정치권력이 좌든 우든 상관없다. 스포츠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오직 '체제안정'만을 바랄 뿐이다. 따라서 스포츠는 '운명적 보수'이다.

그렇다면 스포츠만 보수적일까. 아니다. 유교사상이 지배한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보수의 지배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물론 정치성향이나 대북정책, 정부의 시장개입 정도와 같은 정책적인 관점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의미 있게 구분되기도 하지만, 삶의 방식이나 조직문화와 같은 추상적 개념에서는 보수의 틀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아직도 한국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이다. 기존 질서에 대한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진보적 관념과 사상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넘어야 할 벽이 첩첩산중이다.

정치적으로도 노무현 정권 정도가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진보적 정책을 제대로 펴 본 적은 없다. 임기 중에 '좌파정부'라는 색깔공격에 시달렸던 노무현 정권의 어떤 정책이 진보정책이었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노무현 정권의 임기 초를 생각해보자. 카드대란의 후유증으로 인한 임기 초반의 경제위기, 한나라당 145석·민주당 62석·열린우리당 47석·자민련 10석의 의회구성, 언론의 색깔공세 상황에서, 어느 대통령이 진보 좌파적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후, 어느 자리에서 "진보적 가치를 표방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분배정책은 꺼내보지도 못했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열린우리당, 민주당, 한나라당의 정책은 대북정책과 국가보안법 정도를 제외하곤 차이가 거의 없었다. 복지정책의 확대와 종부세는 국가라는 존재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였지, 진보·좌파적 정책이라 할 수 없다. 나름대로 진보적이라는 민노당의 지지율과 의석수를 보라. 한국사회에서 진보가 살아남고 성공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등가적으로만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물적 토대에서 상대가 안 된다. 스포츠로 치면 NBA드림팀과 고등학교 팀의 경기와 같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개개인의 호불호이며, 상식과 비상식, 합리와 비합리, 소통과 막힘에 대한 갈등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념적으로 규정하라면 '보수와 보수'의 갈등일 뿐이다.

보수정치가 주를 이루는 한국정치의 가장 아킬레스건은 사실 '지역볼모주의'이다. 이 구도의 최대 수혜자는 경상도를 볼모로 잡고 있는 한나라당이고, 전라도 기반의 민주당은 반사이익을 보고 있고, 충청도에 집이 있는 자유선진당은 '떡고물'을 묻히고 있다. 모두가 혜택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나라당의 독식구조이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선거에서 전라도가 한 후보자에게 95% 투표해봐야, 경상도 50% 투표면 게임 끝이다. 따라서 지역주의도 등가적으로만 평가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헌법 개정이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법부터 중대선구제로 바꾸어야 한다. 지역민들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이 일은 오직 확실한 지역 기득권을 가진 한나라당이 나서야만 가능하다. 진보가 이 땅에 꽃을 피우는 일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보수의 나라 한국에서, '보수주의자'로 자처하지만, 제대로 된 보수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고만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 누가 많이 먹었는지는 스스로가 알 것이다. 모든 사람을 잠깐은 속일 수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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