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강원도가 뿔났다

주요현안마다 실패 또는 답보상태… 무뚝뚝한 감자바위들이 본격 행동
 
▲ 전상국 (소설가·김유정문학관 관장)
[경인일보=]강원도에 가면 당신도 자연이 된다.

1998년 개봉된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는 그 제목부터가 달콤 섬뜩한 종래의 그것들에 비해 사뭇 낯설었다. 그러나 영화 내용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그 제목을 계기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의 힘'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낙후와 불모의 땅, 무대접 푸대접으로 홀대 받았다는 뿌리 깊은 피해의식에 빠져 있던 강원도 땅 강원도 사람들이 비로소 강원도의 힘을 다양한 패러다임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즈음부터였을 것이다.



강원도의 힘은 무엇일까. 영화 '강원도의 힘'은 결별의 상처를 가진 남녀가 각기 강원도 여행을 하면서 그네들이 지난 날 나눴던 사랑의 애틋함을 다소 칙칙한 톤으로 회상하는 내용으로, 인간 내면의 심리 흐름이 강원도를 배경으로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강원도의 자연을 통해서 피폐한 그네들의 가슴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

자연은 인간 감성의 근원이다. 이제까지 잊고 산 질 좋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는 자연 앞에 서는 순간 숨김없이 드러난다.

오솔길에 들면 저절로 노래를 부르고 자연예찬의 삼행시를 짓는다. 아이들은 환호하고, 어떤 이들은 자연의 신비를 스케치북에 옮기는 등 그 감동이 거침없다.

자기 안에 감춰져 있던 아티스트 본능의 꿈틀거림이다. 자연 속에서의 이러한 문화충동이야말로 남들 사는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기에 바빴던 도시적 삶의 각성이며 자기가 꿈꾸고 있는 자기 본래의 모습을 비로소 찾았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마음의 여유를 찾은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거대 괴물도시 예찬이 아닌 충청도의 힘,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산골 마을의 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DMZ,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얼마 전부터 강원도 사람들은 강원도의 새로운 힘으로 반세기 넘게 휴식을 한 DMZ(비무장지대)를 내세우고 있다. 분단 고통과 그 상흔의 상징인 DMZ가 버려진 땅에서 생명의 신비를 담은, 생태자원의 보고로, 남북 화해 평화 통일의 전진 기지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대도시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인 상수원, 그 물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갖은 불이익을 감수해 왔듯 반세기 이상 살아 숨 쉬고 있는 공포의 그 지뢰밭 속에서 살아왔다. 함부로 발 들여 놓을 수 없는 그 무수한 선들에 의해 삶의 불편을 겪어온 접경지역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애증이 서서히 DMZ에 대한 자긍심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8월 14일 강원도 고성 명호리 민통선 안쪽에 비무장지대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DMZ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9월 18일에는 인제군 서화면에 DMZ 평화생명동산이 비무장지대 가치의 전국화, 세계화를 향해 문을 연다.

이제 DMZ는 강원도의 가장 매력 있는 관광 명소로서 떠오르고 있다. 여전히 긴장의 공간이지만 그만큼 환상과 동경의 땅으로, 축복받지 못한 그 땅이 우리의 미래를 여는 기회의 땅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로 지금 강원도 사람들은 많이 바쁘다.

그런데 요즘 강원도 땅, 강원도 사람들이 몹시 화가 났다. 정부의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가 무산됐고 지지부진한 SOC확충,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지정 불투명 등 주요 현안이 실패하거다 답보상태다.

이에 도민들은 첨복단지 재선정 촉구 상경집회를 하는 등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조선시대 윤행임이 '강원도 사람은 바위 아래에 앉아 있는 부처님 격으로 누가 알아주든 말든 자기 할 일 해나간다' 라고 적은 그 암하노불들이 지금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선 것이다.

모든 일을 정치판 그 꼼수로 풀어가는 일에 능한 거시기한 그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무뚝뚝 강원도 감자바위들이 왜 뿔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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