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0 시민 인문학강좌·8] 육상효교수의 '영화는 인문학을…'

공산품에 불과한 영화에 인본주의의 씨앗을 심다
[경인일보=정리/정진오기자]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와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으로 마련한 '2010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상반기 마지막 강연이 지난 29일 오후 2시 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열렸다. 이날은 영화감독으로도 유명한 육상효(사진)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영화감독)가 '영화는 인문학을 어떻게 수용하는가?'란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그동안 빠짐없이 수강한 시민들에게 수료증을 전달하는 시간도 가졌다. 하반기에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상생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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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요지>영화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에 걸쳐서 발명되었다. '발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처음에는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마술과 같이 아주 신기한 볼거리이자 신기한 기술에 불과하였다. 발명왕 에디슨까지 이 신기한 기술의 발명에 한 몫 했다. 사람들은 이 움직이는 사진들에 열광했다. 영화 속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보다가 놀라서 혼비백산 객석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이 영화가 이야기의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30년 정도가 더 지난 다음이다. 신기한 볼거리로서의 신선감이 사라질 무렵 영화업자들이 영화 속에 이야기를 접목하는 것이 더 강력한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후 영화는 인문학의 다양한 사유를 서사화하면서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예술양식으로 부상하였다.



미국의 이야기 학자 로버트 맥기는 "영화는 삶의 은유"라고 했다.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서 현실의 삶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혹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결국은 자기 인생의 정체를 알아간다는 의미에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좋은' 영화는 결국은 영화가 끝났을 때 '그래 인생이란 결국 이런 것이야'라고 하는 발언들이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영화와 인문학의 접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영화 역시 인간의 이야기로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예술이니까 말이다. 영화가 산업으로서의 시장의 논리에 침윤되어 실용적 상품으로만 달릴 때 그것을 인간에 대한 예술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도 언제나 인문학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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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영화는 같은 이야기 매체이다. 그러니 인문학 중에서 문학은 영화와 가장 가까운 매체라고도 볼 수 있다. 수많은 소설, 희곡, 시들이 영화로 각색되었다. 이제는 영화의 대본인 시나리오도 문학의 한 분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화와 문학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메를로 퐁티라는 프랑스 현상학자는 "영화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인지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문학이 글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반면 영화는 영상과 소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퐁티의 이 말 속에 영화의 한계와 또한 가능성이 함께 들어있다. 문학이 글로서 표현했던 모든 것은 영화 속에서 다시 영화의 방식에 의해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문학에서 이야기를 빌려왔지만, 그 이야기들은 영화적인 방식으로 다시 재편된다. 이 영화적인 각색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영화로서의 고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문학적 고전에 대해 열등하지 않다. 오히려 워낙 강력해 영화의 방식이 문학의 기술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소설들의 표현 방식을 보면 예전 소설보다 훨씬 더 시각적이라는 것에서 영화가 문학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가 역사를 보는 입장은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영화는 당대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언제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갈등이 없으면 갈등을 만들고, 악한 자가 이기는 역사를 선한 자가 이기는 역사로 만들고, 아름다운 여인이 필요하면 역사 속에 아름다운 여인을 만든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보면 광대들이 임금 앞에서 여러 공연을 하면서 중국의 경극까지 공연하는 장면이 있다. 한국의 공연문화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조선시대에 중국의 경극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과 공연문화의 교류가 많지도 않았고, 조선 시대에 경극을 공연했다는 기록도 전혀 없으니까. 영화 제작진도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경극 장면을 넣기로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광대들의 경극 공연이 시각적으로 화려한 것을 바랐던 감독의 의도에 맞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는가? 영화는 초유의 성공을 거두었고 아무도 이 경극 장면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영화와 철학의 관계도 그 시작에 있어서는 영화와 문학의 관계만큼이나 불편했다. 많은 철학자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실체 없는 그림자가 진리에 대한 접근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영화를 비난했다. 하이데거는 "영화는 진기하지만 이와 동시에 정말 상투적인 상상력의 영역으로 관객들을 실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전혀 관계없는 세계에 대한 환상을 제공해준다"고 영화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철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20세기의 주도적 예술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엄청난 대중적 파급력으로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철학자들도 이제 이 뚜렷하고 강고한 세계와 대면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2009년 말에서 2010년 초는 전세계적으로 '아바타'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전세계적인 흥행 기록들을 갈아치웠고, 한국에서도 '괴물'을 제치고 역대 흥행 1위의 영화가 되었다. '아바타'가 성공한 이유로 3D 기술이나 디지털 테크놀로지 등 기술적인 것들이 거론된다. 하지만 '아바타'의 성공은 그 이야기의 새로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인문학이 영화와 맺는 관계는 자명해진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수천억원에 이르는 거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에서 동시에 수억명의 관객을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는 언제나 강한 산업의 논리가 있다. 인문학은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은 그 산업의 논리로부터 영화를 인간을 위한 예술로 돌려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 Humanities는 영화에서 인본주의 Humanism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보편성을 길어서, 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철학은 그 이야기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화는 곧 시장의 상품이나 신기술의 공산품 정도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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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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