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꽃배달이요!

새해 동영상 선물에 지인들 감동… 꽃 피어나듯 성취하는 한해 되길
   
▲ 김구슬 (협성대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시인)
'꽃배달이요!' 좋아하는 분들에게 새해인사차 꽃배달 동영상을 보냈다.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제각기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못해 황홀하다. 동영상의 첫 배경에서 흰 장미가 함초롬히 우리를 꽃의 삶으로 안내한다. 제일 먼저 새빨간 장미가 정열의 꽃잎들을 생동감 넘치게 펼쳐 보인다. 뒤이어 꽃망울을 터뜨리는 노란 수선화, 보랏빛 패랭이, 하얀 백합, 빨간 카네이션, 흰 국화, 노란 해바라기, 진분홍 철쭉에 이르기까지 때론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꽃들의 향연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돌아 나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꽃들의 자기실현이었던 것이다. 꽃을 피워내는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장미 스스로에 쏟은 값진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퍼뜩 작은 것이 주는 기쁨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란 쿤데라는 "오직 소설만이 사소한 것의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힘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건만, 아무리 미세한 생명체라도 그 안에는 풀 길 없는 신비가 내재해 있는가보다.

평소 존경하던 원로 선생님 한 분이 곧바로 전화를 주셨다. "김선생, 이거 어떻게 된거지? 잘 안열리는데?" "선생님, 비디오 플레이할 때처럼 삼각형 모양을 한번 눌러 보세요." "응, 그래, 그래." 선생님은 잠시 후 다시 전화를 주셨다. "김선생, 이거 너무 멋진데? 감동이야, 감동! 김선생, 이런 거 어떻게 알았어? 정말 좋은데?" 평소 근엄하게만 보였던 선생님이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걸 보니 정말 감동을 느끼셨나보다. '그래, 잘했어. 사실 감동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 나오는 거야. 사람들의 마음은 똑같은 거라니까' 혼자 흐뭇해할 새도 없이 연이어 답장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온다. '향기로운 새해 맞이하시길' '향기가 아주 좋습니다' 등 뛰어난 후각을 자랑하는 감각적 답신에서부터 '보내주신 꽃 비디오 교수님처럼 넘 예쁘네요' 등 아부 내지 격려형 답장, 그리고 '선생님의 귀한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데…' 등 자책형 답신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문자 메시지를 받으며 나의 선택에 내심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처럼 작은 것이 이토록 큰 기쁨과 감동을 주는데 왜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하며 싸워야 하는가? 욕망의 현실 앞에서 작은 것의 가치는 더욱 작아지는 것이 아닐까? 연전에 이집트를 여행하던 중 권력과 욕망의 화신인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 오지맨디아스의 거상을 룩소르신전 앞에서 바라보면서 '왕중왕'을 외치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던 기억이 있다. '내 이름은 오지맨디아스, 왕중왕이로다./ 나의 위업을 보라, 너희 강력한 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그 주변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 거대한 잔해의/ 부식 주변에는, 끝없이, 풀 한 포기라곤 없이/ 고적하고 평평한 사막이 저 멀리까지 뻗어 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의 '오지맨디아스'의 일부인 이 작품에서 셸리가 적확하게 포착한 것은 '아이러니'와 '상징'이다. 인생은 기대와 다르게 진행된다는 '아이러니'를 강조하면서 '오지맨디아스'를 '아이러니'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람세스 2세는 인생이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최고 권력의 야망과 영생의 꿈에도 불구하고 그 주변에는 잔해만 남아 있고 고적한 사막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새삼 이 작품의 의미를 되씹어보는 것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면서 3대 세습을 시도한 또 다른 전제군주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속적인 권력이나 영광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2011년의 마지막 날, 송년음악회에서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신영옥의 노래를 들으며 잠시 현실을 잊고 있었다. 예술이야말로 현실의 과도한 욕망을 해소하고 이를 승화시켜줄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날 즈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해요'라는 문자를 보내는 깜짝이벤트도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에게 '사랑해요'라는 문자를 날렸다. 내가 처음 '꽃배달이요!'의 동영상을 받은 그에게. 2012년 흑룡의 해, 우리 모두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공감과 사랑으로, 작지만 값진 자기실현을 해나가는 소중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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