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 인문학강좌

[2012 하반기 시민 인문학강좌·8]일제강점기 '장소의 정치'

식민지 고착화위해 계획적 지명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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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주먹 영화'에서 '혼마찌(本町)'라는 지명이 자주 언급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중심가를 일컫는 혼마찌가 여전히 우리의 지명 속에 녹아 있다. '중앙동'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또한 인천의 경우 '계양'과 '부평'이 둘로 나뉘어 있었는데, 원래 계양산 부근이 부평의 핵심 지역이었고, 현재 부평의 중심지인 '부평역' 부근은 일제가 새로 군수기지로 개발한 '신 부평'이라는 점도, 우리에게 남은 일본식 지명과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 4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2012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하반기 8번째 마지막 강좌에서는 전종한 경인교대 교수가 나와 '일제강점기 일본식 지명의 생산과 장소의 정치-原仁川 지역의 사례'란 주제로 강연했다.



전종한 교수는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일본인이 유입되면서 일본식 지명이 자리잡게 됐고, 일본 조계지 내에서의 일본식 지명은 '거류민회'에 의해 자유롭게 명명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본식 지명의 부여 과정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특히 일본인들은 조선인 고유 지명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원래 의미를 퇴색케 하기도 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이를 '장소의 정치'라고 했다.

전 교수는 또 일본인들의 지명 생산 방식을 ▲일본식 지명 부여 시스템의 적용 ▲제국주의적 기념비의 각인 ▲일본풍 유흥 문화의 이식 ▲전통 지명의 식민지적 해체를 통한 재구성 등 4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전 교수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해군 군함 명칭인 '松島(마츠시마)'에 주목했다. 송도는 일본인들이 연수구 옥련동 일대를 '송도정(松島町)'으로 정했는데, 일본인들의 전승 기념물인 '송도'라는 이름이 광복 직후인 1946년에 옥련동으로 환원되었다가 오늘날 '송도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인철도역에 '부평역' 명명
전통적 중심지 위치 잊게해
일본인 전승기념물인 '송도'
오늘날 신도시 이름 재등장


또한 전 교수는 '조선인의 전통적인 장소 기억을 해체한 사례'도 예로 들었다. '축현'이란 지명이다. '싸리재'라고도 불리던 '축현'이 경인선 개통 당시 철도역의 이름이기도 했는데, 일제는 1907년에 현재의 동인천역으로 축현역을 옮기고, 원래의 축현 자리에 다른 일본식 이름을 붙이고, 옮긴 축현역은 1926년에 상인천역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전통 지명 → 지명과 장소의 분리 → 일본식 지명으로의 대체'라는 수순을 통해 일제는 식민지적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했다는 것이 전 교수의 해석이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 교수는 또 '부평'을 꼽았다. 부평의 전통적 중심으로부터 남쪽으로 수㎞떨어진 경인선 철도역에 '부평역'이라는 지명을 부여함으로써 수 백년을 이어온 부평의 전통적 중심지를 망각케 하고 새로운 부평을 '진짜' 부평으로 각인함으로써 권력 관계와 지역 구조의 식민지적 재편에 일조했다는 것이 전 교수의 시각이다.

전 교수는 "일제시기 지명에는 식민지 경영의 효율화와 고착화를 직접 의도한 지명들도 있었고,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와 다른 문화 집단으로서의 일본식 문화의 단순 이식과 관련된 지명들도 있다"면서 "일본식 지명의 생산방식과 그 속에 담긴 일제의 실천과 장소의 정치에 대해 다각적으로 조명할 때 우리는 일본식 지명의 본질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삶을 둘러싼 지명들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본질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정진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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