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승 아주대 사학과 교수
일부 권력엘리트들 집단부패
국가명운 걸린 심각한 문제
신뢰·질서 파괴시키며
사회적구조 변화시키기도
사익 앞세운 사람들 공직에
발 못붙이게 강력한 조치 필요


역사적으로 볼 때, 부패 특히 엘리트 집단의 부패는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다. 동아시아의 많은 왕조들이 부패로 몰락했고, 현대 한국의 역대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왕조지배층이건 현대국가의 권력엘리트들이건 간에 그들의 부패는 곧바로 대규모 정치적 혼란을 발생시키고, 사회적 신뢰체제를 붕괴시킴으로써 국가의 위기까지 초래하였다. 한국현대정치사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부정축재자, 부패정치인 청산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던 것은 그러한 역사적 교훈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부패는 우선 공동체에서 유지되는 신뢰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공적 영역에서는 정부기관의 모든 정책적 판단에 대한 신뢰가 파괴되고, 사적 영역에서는 기업 활동에 대한 시장의 신뢰 역시 파괴된다. 선의를 갖고 정직하게 일한 사람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특정 권력의 이익과 사익을 위해 국가권력과 기업의 자원을 유용하는 부패한 사람들이 존중받는다면 그러한 공동체는 유지될 수 있겠는가?



부패는 신뢰의 질서를 파괴하면서 공동체를 정글사회로 변모시킨다. 사실 자본주의 시장사회는 경쟁과 욕망의 추구를 제도화한 사회라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정글사회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약육강식의 동물사회와 구분되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즉 서로가 합의한 공동체적 질서(법, 관습 등)에 의해 욕망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패는 그러한 조절의 질서를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정글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부패는 또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윤리적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궤변의 논리를 통해서 건전한 개인의 희망조차도 짓밟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부패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무서운 질병과도 같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수능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은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사회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도 곤경을 딛고 성공한 사례가 언론에서 인용될 때, 그것은 모든 문제를 개인윤리적 차원으로 환원시킴으로써 개인의 희망을 좌절시키는 무서운 궤변이 된다.

아무리 힘들고 가난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너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것 때문이라는 논리가 그 배후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많은 권력엘리트들이나 재벌들의 후예들은 손쉽게 집안의 경제력과 인맥을 이용하여 성공의 사다리에 오른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되고, 결과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부패는 세포분열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는 바이러스와 같이 사회를 오염시킨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실시되었고, 다시 국민들은 권력엘리트들의 일상화된 부패와 불법을 보고 좌절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나 권력엘리트 일부는 학습효과 때문인지 그러한 부패와 불법행위를 관대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청와대는 청문절차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대변인이 대독하는' 그들의 사과는 형식적이다. 사실 돈이 중요한 사람은 돈 버는 곳에 있으면 되는 것이고, 공익을 위해 봉사하려는 사람은 그에 알맞은 자격을 갖추면 되는 일이다. 국가기관에 근무하던 자가 로비스트가 되어 법률자문회사나 무기 판매상으로 일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또 일단 그런 방향으로 인생을 전환했다면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그렇게 인재가 없을까.

부패는 사사로운 이익을 좇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맹자는 이익을 구하는 방법을 묻는 중국 전국시대의 왕에게 "왕이 사사로이 이익을 구하면 온 백성들이 이익을 구하게 되고, 사회전체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 모두가 이익을 앞세워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익을 앞세운 부패한 자들이 다시는 공직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부패는 사소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병든 이념'보다도 훨씬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타락시킨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태승 아주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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