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서울 포기하고 수원을 택한 이유

   
▲ 임지원 수원시 권선구 종합민원과
"잘 할 수 있어." 권선구청 첫 출근 날. 나는 거울 앞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벌써 한 달.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처음 해보는 업무라 모든 게 생소하고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기쁨이었다. 직원들과 함께 나눈 점심식사며 힘든 야근도 즐거웠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제설작업도 해봤다.

지난 2011년 3월 나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학원을 찾았다. 그러나 매사 순탄치만은 않는 법. 봄이 막 피어오르는 무렵 응급실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의 교통사고였다. 순간 내 머리에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남독녀 외동이인 나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키워 오셨던가. 하던 공부를 접어두고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대수술을 받은 어머니가 퇴원할 때까지 그 곁을 꼭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 번 결심한 공부를 접을 순 없었다. 어머니를 간병하며 보낸 6개월. 나는 그동안 어머니 병상쪽 침대에 엎드려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공무원이 되고자하는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했다. 이듬 해 치른 첫 시험에서 나는 보기좋게 낙방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낙담하지 않았다. 내 양 어깨에는 구원군이 있었다. 왼쪽 어깨에는 아직 다리가 완치되지 않은 어머니가 있었고, 오른쪽 어깨에는 말없이 딸을 지원해 주신 아버지가 계셨다. 이른 새벽 전철을 타고 서울 학원가에 도착해 늦은 밤 귀가할 때까지 나는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했다. 수험생활 중 가장 높았던 장벽은 외로움이었다. 늘 빈벽에 대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 말없이 책을 봤다. 모의고사 한 문제에 희비가 엇갈리고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그러다가 불현듯 낙심이 몰아칠 때에는 정말 힘들었다. 그럴때면 나는 합격 후 내가 할 일을 정리하면서 의지를 다졌다. 몇 번의 고배를 마시면서 나는 기다리고 기다렸다.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공무원 합격자 발표 순간 나도 모르게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더구나 나는 운 좋게도 '수원시' 뿐만 아니라 '서울시'공무원 시험에도 합격을 했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인생의 진로를 어떻게 결정해야 할 것인지. 하지만 나는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내가 자란 곳, 내가 다녔던 학교가 있는 곳, 지금은 지방자치시대, 내 이웃이 있고 내 은사님이 계시는 곳, 나는 주저없이 수원시를 선택했고, 권선구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더 힘든 순간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수원시민을 위한 무한 봉사자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으리라. 앞 만보고 광활한 초원을 힘차게 질주하는 준마처럼.

/임지원 수원시 권선구 종합민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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