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

[윤상철 칼럼]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민주주의는 문화적 전파이든
국제적 유인이든, 내부적 투쟁이든
쉽게 제도로서 복사될 수 있지만
이를 변함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내·관용·자제·희생등 절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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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취업은 어렵고 미래는 불투명한 헬조선에 산다는 그들이 결코 주눅들고 억압된 존재들은 아니다. 아마도 그들이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낳은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민주화가 가져온 자유와 평등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잘 꾸려져야 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탐욕'으로 비판하고 절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더 많은' 민주주의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긴다. 경제는 상대적이어서 더 많이 추구할수록 더 큰 착취와 불평등을 낳지만, 민주주의는 무한히 추구할 수 있는 화수분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민주주의 역시 이해와 생각이 다른 사람집단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자제와 균형이 이뤄질 때에 유지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과도하면 사회적 균열과 붕괴를 낳기 마련이고 민주주의 없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잘 설계된 헌법은 전제주의를 막는 방파제이자 민주주의의 버팀목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현실 정치에 의해 자주 배반당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잘 설계된 헌법에도 불구하고 링컨시대의 행정부 권력집중과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낳았다. 그 고귀한 헌법은 트럼프의 인종차별과 비도덕적 포퓰리즘을 막지 못했다.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히틀러에 의해 유린당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헌법 역시 바르가스 군사독재정권과 페론이즘에 의해 짓밟혔다. 필리핀은 마르코스 독재에 의해서, 한국은 이승만체제나 유신독재에 의해 얼룩졌다. 2차 대전 이후 신생 공화국들은 미국 헌법을 교본으로 민주주의적인 헌법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하지 못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그들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헌법의 불완전성과 다의성을 지적한다. 나아가서 헌법을 기계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법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한다. 오히려 헌법보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완충적 가드레일의 역할을 하면서 일상적인 정쟁이 전면적인 분열과 내전으로 치닫지 않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 첫번째 규범은 상호관용이다. 정치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서로 권력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치적 경쟁자를 적폐세력 혹은 주사파 친북세력으로 매도하거나, 상대 세력을 배제한 새로운 정치구도를 희망하는 한 이들 사이에 더 이상 민주주의는 없다. 상대세력에 대해 반민주적 폭력이나 대중선동과 길거리정치로 대응하는 한 민주주의는 유지되기 어렵다.

두번째 규범은 제도적 자제이다.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 혹은 법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입법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태도이다. 제도적 자제는 민주주의보다 더 오래된 정치적 전통이기도 하다. 영국의 왕은 총리임명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수당의 대표가 맡는 관습에 따랐다. 미국의 대통령은 두 번의 임기를 넘지 않는 관습을 지켜왔다. 만일 헌법을 기계적으로 해석하여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이른바 '헌법적 강경태도'를 견지하면서,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 결과는 파국적이다.

민주적 헌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행정, 사법, 입법의 3권이 균형과 견제를 유지해야 한다. 의회를 장악한 야당이 제도적 특권을 활용하여 대통령 탄핵을 모의하고, 사법부의 임명을 거부하고, 행정각료의 임면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면,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한 여당이 헌법적 의무보다 대통령의 불법적 행위를 묵인하고 오히려 그 권력 강화에 집중한다면, 그를 위해 입법부의 제도적 관행을 어기고 상대가 반대하는 법률을 일방적으로 세우려 든다면 민주주의는 유지되기 어렵다. 대통령이 행정명령과 사면권을 남용하고 정파적으로 대법관을 임명하려 든다면, 정치인 법무장관이 준사법기관인 검찰을 수사지휘권을 들어 핍박한다면 제도적 자제를 넘어선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탱하게 하는 사회적 규범은 제도정치를 넘어서서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도 필수불가결하다. 사회집단 간의 상호관용이 없다면 그들의 지지에 기반을 둔 정당 간의 상호관용도 존재하기 어렵다. 민주적으로 제도화된 사회에서 자제되지 않는 길거리의 정치와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정체성의 정치는 대통령 등 행정부와 입법부의 자제력을 상실케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문화적 전파이든, 국제적 유인이든, 내부적 투쟁이든 쉽게 제도로서 복사될 수 있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내, 관용, 자제, 희생 등의 가치규범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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