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 '팩트'와 맥락

인천 5·3항쟁 보도… 시위대 폭력성만 강조
경찰 원인제공 다룬 기사 찾아보기 어려워
언론 대부분 '보도지침' 프레임 사건 분석
역사적 의의 무관 '사실 왜곡' 전형적 사례

김창수(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팩트체크'가 저널리즘의 영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언론사 단위로 팩트체크 기능을 강화하고 있고, 고정 프로그램으로 채택하고 있는 곳도 늘어났다. 언론사별 팩트체크 결과물을 공유하는 플랫폼도 구축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의 팩트체크 전문기관도 늘어나 현재 200여개를 상회하고 있으며 팩트체크 결과의 국제적 공유를 위한 네트워크도 조직되어 있어 바야흐로 팩트체크 르네상스를 방불케 한다. 언론혁신운동으로 시작된 펙트체크의 확산 추세는 투명한 정보사회로 가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팩트의 위기, 허위정보나 부실정보의 범람 속에 있다는 지표이다.

사실의 사전적 정의는 명쾌하다. 사실은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이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관찰 주체와 무관하게 객관적인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진술이라는 점이다. 그 일에 대해 지니고 있는 우리의 믿음이나 지식과 무관한 시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존재나 사건을 말한다. 사실은 우선 환상, 허구, 가능성과 대립된다. 환상은 의식의 착란에 의한 가상이며, 허구는 현실이 아닌 의식 내부에서 구성된 사건이며, 가능성은 미래에 사실이 될 확률이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모두 실재하지 않는 사건이다. 그리고 사실은 의도와 무관하기 때문에 논리적 필연성이나 당위성과도 무관하다. 그래서 사실과 진실은 다른 범주이다. 진실은 사실에 기초가 되지만 사실이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경찰은 채증반을 시위현장에 투입하여 시위대의 폭력적 행동을 기록하도록 했다. 시위 가담자들을 현장에서 연행한다 해도 집회나 시위 가담 사실로 기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채증반이 촬영한 사진이 극렬 시위 주동자로, 혹은 폭력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물론 채증반의 사진이 '팩트'이다. 그러나 최루탄 발사각도 규정을 위반한 최루탄 발사, 체포 연행시의 구타와 폭력, 조사 중의 구타와 고문 행위 등 경찰 측의 폭력은 기록되지 않는다. 공안당국은 극렬 시위를 부각하는 보도지침을 내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쓴다. 채증반의 '팩트'는 시민들이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비민주적 헌정질서나 국가 폭력 등의 진실을 은폐하는 자료일 뿐이다.



필자는 최근 인천 5·3항쟁 시위현장 상황과 당시 언론 보도를 검토하면서 당시 보도의 문제가 '맥락의 결여'에 있음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당시 보도는 시위대의 폭력성만 과도하게 강조하였을 뿐 최루탄 가스차의 돌진이나 최루탄 운반차의 난입과 같은 경찰 측의 원인제공 사실을 함께 다루어 형식적 균형을 갖춘 기사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찰의 배치나 진압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없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경찰 측이 제공한 정보와 공안당국이 제공한 '보도지침'의 프레임으로 사건을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5·3항쟁은 아직까지 그 본질이나 역사적 의의와 무관하게 학생과 노동자들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사실 왜곡의 전형적 사례이다.

'사실'은 6하원칙에 의거하여 진술되어야 검증 가능한, 즉 제3자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정보가 된다. 만약 하나의 사실을 서로 다른 증언자에 의해 진술되었다면 사실에 가깝다. 사실의 검증은 직접적이어서 그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 중의 하나만 제시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사실의 검증은 자명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복잡하다. 인천 5·3민주항쟁 보도에서 드러난 문제에서 제5공화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정보의 취사선택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맥락'의 결여라는 문제가 내재적인 변수가 된다. 대부분의 사건과 사안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사건과의 선후관계, 인과관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팩트체킹'은 개별 사실 자체의 검증에서 출발하여 해당 사건과 다른 사건과의 전후 관계, 곧 맥락 속에서 완성된다고 할 수 있겠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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