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

[전호근 칼럼] 눈썰매장의 공정

아이들 어렸을 때 눈썰매장에 갔다
도시서 먼곳 사람 적으니 재미 덜해
그런데 동네아이들 입장 놀라운 변화
환호성에 다른 아이도 덩달아 신바람
무료 핀잔 쫓겨났지만… 더 큰 공정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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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아이들이 어렸을 때 경기도 가평에 있는 눈썰매장에 간 적이 있다. 방학기간이었지만 도시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인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서너 가족이 눈썰매장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대도시의 혼잡한 썰매장과는 달리 위쪽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차례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바로 썰매를 탈 수 있어서 좋았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타며 즐겼는데 사람이 적은 만큼 놀이의 재미도 덜했다. 뭔가 시끌벅적 신나는 분위기가 부족했던 탓이다. 썰매를 타고 내려왔다가 다시 위쪽으로 무심히 올라가던 중 울타리 바깥쪽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눈썰매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림새로 보아 부근 동네에 사는 아이들 같았는데 아무래도 눈썰매장 입장료를 낼 돈이 없어 구경만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입장료를 대신 내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비용이 만만찮은데다 아이들이 꼭 그렇게 해주길 바랄 것이라는 확신도 들지 않아 별도리 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는데 잠시 후 그 아이들이 썰매장으로 들어왔다. 알고 보니 썰매장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돈을 받지 않고 아이들을 입장시켜 주었던 것이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그 아이들이 썰매를 타면서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하자 조용히 썰매를 타던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소리를 지르고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갑자기 다른 시공간이 열린 것처럼 눈썰매장에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아이들의 즐거움이 무르익어 가는 듯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문제는 먼저 와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부모들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동네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입장료 냈니?"

"아뇨. 아저씨가 그냥 들여보내 주셨어요."

"왜 그랬지? 그럼 돈 내고 들어온 사람들은 뭐가 되니?"

뜻밖의 핀잔을 들은 아이들은 잠시 후 풀 죽은 모습으로 썰매장을 떠났다. 눈썰매장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고 그 광경을 보고 흥이 깨져버린 우리 가족도 그만 썰매장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자기가 운영하는 썰매장도 아닌데 굳이 입장료를 따진 사람은 아마도 돈을 낸 아이들(부모가 돈을 내준 아이들)만 눈썰매장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하여 불만스레 말했는지 모르겠다. 하긴 시장 논리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누구라도 입장료를 낸 아이들만 들어오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며 오히려 무료입장을 허용한 관리인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자라 해야 할 것이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면 아무도 돈을 내고 들어오지 않을 테고 그리되면 결국 눈썰매장은 없어지고 말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돈을 받지 않고 동네 아이들을 입장시킨 관리인에게서 더 큰 공정을 보았다.

어떤 아이는 돈을 내고 눈썰매장에 들어와 즐길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들어오고 들어오지 못하는 차이는 돈을 대신 내주는 부모가 있고 없는 데서 비롯된 결과일 뿐 아이들의 능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결국 들어오고 들어오지 못하는 차이는 모두 우연에 따른 것이다. 우연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씨 좋은 관리인을 만나 눈썰매장에 들어올 수 있게 된 동네 아이들의 우연 또한 같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입장료를 냈으니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정당한 권리다. 하지만 입장료를 내지 않고 무료로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그런 권리가 침해받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즐거움이 배가되는 뜻밖의 기쁨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니 적어도 입장료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무료로 입장시킨 관리인의 호의에 불만을 터트리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나는 아직도 무엇이 공정인지 잘 모르지만 천국에 공정이 있다면 아마도 관리인이 아이들을 대한 태도와 가깝지 않을까 싶다. 천국에도 입장료가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닐 것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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