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

[전호근 칼럼] 패배라는 이름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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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어젯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떠나갈 듯 커다란 함성을 들었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도미니카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구어낸 순간이었다. 함성 소리를 듣고 승리를 직감한 나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전율했다.

"아, 우리가 이겼구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도쿄올림픽이 마침내 막을 올렸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대회를 강행한 만큼 이번 올림픽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당장 일본만 해도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터라 인류의 축제는커녕 환영받지 못하는 올림픽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우려했던 대로 수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개회 전 조직위원장이 여성 멸시 발언으로 사임하더니 음악 담당자 또한 과거의 동급생 집단 따돌림 가해 행위를 자랑스레 떠들다가 물러났으며 급기야 개폐회식 연출 담당자마저 여성 외모 비하 논란으로 사퇴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경기가 시작된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후쿠시마산 식재료에 대한 우려, 열악한 시설의 선수촌, 국제 규격에 미치지 못하는 일부 경기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으며 선수촌에 들어온 선수들의 잇따른 코로나 확진과,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대회에 출전해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선수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이번 올림픽을 실패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경기장에서는 과연 올림픽이라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명승부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올림픽을 이끌어 가고 있는 주인공은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도 아니고 국제 올림픽위원회도 아닌 올림픽에 참가하여 땀 흘리는 여러 나라의 선수들이라 하겠다. 

 

말도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 개막
우려대로 수많은 문제 드러났지만
선수들 명승부 이어지며 짠한 감동


스포츠 경기란 으레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눈물로 마무리되기 십상이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통쾌한 승리보다 더 낫게 패배한 모습에서 얻는 감동이 더 컸다. 아직 올림픽이 끝나지 않았지만 명승부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올림픽 탁구 대표 선수 중 역대 최고령인 58세로 경기에 나선 룩셈부르크의 니샤렌 선수는 마치 구도자처럼 경기를 진행했다. 그는 자신보다 41살 어린 우리나라의 신유빈 선수에게 패했지만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보다 어리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신유빈 선수와 싸운 것이 아니라 나이든 사람은 훌륭한 경기를 펼칠 수 없다는 편견과 싸웠던 것이다.

금메달 기대주로 관심을 모았던 양궁 대표 김우진 선수의 인터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는 8강전 마지막 세트 첫발에서 8점을 쏘아 대만의 당즈준 선수에게 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어느 기자가 8점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8점을 쏜 것이다. 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쉽지만 그게 삶이다.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겠는가?"

이 말에서 나는 그의 화살이 과녁만이 아니라 삶을 아울러 꿰뚫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승리는 달콤하지만 패배는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또 다른 이름의 승리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양궁 선수이지만 나는 그에게서 삶의 이치를 배웠다.

니샤렌·김우진·조구함 등 패했어도
아름다운 품격 모든 이의 마음 녹여


상대를 이겨야 다음 경기에 나아갈 수 있는 냉혹한 승부의 특성상 어떤 종목이든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초래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승패를 넘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준 선수가 있다. 유도 100㎏급 준결승에 나섰던 우리나라의 조구함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경기 도중 상대 선수가 갑자기 손에 쥐가 나서 고통스러워하자 유리한 상황임에도 상대를 바로 공격하지 않고 기다려주는가 하면 가능한 상대의 손을 잡지 않고 소매를 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의 품격은 결승에서도 빛났다. 비록 일본 선수에게 패했지만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상대 선수의 손을 들어주며 승리를 축하했다. 어느 모로 보아도 그는 패자가 아니었다. 멋진 승리는 자기편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지만 아름다운 패배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인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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