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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워라밸시대, 지루함과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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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코로나19 때문에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면 별일 없었는지 안부를 묻고 뭔가 재미있는 일은 없었냐고 묻곤 한다. 이 질문에 사람들은 참 다양한 답을 한다. 주식투자로 재미를 봤다, 골프 배우는 게 재미있다, 새로 만든 모임에 나가는 게 재미있다 등을 답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우리는 모두 지루하지 않은 삶, 재미있어 활력이 넘치는 삶, 그래서 삶의 만족감이 높은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최근 미국 학자 애니 브리톤과 마틴 쉬플리는 지루함을 더 높게 경험하는 사람은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보다 심장질환이나 뇌졸중으로 숨지는 비율이 2.5배나 높다는 것을 밝혔다. '지루해 죽겠다'는 농담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것이다.

그런데 '지루함'과 '재미'란 과연 무엇인가? 미국 심리학자 메리 하리스는 지루함이란 어떤 사건이나 행동 속에서 흥미를 찾지 못하는 무디어진 감성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루함은 '한가함'과 다르다. 일본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는 지루함은 주관적인 상태로서 무언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감정'이라면, 한가함은 객관적 조건으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가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를 2018년부터 시행하여 노동시간을 단축한 것은 '한가함'을 이전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단축으로 더 늘어난 한가한 시간에 지루함에 빠지지 않는 지혜를 가지고, 무엇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는지 성찰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다양한 여가로 비영구적 지루함
탈피 가능하지만 내적 노력없이
영구적 지루함 벗어나기 어렵다


교육학자 손 디모네는 지루함을 '비영구적' 지루함과 '영구적' 지루함으로 나누었다. 비영구적 지루함의 경우, 어떤 외부상황으로 인하여 지루하다는 감정적 기분에 잠시 빠지지만 곧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기분을 바꿀 수 있다. 영구적 지루함은 비영구적 지루함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 다음 여섯 가지의 경우에 영구적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첫째, 지적, 감성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긍정적 자극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이다. 둘째, 삶 속에 의미와 목적이 없어서 지루함을 장기간 경험하는 경우이다. 셋째,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지루한 시간 속에 모든 것이 정지해 버린 것 같은 영혼의 마비를 느끼는 경우이다. 넷째, 매일 바쁘게 여러 가지 기능적인 일(직장, 가사, 돌봄 노동 등)을 수행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공허함에 빠진 경우이다. 다섯째, 삶에 무언가 정열을 쏟을 수 있는 사건이나 인물 그리고 대상이 부재한 경우, 여섯째, 본인에게 의미와 충족감을 주는 어떤 일에도 종사할 수 없는 경우이다.

비영구적 지루함의 해소 방법이 대부분 개인 외적인 수단(예를 들어 영화 시청)으로 가능하다면 영구적 지루함의 해소 방법은 개인 내적인 노력(예를 들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으로만 가능하다. 다양한 여가활동을 해서 비영구적 지루함을 탈피할 수 있지만 내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영구적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영구적 지루함을 느끼는데 자꾸 개인 외적인 수단에만 의존한다면 삶에서 지루함을 벗어나기 힘들다.



재미도 활동에 몰두하는 흥분과
참여로 만족 느끼는 성취로 구분


지루함과 대조되는 '재미'의 감정도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재미란 어떤 활동에 자유로이 참여하여 열중함으로써 얻게 되는 경험인데, 재미의 첫 번째 뜻은 어떤 활동의 참여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생각하지 않고, 그 활동 자체에 몰두하여 얻는 감정 상태로서 감정상 '흥분'이며 영어로는 펀(fun)에 해당한다. 재미의 두 번째 뜻은 펀(fun)과 다르게 어떤 활동에 참여하여 '특별한 보상' 예를 들어 만족, 기쁨, 유쾌함 등을 기대하는 감정 상태로 '성취'의 감정이며 영어의 인조이먼트(enjoyment)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두 가지 종류의 재미를 모두 느끼고 살아가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에 느끼는 재미(fun)도 필요하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재미(enjoyment)도 필요하다.

새해를 맞이하여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내가 느끼는 지루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것에 재미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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