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 아낌없이 돌보아야 할 나무의 고고(孤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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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가끔씩 숲에 간다. 나무들로 울창한 곳은 아니고 그저 여러 그루 나무가 단란하게 군집한 아담한 뒷산일 뿐이다. '숲이 우리의 미래다'라는 슬로건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시대에 잠깐이나마 삶의 쉼터가 되어주는 것이 이처럼 고요한 숲이다. 그렇게 숲과 고요는 서로 닮아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수명을 다해 비틀어진 고목과 막 자라가는 어린 나무를 한꺼번에 하염없이 바라본다. 생로병사라는 과정을 고스란히 은유하는 장면을 숲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그 순간 우리는 활자 너머로 어떤 기운이 전해져오는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나무는 신성이 흘려보내는 계시의 순간을 드물게 건네주는 우주의 적자(嫡子)다.

"나무가 춤을 추면/바람이 불고,//나무가 잠잠하면/바람도 자오." 윤동주의 시 '나무'에서는 과연 나무가 춤을 춘다. 바람이 불어 가지가 움직이는 것인데도 시인은 나무가 흔들리니 바람이 분다고, 나무가 멈추니 바람도 잠잠한 거라고 짐짓 인과(因果)를 바꾸어놓는다. 춤과 잠잠함을 반복하면서도 나무는 오랜 기다림으로 서 있는 우뚝한 존재로 다가온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소나무의 기상을 말하고 대나무의 절개를 떠올릴 때, 그들 육체에 깃든 신성한 기품을 인간의 윤리적 자질과 연루시키곤 한다. 그들 안에 흠모할 만한 속성이 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나무가 정신적 고처(高處)를 비유하는 데 알맞고 우리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친숙한 대상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산불로 잿더미 된 숲 안타까워하고
홍수 나면 나무의 존재 아쉬워 한다


언뜻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아도 자작나무, 팽나무, 감나무, 오동나무, 미루나무, 버드나무, 메타세쿼이아, 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밤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백양나무, 사시나무, 잣나무, 이팝나무, 동백나무, 느릅나무 등, 우리가 문학작품 안에서 배우고 외웠으며 만나보고 싶어했던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가? 20세기 초의 미국 시인 킬머(J. Kilmer)의 '나무들(Trees)'이라는 작품도 떠오른다.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나는 결코 볼 수 없으리라.//감미롭게 흐르는 대지의 가슴에/굶주린 입술을 붙인 채,//하루종일 하느님을 우러러보며,/이파리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시는 어리숙한 나도 쓰고 있지만,/나무는 분명 하느님만 지으실 수 있으리라."

대지와 천상을 이어주는 사랑과 기도의 존재자로서 나무는 충일하다. 신성 지향의 나무는 수직의 끝인 뿌리로 굳건하게 서 있고 또 하나의 끝인 이파리로 부드럽게 찰랑거린다. 세월을 따라 낙엽을 떨구고 겨울을 견딘다. 젊은 날 읽은 실버스타인(S. Silverstein)의 그림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생각난다. 어린 소년은 나무와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소년은 나무를 사랑했다. 그러나 성장해 가면서 그는 나무에게서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받아가기만 했다. 하지만 나무는 소년을 더욱 사랑했다. 결국 노인이 되어 찾아온 소년에게 나무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밑동을 내주면서 끝없는 사랑의 존재증명을 수행한다. 이 짧은 서사는 '보상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나무의 속성을 근간으로 삼은 결실이다. 다윈(C. Darwin)은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선택하지만, 자연은 자신이 돌보는 모든 존재를 위해 선택한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대목은 우리가 자연으로 돌아가 존재자들을 돌보는 방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아낌없이 준 나무를 이제 우리가 아낌없이 돌보아야 한다.

이제는 땔감·목재라는 실용성 넘어
생태시스템 구축하는 구심점 역할
상호연관성 존재한다는 사실 증언


우리는 산불이 난 후 잿더미로 변한 숲을 안타까워하고, 홍수가 나면 나무의 존재를 아쉬워한다. 나무는 이제 땔감이나 목재라는 실용성을 넘어 생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둘도 없는 구심점이 되었다. 물론 나무는 인간 외부에 존재하지만, 모든 생명은 상호연관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없는 구체성으로 증언한다. 우리는 나무와 더불어 꿈꾸고, 나무를 좇아 거룩한 하늘을 지향하고, 아낌없이 나무의 고고(孤高)를 돌보아야 한다. 나무처럼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채 말이다. 오늘도 가장 가까운 숲에서 아낌없이 서 있는 나무를 만난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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