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수 칼럼

[윤인수 칼럼] '정권 유지냐 교체냐'만 남은 진흙탕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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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20대 대통령선거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참혹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후보와 공약을 집어 삼킨 악성 선거 캠페인은 정치학자들에겐 두고두고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진영의 편에서 진실과 허구 사이를 맴돌며 유튜브와 SNS 수준으로 격하된 언론에겐 되풀이해선 안 될 반면교사로 남을 것이다. 세대와 계층과 지역은 물론 청춘 남녀마저 투표 지향으로 쪼개진 국민 갈등은 상당 기간 우리 사회의 가치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를 남겼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먼저 정당이 사라졌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경선에서 비주류 후보와 외부인사를 후보로 확정했다.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정치 의사는 정당으로 수렴된다. 정당은 정강과 정책을 대표하는 주도세력이 있기 마련이고 그 세력 내부의 경쟁으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국민이 참여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경선 결과로 양당의 주류 세력은 부정당했다. 비주류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의 내로남불을 사과하고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선언했다.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은 경선이라는 단 한 번의 정치 행보로 국민의힘 후보가 됐다. 대선 후보와 당 대표가 두 번의 불화를 겪고서야 유세장에 함께할 수 있었다. 


정당·후보·공약 열등 경쟁속 차별화도 저열
李·尹, 유세 대장정 목전 겨우 진영 결속 그쳐


정당은 사라지고 후보만 남아 시작된 대선 정국에서 후보마저 지워졌다. 정강과 정책에 기반한 정당 경쟁이 사라지니 상대 후보를 직접 겨냥한 악성 캠페인으로 선거판이 뻘 밭이 됐다. 야당은 이재명을 대장동 몸통으로 단정했다. 여당은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소환해 윤석열을 대장동 뿌리로 규정했다. 여당은 윤석열이 무능하다, 야당은 이재명이 거짓말쟁이라 진영을 세뇌했다. 후보만으로 부족하자 가족들도 저격대에 세웠다. 쥴리 의혹에 시달린 김건희는 학력 허위기재가 드러나 국민에게 사과했고, 주가조작 사범으로 몰렸다. 혜경궁 의혹의 강을 건넜던 김혜경은 대리 약처방과 법인카드 횡령 혐의를 받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녀의 아들은 도박, 성매매 의혹의 흔적을 남겼다. 후보와 가족들이 대선 공론장에서 돌팔매를 맞을 혐오의 표적이 됐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실체가 이렇다.

후보가 사라지니 공약도 허무해졌다. 이재명의 대표 공약 '기본 시리즈'는 여론 따라 희미해졌다. 윤석열의 공약은 구체적인 질문 앞에서 흔들린다. 표만 되면 무슨 말이든 할 작정이고, 없는 돈도 찍어낼 기세이다. 정당도 후보도 공약도 열등 경쟁을 벌이니 부동층을 겨냥한 차별화 캠페인도 저열해졌다. 아무 변별력 없는 어퍼컷 세리머니와 발차기 세리머니가 화제가 된다. 우크라이나의 비극과 산불 재앙마저 공방거리가 될 정도로 무자비한 대선판을 해외 언론도 비판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순풍인지 역풍인지 효과의 향방이 애매하다. 개흙을 뒤집어쓴 정당과 후보와 공약은 영적으로 교감하는 진영 사람들 아니고선 구분하기 힘들다. 신념으로 포장된 진영의 아집만 남았다.

양측 모두 중도 확장에 실패하며 '아귀다툼'
부동층 선택 '초라'… 이런 선거 마지막 돼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마저 난장에 가세할 줄 몰랐다. 난장판 대선의 말미에 시원하게 '똥 볼'을 찼다. 코로나19 확진자들은 사전투표지를 투표함에 직접 넣을 수 없었다. 이미 기표된 투표지를 받기도 했다. 민주주의 투표 원칙을 위반한 선관위가 국민의 항의를 '난동'이라 하는 적반하장은 최악의 대선에 어울리는 최악의 심판답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는 유세 대장정을 목전에 두고서도 겨우 진영 결속에 그치고 말았다. 양측 모두 중도 확장에 실패했다. 정당과 후보와 공약이 사라진 아귀다툼으로 중도 부동층은 이재명의 나라와 윤석열의 나라를 상상할 수 없게 됐다.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선거 때문에 정권유지와 정권교체만 선명해졌다. 5W1H 없이 진영간의 난투극으로 오염된 정권유지론과 정권교체론이다. 사전투표에서 드러난 유권자의 투표 의지는 강렬하다. 하지만 끝까지 이성의 끈을 쥐고 기다렸던 중도 부동층에게 남겨진 선택 기준으로는 너무 초라하다. 이런 선거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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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isyo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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