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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5명이라는 절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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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수 노무사
종종 고등학교에 가서 '노동인권교육'을 주제로 강의한다. 나도 그맘때 그랬듯이 선생님의 감독이 없는 틈을 타 부족한 잠을 청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눈을 빛내며 관심 있게 듣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관념적인 얘기보다는 머지않아 직접 받게 될 월급, 휴가, 근무시간 계산법 등 실무적인 내용에 호응이 높은 편이다. 이때 절대 빼놓아선 안 될 단서가 있다. "연장·초과·휴일근로수당 1.5배, 연차휴가 15일, 해고 제한 같은 법은 직원이 5명 이상인 회사에만 적용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덧붙인다. "여러분 취업하게 되면 꼭 직원이 5명 넘는 회사에 들어가세요. 어떤 회사의 직원이 5명 이상인지 5명 미만인지는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근로기준법은 애초부터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근로계약, 휴게, 여성과 소년보호 등 '필수 중 필수'인 일부 조항만 모든 사업장에 적용할 뿐이다. '하늘과 땅 차이'라는 표현은 진부할지라도 절대 과장이 아니다. 


소규모 사업장 기본권리 무시 많아
학생들에 5인 이상 회사 취업 권유
근로자수 따라 노동자 삶 천지차이


나는 노동법을 만든 사람도 아니지만, 또랑한 눈빛 앞에서 법의 미흡함을 얘기할 땐 어쩐지 죄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초라하나마 '꿀팁'이랍시고 얘기하는 것이 5명 넘는 회사에 들어가라는 말이다. 물론 모든 학생이 5명 이상 사업장에 들어가긴 어렵다는 현실도 알고 있다. 민주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내 전체 노동자 중 17.8%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소속되어 있었다.



일부는 작은 회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모두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게 되길 바라는 이유는,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법 적용 여부를 뛰어넘어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년 상반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 10명 중 3명(27.9%)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했다. 최저임금은 예외 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기준인데도 그렇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설계된 법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러니까 노동자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라고 읽히는가 보다.

아플 때 쉴 권리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의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5인 미만 사업장 12.9%만 병가제도가 있었지만, 1천인 이상 사업장의 96.7%가 병가제도를 운용했다. 이런 '하늘과 땅' 차이는 코로나19 시대 소규모 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유행병에 걸린 노동자들은 격리 기간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오로지 감염됐다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우수수 일자리를 잃었다.

윤석열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찬성"
그의 '공정'에 약속 넣을지 지켜보자


현행 노동관계법령에서 5명이라는 숫자는 일종의 '절대수'다. 직원 5명 이상과 미만에 따라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자료는 지면에 다 털어놓지 못할 만큼 많다. 꼭 알아야 할 정보이면서도 설명하기 조심스러운 사실이기도 하다. 5인 미만 사업체에 다니다가 해고당한 근로자에게 이 숫자는 '부당해고를 구제받기 어렵다'는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회사를 운영하는 어떤 사용자에게는 '최대한 사업장을 쪼개자'라는 군침 도는 비법으로 보일 것이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감독 결과, 1개 사업장을 무려 36개로 쪼개 형식만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운영하며 법을 회피해온 회사도 있었다. 일터에서 '5명'은 누군가의 희망을 잘라버리거나, 누군가의 꼼수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숫자다.

학생들에게 되도록 직원 5명이 넘는 회사에 입사하라는 말은 얼마나 무력한가. 허황하더라도 차라리 "힘 있는 사람이 돼서 이 절대수를 없애달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그보다는 지금 당장 힘 있는 사람이 약속을 지키는 편이 훨씬 빠르고 올바른 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해 12월 노동계와 만남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라고 밝혔다. 윤석열표 '공정'에 이 약속이 포함되어 있을지, '5명'이란 숫자가 산업현장에 주는 불공정한 메시지를 바로잡을 의지가 있는지 지켜보고자 한다.

/유은수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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