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수 칼럼

[윤인수 칼럼] 민주당 '이대준' 통해 민주당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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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2020년 9월 21일 칠흑 같은 밤 서해 북한 수역. 북한군은 부유물에 의지한 채 바다에 간신히 떠 있던 대한민국 공무원을 사살했다. 시신은 소각했다. 육신을 잃은 대한민국 공무원은 이름마저 잃었다. '서해 피격 공무원'이라는 익명의 사건 당사자로 세상에 떠올랐다. 익명마저 더럽혀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월북자'로 추정하고 단정했다. 남겨진 유족들은 월북자의 가족으로 자의반 타의반 연좌됐다.

이대준. 유족들이 1년 9개월여만에 공개한 아버지, 남편, 동생의 실명이다. 월북자 낙인을 지우고 나서야 대한민국 공무원 이대준은 이름을 찾았다. 두 정권에서 이대준의 죽음은 극적으로 의미가 전복됐다. 문재인 정권에선 자진 월북자의 비극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선 월북 시도를 입증할 수 없는 무죄추정자, 즉 국가 공권력의 피해자가 됐다.

'서해 피격 공무원' 1년9개월만 이름 찾아
정권 바뀌자 유족에 사과… 사건 원점복귀


돌이켜보면 이대준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자진 월북을 시도했다는 시대착오적 사건에 여론은 고개를 저었다. 해경과 군이 열심히 월북 정황을 모았다. 구명조끼와 선내 슬리퍼가 정황 증거로 택도 없자, 이대준의 도박 빚을 찾아냈다. 군은 결정적으로 그가 월북 의사를 표시했다는 첩보를 해경에 넘겨 발표했다. 민주당은 월북을 확신했고 국민의힘은 의문을 제기했다. 여론은 양분됐고 이대준의 영혼은 익명으로 서해를 표류했다.

오직 유족만이 이대준을 굳게 믿었다. 월북할 사람도 아니고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를 향해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아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법원은 제한적으로 정보공개 판결을 내렸지만, 문재인 청와대는 항소했고 대통령기록물로 봉인했다. 아들은 진상규명을 약속한 대통령의 편지를 청와대 앞 거리에 반송했다.



윤석열 정부의 군과 해경은 유족에게 사과했다. 이대준이 월북 누명을 벗자 월북을 부정할 강력한 정황들이 쏟아져 나온다. 월북을 작정했다면 구명조끼가 아니라 방수복을 입었을 것이라는 동료들의 증언은 은폐됐다. 도박 빚도 두 배로 부풀렸다. '월북' 발언은 이대준이 아니라 북한군들끼리 나눈 대화였다고 한다. 월북이 아니라 사고에 의한 표류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정황들이다.

'자진 월북자' 단정한 근거·과정 공개해야
세월호·천안함처럼 대해야 당 정체성 보전


대한민국 공무원 이대준의 죽음은 이제야 사건의 원점으로 복귀했다. 진상 규명은 이제부터다. 북한 경비정은 그를 바다에 6시간 방치하며 지켜본 뒤 사살했다. 대한민국이 그 시간 동안 이대준을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문재인은 김정은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김정은과의 인간적 신뢰로 이대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대준을 자진 월북자로 단정한 근거와 과정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자진 월북에 방점을 두고 수사하라'는 청와대 하명설 보도의 실체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봉인한 기록물과 군 감청자료는 자진 월북자와 월북 무죄추정자 사이에 있는 이대준의 실체에 접근할 자료이다. 이대준의 진실을 묻어버리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이대준이 될 수 있다.

국가폭력과 억울한 죽음에 예민한 민주당을 기억한다. 진보는 인권, 생명, 개인 기본권에 민감하다. 민주당과 민주당 정권의 지칠 줄 모르는 세월호 진상규명 노력을 국민이 인내한 것도 무고한 죽음의 무게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대준의 죽음을 세월호, 천안함과 똑같이 대해야 민주당이다. 이대준의 생명을 구조할 대한민국의 의무가 작동했는지, 이대준의 자진 월북 판단에 국가권력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앞장서 밝혀야 민주당은 민주당으로 온전할 수 있다. 진실 규명은 이대준과 유족을 위한 것이다. 진실 규명을 외면하면 유족과 싸워야 한다. 민주당에겐 개미지옥이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대준 죽음의 진실을 먹고 사는 문제 뒤에 놓았다. 진상규명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도 했다. 내로남불 기득권 세력으로 심판받은 민주당이 진보의 정체성마저 내다 버리겠다 작정한 발언이다. 민주당은 혁신이 아니라 완전히 죽어 새로 태어나는 길로 가고 있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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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isyo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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