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수 칼럼

[윤인수 칼럼] 국민은 정치 태풍을 키우고 있다

입력 2022-09-05 19:51
지면 아이콘 지면 2022-09-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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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힌남노가 한반도를 덮쳤다. '사라'와 '매미' 보다 강력한 슈퍼 태풍이다. 국토 전체를 뒤덮은 먹구름에서 비가 쏟아지고, 건물 사이를 질주하는 바람의 울음이 스산하다. 오늘 새벽 쯤이면 제주를 강타하고 남해에 상륙한 태풍의 세력이 최고조에 이른다는 예보였다. 남해에서 스치듯 동해로 빠져나가면 감지덕지다. 만일 내륙 깊숙이 상륙하면 최악이다. 전국민이 힌남노의 진로를 주시하며 밤을 샜을 테고 나라 곳곳에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전국이 힌남노 공포에 휩싸인 5일 정치권은 평상심을 유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대선 때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허위 해명을 했다는 주장이다. 김 여사에 대해서는 특검 발동을 경고했다. 앞서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백현동 특혜의혹에 대한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소환하자 맞불을 놓은 것이다. 오늘이 이 대표 소환일이다. 정치권의 관심은 이 대표의 검찰 출두 여부에 집중될 것이다. 


'국민' 입에 단 정치인 '재난예방' 함께해야
여민은 동락할때 보다 동고할때 더 큰 의미
 

 

대통령이 고발당한 날 집권여당 국민의힘은 전국위원회를 열어 새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위한 당헌 개정안을 확정했다. 이준석 축출을 위한 첫 비대위가 법원 심판으로 무산되자, 당헌까지 바꾸어 새 비대위 구성에 박차를 가했다. 이준석 죽이기가 무슨 역사적 소명이라도 되는 것인 양, 끝을 보려 여당의 위상도 공당의 기본도 팽개쳤다.

같은 날 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예능감을 한껏 과시했다. 김 의원은 이 후보자에게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수사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이 후보자는 보고받은 바 없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이 반복됐다. 당연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와 감독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후임인 박범계 전 장관도 이를 유지했다. 선택적 망각은 코미디의 단골 소재다. 김 의원의 한 방에 국민 개그마당, 법사위의 위상이 무색해졌다.



초대형 재난 위기 앞에서도 초연한 정쟁의 일상성이라니. 기이하고 무섭다. 나라 곳곳에서 힌남노와의 전쟁 준비에 진땀을 흘렸다. 과수 농가들은 설익은 과일을 서둘러 수확하고, 포구 마다 어민들은 어선을 뭍에 올리느라 부산했다. 상습 침수지대 국민들은 집과 상가 입구에 모래주머니를 쌓고도 마른 침을 삼킨다. '국민'을 입에 달고 사는 정당과 정치인이라면 재난의 공포가 가득한 현장에서 국민과 함께 있어야 할 시간이다. 여민(與民)은 동락(同樂)할 때 보다 동고(同苦)할 때 의미가 크고 울림이 깊다.

국민과 정치의 시간과 공간이 분리됐다. 국민의 시공간은 고해(苦海)다. 자영업자 아버지는 대출 원리금 갚고 배달 플랫폼에 수수료 떼주면 자기 인건비도 벌기 힘들다. 아들은 일자리가 없어 배달 오토바이를 타거나 편의점을 전전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던 시장 플랫폼이 비대면 디지털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주머니가 비어간다.

민주화 이후 대의 사라진 정치권 사적 욕망만
'국민따로 정치따로' 초대형 정치 사변 예고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대의(大義)와 소명과 신념이 사라진 정치권의 시공간엔 사적 욕망만 가득하다. 오직 권력만 지향하는 소수가 전체를 지배하고 모욕하는 격투장이 됐다. 그 사이에 산업화의 재고는 거덜났고, 민주화는 민주적 전체주의의 도전에 직면했다. 대한민국 정당 플랫폼은 대의(代議) 기능을 상실했다.

혁명과 같은 정치 대변혁은 분리됐던 국민과 정치의 시공간을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왕과 백성이 분리된 시공간은 혁명으로 붕괴됐고, 공산당과 국민이 유리됐던 시공간은 민주화로 무너졌다. 국민 따로 정치 따로인 작금의 현상은 초대형 정치 사변을 예고하는 징조다. 여야가 지금처럼 대의(大義)와 대의(代議)를 모두 상실한 정치에 집착하면 힌남노급 정치 태풍에 직면할 것이다. 태풍의 눈을 만드는 쪽이 먼저 휩쓸려 사라진다. 국민은 지금 정치권을 겨냥해 힌남노를 키우고 있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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