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

[방민호 칼럼] 인구, '경제주의'가 문제다

입력 2023-02-13 20:19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2-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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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바야흐로 인구감소시대다. 2021년, 한국의 출산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고 했다. 가임여성 1인당 8.808명이었다. 이 해에 태어난 아이들 숫자는 26만500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이 1명 이하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여러 곳에서 인구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학교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요즘 고등학교 교실은 한 반에 스무 명 아래위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농촌 소재 학교는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폐교되는 곳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비혼주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으려는 심리의 소유자들을 주위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출산율은 더 떨어질 테고 인구는 격감할 것이다. 한 해에 26만명이 태어난다면 십 년이면 260만명이요, 삼십 년이면 780만명이다. 인구 많은 베이비 붐 세대가 물러가면 한국 사람,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완연히 줄어들 것이다.

어째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너나없이 경제가 문제라고 한다. 먹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이나 출산에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교육비나 기타 양육비 부담을 줄여주지 않는다면 이런 현상이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아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경제주의다. 오늘의 낮은 출산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산아제한 정책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처음부터 인구 제한이 '경제개발', '경제성장'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처럼 표방해 왔다. 


'경제와 인구 제한' 오랜 사고구조
'X→IMF→88만원 세대' 더 극단화
MZ세대 '비혼·출산 기피' 결정판


우리의 경우, 군사정부가 들어선 1961년 5월 이후 산아제한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핵무기보다 무서운 인구폭발 운운하며 '적게 낳고 잘 기르자'고 했다. 1970년대 초가 되어서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다. 1980년대 초가 되어서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고도 했다. 이렇듯 경제적 풍요로움과 인구 제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것처럼 취급하는 사고 구조가 오랜 기간에 걸쳐 공고화되었다. 1980년대는 경제성장을 내세운 군사독재체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저항운동이 전면화된 시대였다. 그러나 이 저항은 경제의 '성장' 대신에 '분배'를 요구한 것이었을 뿐, 경제를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삶 전체나 다름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고구조에 대한 저항은 아니었다. 이 386세대로부터 비혼주의, 아이 안 갖기를 여성해방에 연결하는 사고가 본격화되었다. 민주화 이후 개체주의에 기운 X세대는 앞선 세대의 이 경향을 더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나' 하나 잘살다 가면 그만이지 무슨 아이를 갖느냐는 것이었다.

X세대 다음은 IMF 세대, 88만원 세대였다. 갑자기 닥친 경제적 위기는 이미 경제주의를 더욱 극단화시켰다. 경제적 과실을 편중되게 배분하는 구조가 공고화되면서 궁핍한 젊은 세대의 냉소주의는 윤리적으로 더욱 정당화되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 이른바 MZ 세대의 비혼주의, 출산 기피 현상은 이러한 과정의 결정판이다. 이 세대는 결혼도 하지 않으려 하고 아이는 더더욱 낳지 않으려 한다. 경제적, 물질적, 육체적 고통과 부담을 짊어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출산 기피 현상에 직결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형식만 달라졌을 뿐
삶 바라보는 태도 '시각 혁명' 절실


삶의 문제를 경제문제로 압착시키지 않는 사고로의 전환이 절실한 시대다. 경제가 문제라고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늘 '같았다'. 경제적 어려움의 형식이 달라졌을 뿐 어려움 그 자체는 늘 같다. 1950년대, 1960년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자손을 낳아 번식을 꾀했다. 어려운 면에서 보면 차라리 과거보다 나은 오늘날 왜 젊은이들은 자손을 남기려 하지 않는가?



옛날 사람들은 고통이나 슬픔을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수용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어떤 고통이나 슬픔도 감당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이 고통이나 슬픔이라는 것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압착되어 이해된다. 삶을 바라보는 이 경제주의적 태도, 그 시각을 버리는 혁명 없이는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당면한 인구 감소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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