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

[윤상철 칼럼] 불완전한 국가체제, 불안정한 민주정체

입력 2023-03-20 19:52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3-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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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한 뒤에 열린 한일정상회담을 둘러싼 여진이 여전하다. 민족주의적 정서의 뇌관을 건드린 탓에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아가 한-미-일과 중국-북한 사이의 진영간 충돌 모습도 보인다.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지소미아 정상화 등 한일 양국간의 난제들을 풀기 위한 해법에 대해 여야간에 극단적인 이견을 보이는 배경에는 또 하나의 '그레이트 게임'이 도사리고 있는 듯 보인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외교-안보적 사안에 대해서는 여야간에 이견을 내지 않으며, 서로 갈등하다가도 외교적 중대국면에서는 한 목소리를 내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북한과 중국, 미국과 일본 등에 관련된 입장들이 극단적으로 그리고 수시로 상충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기자는 사실을 보도하고, 학자는 진실을 토로하고, 정치인은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 반해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학자들이 이념의 주구들로 전락하고, 정치인이 집단적 사익을 위해 국익을 외면하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철저히 국가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국제관계에서 한국 내에는 여러 개의 국익, 국익으로 덧씌워진 사익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거대한 이념·사회적 합의 전혀없어
조그만 갈등에도 큰 충돌로 이어져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국가형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국익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고 그 외교적, 안보적 실행에 있어서도 극단적 이견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한국이 단일한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거나 여전히 분화하고 있다고 이해될 수 있다. 중국에 예속되어 있었던 조선에서 명과 청 사이에서 동요하거나 주전론과 주화론 사이에서 갈등했던 사실은 독자적인 국익이나 국가 정체성을 세우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바와 같다. 현재의 한국이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늘 불완전한 국가형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측면도 존재한다. 한국은 북한을 배제한 자기충족적인 국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북한을 통합하고자 적극적으로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로 인해 한국 내에서 북한에 대한 극단적인 이견은 동일한 국가 내부의 허용할 수 있는 정치적 이견이라고 보기보다는 내전의 양상을 띤다. 남북한 간의 민족적 균열은 미국-일본을 한 축으로 하고 중국-러시아-북한을 다른 축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균열로 확장된다. 단순히 민족통일의 문제를 넘어서서 정치체제적 충돌이 존재한다. 이러한 양상은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진입, 국민화,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국가를 해체하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불완전한 국가형성은 정치체제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한다. 민주화과정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체제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세력들은 체제내 경쟁을 넘어서서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선거결과를 흔쾌히 승복하지 않을뿐더러 비선거적 방식으로 정권교체를 추구하고, 더러 성공하기도 했다. 체제 내 경쟁을 통해 일단 집권하고 나면 정부구성을 통해, 정책변경을 통해 체제 자체를 재편하고자 시도한다. 즉, 주요 정치적 경쟁세력이 서로 다른 체제를 궁극적으로 추구한다. 즉, 국가체제와 정치체제를 감싸는 거대한 이념적,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그만 사회적 갈등만 발생하더라도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돌로 나아가기 쉽다.

선진국 대열 반일종족주의 피해의식
분단 상처로 미래로 나가는데 발목
국가공동체 이탈 개인 여전히 불안

요컨대 대한민국은 일제식민통치와 남북분단을 경험하면서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형성에 극단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이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한 상황에서도 한편으로는 반일종족주의적 피해의식과 분단으로 인한 미완성의 민족국가라는 양단의 상처로 인해 미래로 나아가는 데 발목이 잡히고 있다. 과거사의 질곡에 빠져 일본이 경제협력과 정치적 연대가 가능한 아시아 유일의 국가라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실질적으로는 북한은 적대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거부하지도 감싸 안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국가는 현대의 개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는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공동체이다. 그럼에도 한반도에서는 권위주의국가와 사회주의국가라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국가를 개인 및 시민과 충돌하는 부정적 공동체로 간주되곤 했다. 그러나 국가에서 이탈한 개인은 여전히 불안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은 국가 안에서 성장해온 경험을 체화하고 있고, 현실의 정당한 공동체는 여전히 국가이기 때문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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