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

[윤상철 칼럼] 민족과 통일을 잊으면

입력 2023-05-01 19:34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5-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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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반도를 중심으로 신냉전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 미국, 일본의 자유민주주의 동맹과 러시아, 중국, 북한의 국가사회주의 동맹이 맞서는 형국이다. 양 동맹 사이를 배회하던 한국이 한 축에 정착하면서 이 대립구도가 더 선명해지는 듯하다. 20세기 초반 영·일동맹이나 러·일간의 한반도 분할 시도 등에서 보이듯, 북방국가들과 해양국가들 간의 대립구도에서 한반도는 늘 중요한 메뉴였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이 구도에 늘 긴박되어 있었고, 남북분단과 두 국가형성을 낳았다. 통일정부수립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946년에 북조선인민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인 정부를 구성했고 뒤이어 남한은 1948년에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정부를 구성하였다. 두 개의 한국은 이 대립구도 하에서 각자 독자적인 국가형성의 길을 밟아갔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를 수용하고 북한은 인민민주주의와 국가사회주의의 체제를 수용하여 그 안에 각각의 대중들을 포섭해갔다. 뒤섞인 이념과 대중들은 두 국가 체제를 용인하지 못했고 두 국가의 내부에서 혹은 두 국가 간에 내전을 벌였지만 이 대립구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남한은 한동안 자유민주주의적 해양국가동맹의 나라로 커 나가는 듯했다. 정치적 독재이든, 경제적 발전국가이든, 자유주의적 군부체제이든, 보수적 민주주의체제이든 지향하는 정치체제와 국가동맹은 일관되었고 상당한 수준으로 정돈된 대중들은 그 체제에 동의하는 듯했다. 그러나 감성적 민족주의와 통일이 다시 대두되고 체제변경을 추구하는 세력이 등장하고 반일종족주의와 반미제국주의가 떠오르면서 다시금 내전의 양상을 만들어 나갔다. 냉전적 대립구도의 완화와 사회주의블록의 와해, 그리고 글로벌 시장 통합이 그러한 공간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정치엘리트 이념으로 대중 지배뿐

그들을 위한 정치·행정에는 소홀


잠정적으로 국가는 국민을 위한 최선의 공동체로 받아들여진다. 그 국가는 국민에게 더 높은 삶의 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상상의 공동체'로서 존재한다. 한반도의 한 국가는 민족을 내세워 권위주의적 국가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인민을 억압하고 다른 한쪽을 위협하는 반면, 다른 하나는 세계적인 선진국가를 만들어 가면서도 스스로 결손국가의 열패감에 시달리면서 민족의 환상을 좇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민족국가는 그 연원이 복잡하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는 이미 환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의 한민족도 동북아시아의 다수 민족들이 혼융되면서 만들어진 다민족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민족국가는 역사적 투쟁 속에서 찢어지고 흩어지면서 변화해왔다. 그 민족의 일부를 바탕으로 늘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졌고 민족 내의 이합집산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보편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그러한 민족국가가 늘 한반도 인민들의 삶을 고양시키는 좋은 공동체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현재 한반도에서는 명확한 실체로 보기도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았던 민족과 그 국가의 역사를 다시금 되살리려 한다. 민족을 바탕으로 하되 바람직한 인민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가는가보다는 쇼비니즘적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민족을 위해서는 모든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들을 쉽게 포기하고 지워버리려는 노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 땅에 사는 인민들을 위한 민족과 국가가 아니라 민족이라는 가상의 절대가치 앞에서 실제로 인민들의 삶을 백안시하는 정치적 행태들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두 국가의 정치적 지도자들은 인민 누군가를 대표하고 또한 그들에 의해 통제되기보다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외양을 쓰고 나타나 인민대중을 지배하는 엘리트들일 뿐이다. 정치엘리트들은 대중들이 현혹되기 쉬운 이념들을 동원하면서 인민들을 지배할 뿐 그들을 위한 정치와 행정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MZ세대 더이상 민족·통일 갈망안해
차라리 최선의 공동체 실현하는게
그나마 통일까지 앞당기지 않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통일이 우리 민족의 살 길이고 외세의 속박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 민족주의적 감성이 이 땅의 인민들의 삶에 무엇을 가져다 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분단은 우리가 만들지도 않았고, 우리가 해소할 수도 없다. 또한 풍요로운 선진국에서 태어난 MZ세대들은 더 이상 민족과 통일을 갈망하지 않는다. 차라리 민족을 버리고 통일을 폐기하고 이 땅에 최선의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하는 방향이 그나마 통일까지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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