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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기 신도시 재건축 '상가 쪼개기' 미리 막아야

입력 2023-05-14 19:21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5-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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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진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LH 전문위원
정부에서 입법 추진 중인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주요 내용이 지난 2월 발표됐다. 조성 후 20년 이상 경과한 100만㎡ 이상 노후계획도시의 정비를 위해 특별정비구역을 지정하고 사업절차 단축을 위한 통합심의와 안전진단 면제, 용적률 완화 등 각종 특례 및 지원을 제공해 정비사업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로 인해 사업성이 개선됨으로써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수월해질 전망이다. 입주 후 30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 균열·누수·녹물·난방부실·층간소음·주차공간 부족 등 각종 불편에 시달리던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새 정부에서 추진 중인 정책을 반기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재건축 추진을 방해하는 난데없는 복병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아파트단지 내 상가다. 이른바 '상가 쪼개기'로 사업이 좌초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50㎡ 점포 소유주 9명·1실이 123개 나누기도
과도한 혜택조건 제시 사업추진 발목 잡아


과거 사례를 보면 이런 전망은 결코 기우(杞憂)가 아니다. 서울 동부이촌동의 A아파트는 오랜 내홍 끝에 결국 상가를 빼고 재건축했으며, 근처 다른 B아파트도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후 상가 소유주들과의 갈등으로 홍역을 치르다 13년 만에 겨우 조합 설립인가가 난 적이 있다. 또한 서울 강동의 C아파트의 경우 상가 50㎡ 점포에 소유주가 9명이나 되고 점포 309개에 소유주가 540명이나 됐다는 보도도 있었으며, 부산의 해운대 D아파트는 재건축 추진과정에서 상가 1실이 123실로 쪼개졌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1기 신도시 중에도 사업추진이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일부 지역 아파트단지 상가는 벌써 매수 문의가 활발하다는 업계의 얘기도 들린다. 상가를 잘게 쪼개 매수한 상가 구분소유자들은 수적 우세를 앞세워 조합설립, 관리처분계획 수립 과정에서 상가 대신 수익성이 좋은 아파트를 요구하는 등 과도한 혜택을 조건으로 제시하며 사업추진의 발목을 잡는 게 일반적이다. 재건축 추진위원회 구성을 준비하는 입주민들은 벌써부터 상가 소유자와의 집안싸움을 걱정하고 있다.

현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는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주체인 토지 등 소유자는 건축물 소유자의 경우 상가와 주택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조합설립을 위해서는 재건축의 경우 전체 구분소유자의 4분의 3 이상의 동의와 토지 면적의 4분의 3 이상에 해당하는 토지소유자의 동의뿐만 아니라 각 동(棟) 건물의 구분소유자의 과반수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이때 상가는 전체를 하나의 동으로 보아 별도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가를 사업에서 제외하지 않는 이상 상가 소유자들의 동의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아파트는 어차피 쪼개기가 불가능하나 상가의 경우 쪼개기로 소유자 수가 많아지면 조합원 총회 의결이 필요한 사업시행계획, 분양설계, 관리처분계획 수립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상가 소유자들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자율규제 안돼 문제 야기땐 국가개입 당연
상가·주택 보유자 명확히 분배 법 규정 필요


그러면 상가 소유자들에게 아파트를 배당하는 게 타당한가. 물론 상호 간 자율적인 합의에 맡길 수 있다. 하지만 상가보다 수익성이 높은 아파트 분양을 받기 위해 상가 권리차액과 신규 아파트 분양가를 비교하는 소위 '산정비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조합 측에 압력을 행사하는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동의서 제출 거부, 각종 민원과 소송제기 등으로 사업의 발목을 잡는다. 개인의 부동산은 사적 재화이지만 토지나 주택은 수요 대비 공급의 한계, 다수의 이해관계자, 불량거래 시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할 때 공공재적 성격도 강하다. 자율적 규제가 작동하지 않은 결과 사회적으로 문제가 야기된다면 당연히 국가가 개입해 기준과 원칙을 정해야 한다. 상가 쪼개기의 경우도 국가가 정책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대안(代案)으로서 상가소유자에게는 상가를, 주택소유자에게는 주택을 분배하는 것을 법령에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제시해 본다. 상가 소유자가 주택을 분양받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이것이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jedem das seine)'이란 정의(正義)의 개념에도 부합한다.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속성은 적절히 통제되지 않으면 공동체의 파멸을 초래한다. 앞으로 정비구역 지정과 조합설립까지는 2~3년의 기간이 남아 있다. 이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상가 쪼개기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미리 막아야 한다.

/서남진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LH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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