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아고라

[with+] 문장은 꽃과 같다

입력 2024-03-14 19:41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3-15 14면
정조 승하뒤 강진 누옥 18년 유배
다산, 500여권의 저서 저술한 장소
그에게 시란 왜 사는가와 같은 뜻
"문장은 꽃 피는것과 다를게 없네"
생가 '여유당' 남양주에 복원·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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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800년 6월12일 늦은 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서울 명동 집 '죽난서옥'에서 정조의 부탁과 함께 그가 보낸 책 '한서선(漢書選)' 열권을 받는다. 노론의 공격으로 탄핵받아 스스로 관직을 떠난 다산을 배려해 정조가 보낸 선물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고향에 내려가려던 다산은 정조의 뜻에 따라 서울에 머물기로 한다. 하지만 다산과 함께 개혁을 꿈꿨던 정조는 마지막 선물을 보내고 난 뒤 그해 6월28일 승하한다. 더는 서울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 정약용은 고향인 쇠내,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로 내려간다. 귀향한 그는 자신의 생가 사랑채의 당호(堂號)를 여유(與猶)라 짓는다. '겨울 냇물을 건너는 듯(與) 머뭇머뭇하노라,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猶) 조심조심하노라'. 즉 '머뭇거리고 조심한다'는 다짐을 담아 여유당에 머문 것도 잠시, 다시 1년 뒤 18년의 길고 긴 귀양길에 오른다. 귀양지가 강진이었다. 강진 18년 유배에서 풀려나 남양주 본가로 돌아와서는 강물이 보이는 자리에 거처를 마련했다.

강진 누옥은 다산이 500여 권의 저서를 저술한 의미 있는 장소다. 그곳에서 제자들을 키우며 시름을 달랬다. 제자 중에는 기숙과 금계가 있다. 두 제자는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새해가 되면 세배를 왔다.



다산은 환하게 웃는다. 웃음 속으로 강진 푸른 바다가 밀려온다. 다산은 지그시 젊은이들을 본다 '이 젊은이들이 있어 견딘 세월이지'라고 생각한다. 다산은 묻는다.

'올해 동암의 이엉은 이었느냐?', '이었습니다'. '복숭아나무는 말라죽지 않았느냐?', '잘 자라고 있습니다'. '우물가의 돌들은 무너지지 않았느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우물 속 잉어 두 마리는 자랐느냐?' '두 자쯤 자랐습니다'. '백련사 가는 길의 동백꽃은 우거졌느냐?', '그렇습니다'. '올 때 이른 차는 따서 말렸느냐?', '아직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다신계의 돈과 곡식은 축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다산은 이쯤서 묻기를 멈춘다. 묻고 싶은 세상을 어찌 다 물을 수 있을까. 유배의 분노를 묻으며 심은 복숭아나무의 복사꽃과 흐린 달빛 아래 쏟았던 동백나무 꽃이 다산의 가슴으로 미어져 왔다.

다산에게 왜 시를 쓰는가라는 질문은 왜 사는가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쓰는가는 어떻게 사는가와 같은 의미다. 여기에 다산이 기록으로 남긴 일화가 있다.

'변지의 군이 천리 길에 나를 찾아왔다. 그 뜻을 물으니 문장에 뜻을 두고 있었다. 그날 아들 학유가 나무를 심었으므로 가리키며 깨우쳐주었다. 사람에게 문장이 있는 것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다를 게 없네. 나무를 심는 것은 바야흐로 나무를 심을 때 뿌리를 돋워주고 줄기를 편안하게 할 뿐이지, 이윽고 진액이 돌아 가지와 잎이 돋으면 꽃은 그제야 피어나는 법이라네. 꽃이란 갑작스레 취할 수 없는 것일세. 뜻을 성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지녀 뿌리를 북돋우고 행실을 도탑게 하고 몸을 닦아 줄기를 안정시켜야 하지. 경전을 궁구하고 예학을 연마하여 진액이 돌게 하고 들음을 널리 하고 예에 노닐어 가지와 잎을 틔워야 하네. 이에 깨달은 것을 갈래 지워 쌓아두고 쌓아둔 것을 펴서 글로 짓는 것일세. 그러면 이를 보고 사람들이 문장이라 하니 이런 것을 일러 문장이라 한다네. 문장이란 갑작스레 취할 수가 없다네. 그대가 이 가르침을 가지고 돌아가 구한다면 스승이 남아돌게 될 것이네'.

변지의 군이 그 후 얼마나 큰 문장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문장이 남아 있지 않다면 스승의 뜻을 충실하게 이어받지 못한 것이겠다.

다산의 생가이자 생을 마감한 곳이 여유당(與猶堂)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남아있던 집 사진 등을 토대로 1986년 복원했다. 생가를 중심으로 한 유적지는 현재까지 단계적으로 정비해오고 있다. 여유당을 등진 언덕엔 다산의 든든한 내조자이자 학문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부인 홍혜완과 다산의 합장묘가 있다.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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