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

입력 2024-03-17 20:32 수정 2024-03-17 20:39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3-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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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라하면 못가네. 수유리 찾아갔던 그날로부터 30여년이야…." 2008년 5월 31일자 경인일보 주말신문 경인플러스에 게재된 신축 이영미술관 탐방기사 첫 문장이다. 미술관 뒷동산에 올라 전경을 바라보던 김이환 관장이 말했다. "윤 부장. 우리 미술관이 리움 다음으로 최고다."

2001년 6월 11일 용인시 기흥읍 영덕리 221번지에 개관한 이영미술관은 미술계의 사건이자 화제의 중심이었다. 내고 박생광의 미술관을 꿈꾸던 관장 김이환은 3천마리 돼지를 키웠던 자신의 돈사를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미술관 자체가 화제였다면 그해 11월 7일 개관 기념전은 경악이었다. '명성황후'를 비롯한 박생광의 오방색 걸작들이 평론가와 관람객들을 압도했다.

김이환이 부인 신영숙과 1977년 6월 흑모란 한 점 얻으려 박생광과 맺은 인연으로 잉태된 이영미술관으로 인해 수원, 용인 문화계가 풍요해졌다. 박생광의 '무녀도' 시리즈의 주인공 큰 무당 김금화가 미술관에서 굿판을 벌였다. 부부가 박생광만큼이나 살뜰하게 모셨던 전혁림이 이영미술관에 상주하며 만개했다. 한용진은 미술관 앞마당에서 거석을 깎고 쪼고 쌓아 작품으로 빚었다.



돈사 미술관이 택지개발로 사라지자 대토 받은 땅에 새로 지어 신축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기자에게 김이환은 "리움 다음으로 최고"라 한 것이다. 박생광과 전혁림만으로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로 해석했다. 이영미술관을 두 대가의 영원한 안식처로 만들겠다는 다짐이라 생각했다.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철근 콘크리트 이영미술관. 다시 30년을 반복해도 이 이상은 어렵다는 김이환 인생의 결정체였다.

현실은 가혹했던 모양이다. 사립미술관의 적자는 숙명이었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은 쥐꼬리만한데 생색은 한보따리였다. 2020년 용인시에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은 매각했고, 지금은 아파트 건립을 두고 찬반 분쟁의 땅이 됐다.

지난 12일 김이환 관장이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박생광·전혁림의 패트론이자 컬렉터이며, 가장 완벽한 도슨트로서 한국 미술사에 오래도록 회자될 서사를 남겼다. 이영미술관이 남았다면 서사는 실체를 가져 더욱 완벽했을 테다. 박생광과 전혁림의 작품은 용인의 돈사미술관이자 콘크리트 미술관, 이영미술관에서 김이환과 함께 했을 때 가장 빛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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