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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꿈꾸며

입력 2024-03-27 19:57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3-28 18면
일본에 살때 세습률 높은 직업군
'정치인' 지역구 물려받고 당선
'의사' 40%… 기여입학제도 한몫
모두 공정경쟁이 더욱 요구되는
'진입장벽 높은 직업' 현실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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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일본에서 세습률이 가장 높은 직업군은 무엇일까요.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당' 혹은 '요리사'라고 대답을 하곤 합니다. 아마도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다가도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요리사가 되는 만화나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요. 과연 '식당'이나 '요리사'가 정답일까요.

2000년대 중반, 일본에서 살던 시절의 일입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포켓본으로 된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세습에 관한 이야기였는데요. 그 책에서는 세습률이 높은 직업군으로 두 가지 직업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첫 번째로 정치인을 지목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정치인들의 세습률이 약 30%에 이른다고 합니다. 집권 자민당을 기준으로 하면 그 비율이 40%까지 올라가기도 하지요. 더 놀라운 것은 당선율인데요. 부모나 3촌 이내의 존속인 현역의원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아 출마한 경우 당선율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무려 80%에 이른다는 것인데요. 비세습 후보의 당선율이 30%라는 것과 비교해 보면 어마어마한 수치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역대로 일본에서 내각을 구성하면 절반 정도의 각료가 세습 정치인으로 구성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지목한 것은 의사였습니다. 심지어 의사의 세습률이 40%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지요. 의사의 세습률이 높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기여입학을 허용하는 제도적 원인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돈을 내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계열의 학교를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연이어 다니면 대학교에도 기여금 비슷한 것을 내고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정치인과 의사에 이어 새롭게 세습률이 높은 직업군이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변호사인데요. 아직까지 관련 통계를 찾는 게 쉽지는 않지만 최근 세습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에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의사보다 늦게 세습직업군에 포함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로스쿨 제도의 도입 때문이라고 분석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법시험을 통과해야만 변호사가 될 수 있었는데,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좀 더 쉽게 변호사가 되는 길이 열렸다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세습률이 높은 직업군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바로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3방'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첫째가 지방(地盤) 즉, 지역적 기반입니다. 둘째는 간방(看板), 지명도 같은 것이지요. 세 번째는 가방(포)), 돈을 의미합니다. 이를 의사나 변호사에 대입해 보면,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대대로 같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하고, 좋은 학교나 좋은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아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이 지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로스쿨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고 또다시 연간 수천만원의 학비를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가방'이 작은 서민들은 꿈도 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습이란 모두 나쁜 것일까요. 부모의 뒤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거나 '요리사'가 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마도 그 장인정신을 칭찬해 주면서 박수로 축하해 주겠지요.

그럼에도 정치인이나 의사, 변호사의 세습률에는 깊은 관심과 우려를 표명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 직업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기도 하며, 누구나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은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한 마디로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라는 것이지요. 때문에 다른 직업들보다 훨씬 더 공정한 과정과 경쟁을 거쳐 그 직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어쩌면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의 다른 말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나 지위가 아닌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꿈을 이루는 사회니까요. 그게 우리가 바라는 미래 아닐까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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