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여의도 정치'

입력 2024-03-27 19:56 수정 2024-03-27 19:57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3-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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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대한민국은 일제의 잔재를 민의의 전당으로 재활용했다. 6·25 전쟁 전엔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이, 전쟁 후엔 일제 경성부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본관)이 국회의사당이었다. 지금 국회의원들이면 혀를 깨물고 죽어도 의사당 출근을 거부했을지 모른다. 1975년 9월 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준공되면서 국회는 역사적 수치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한국형 후진 정치, '여의도 정치'의 본거지로 추락을 거듭해 초라해졌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5년 "한국 정치는 사류"라고 비판했다 경을 쳤지만, 지금 한국인은 '여의도 정치'를 나라의 재앙거리로 여겨 혐오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산업화를 입법으로 떠받치고, 민주화를 87 개헌으로 실현한 국민을 대의한 곳이 여의도 국회였다. 1989년 12월 31일 헌정사상 최초의 청문회로 전두환을 국민 앞에 세운 것도 여의도 국회였다. 그때도 정략과 정쟁은 있었지만 적어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리민복이라는 명분과 대의를 지키는 정치였다. 노태우는 평화롭게 정권을 유지했고, 김영삼·김대중이 차례로 집권할 수 있었던 동력은 국회에서 나왔다.

큰 정치인들이 사라지자 명분과 대의도 사라졌다. 산업화, 민주화 다 이룬 자리에 달콤한 권력만 남았다. 박근혜 탄핵 사태 이후 정쟁 정치는 촛불 대중의 직접민주주의에 예속되며 전체주의적으로 타락했다. 국회는 음모와 선동의 진앙이 됐고, 거리의 대중이 SNS로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악순환에 갇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7일 '국회의 완전한 세종시 이전'을 공약하면서 4월 10일을 '여의도 정치 종식의 날'로 선언했다. 충청과 서울 민심을 겨냥한 공약이고, 중도민심엔 국민의힘이 새정치의 주역임을 각인하는 다목적 포석이다. 문제는 여의도 정치를 여야가 한 통속인 쓰레기 정치로 인식하는 국민 정서다. 여의도에서 엉망인 정치가 세종시 가서 달라질 이유가 없다. '여의도 정치'가 '세종 정치'로 바뀌면 세종대왕만 욕보이는 꼴이 될까 걱정이다. 여의도 정치가 처음부터 후졌던 건 아니다. 정치인들이 후져지고 퇴화했을 뿐이다.

이번 총선이 사상 최악인 것도, 여야가 사상 최악의 제도와 공천을 통해 여지껏 보지 못한 열등 후보들을 난립시켜서다. 여의도 정치 끝장론의 약효가 궁금하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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