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잊지 않았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참사 당시 너무 어려 "그런 일이 생겼구나…"중학생 돼서야 '비극' 인식… 당시 대응 분노'희생된 형·누나들에 부끄럽지 말아야' 다짐"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형·누나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죠."지난 22일 오전 10시께 안산시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수원고등학교에 다니는 조익주(18)군이 기억교실 2학년 1반을 찾았다. 기억교실에 처음 와 본다는 조군은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한 학생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달력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2014년 4월 15일부터 18일까지 수학여행 일정을 표시해 놓은 달력이었다.'세월호 장학생'인 조군은 그렇게 책상마다 놓인 유품들을 살폈다. 지난해 수원고 2학년 1반 반장이었던 그는 '416단원장학재단'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조군이 이날 단원고 기억교실 '2학년 1반'부터 찾은 이유다.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2015년 4월 설립된 단원장학재단은 해마다 경기도 학생과 교사들을 선발해 각각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학생 903명과 교사 44명이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받았다.조군은 한때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인 '영원한 캡틴' 박지성의 모교인 세류초등학교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축구 명문인 매탄중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아픈 무릎 때문에 결국 오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조군은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모범 학생이다.조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형·누나들에게 썼던 편지, '얼마나 두려우셨을까요'라는 첫 구절을 또렷이 기억했다."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형·누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어요. 세월호 참사 당시엔 제가 너무 어렸어요. 그냥 '그런 일이 생겼구나.' 했거든요. 중학생이 돼서야 엄청난 비극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정부가 조금만 더 대응을 잘했더라면 형·누나들이 모두 살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 생각을 하면 정말 화가 나요…."조군에게 세월호 장학금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세월호 장학금을 받은 이후 책임감 같은 것이 생긴 것 같다"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안타깝게 희생된 단원고 형·누나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416단원장학재단'에서 지난해 장학생으로 선정된 조익주(18) 군이 지난 22일 오전 안산 4·16 기억교실에서 책상에 앉아 추모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기획취재팀

2020-04-28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친구 잃은 또래들의 아픔

"함께 웃었는데… 한순간 사라져"억누른 감정 표출 기회 거의없어"얘기하고 공감하는 자리 마련되길"친구를 잃은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내색할 수 없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부짖는 친구의 부모님 앞에서 내가 가진 슬픔은 왠지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차디찬 바다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친구들의 장례식이 하루가 멀다 하게 안산에서 치러졌다.'난 어디까지 친구였지?', '걔도 날 친구로 생각했을까?'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슬픔의 무게가 가늠조차 되지 않던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함께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단원고 희생자들의 한 친구 이야기다.지난 2017년 봄 세월호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친구들이 처음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들의 아픔을 털어놓는 자리가 안산시 단원구 와동의 '치유공간 이웃'에 마련됐다. 치유공간 이웃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보듬는 시민사회단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또래 26명이 단원고 희생자 친구들의 아픔을 듣고 기록하는 자리였다.'공감기록단'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활동에 참여했던 전종현(23·대학생)씨는 "억누르던 감정을 트이게 해준 고마운 기회"였다고 떠올렸다. 단원중 출신인 전씨는 동네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에서 끓는 슬픔을 충분히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던 그였다. 남은 친구들에게 세월호 참사가 일종의 금기어로 여겨진 까닭이다.세월호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해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도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렵게 발걸음을 뗀 장례식장에선 친구 부모님은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전씨는 "'내 슬픔을 부모님의 슬픔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 울지도 못하고, 슬퍼하는 걸 내색해도 되는 건지도 고민했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전씨는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6주기를 기해 마련된 제주도 기행에 함께 따라갔다. 그 자리에서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의 부모님과 민간 잠수사, 생존자들을 만났다. 그는 "한 부모님이 '친구 얘기를 처음 듣는데 좋았어'라고 하셨는데, 그동안의 고민과 부담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전씨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표현했다. 공감기록단에 참여해 슬픔을 치유 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여전히 많은 동네 친구들이 그날의 아픔을 털어놓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는 "저마다 사랑했고, 아꼈던 친구를 잃었는데 슬프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며 "감정을 꾹 누르며 아프게 사는 친구들이 많은데, 함께 얘기하고 공감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치유공간 이웃 홈페이지 캡처

2020-04-28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단원고 학생 생존자 3명의 고민과 다짐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된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6년이란 시간이 지나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참혹했던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극적으로 구조된 한 학생은 전남 진도군 서거차도로 옮겨진 자신에게 따뜻한 담요와 위로의 말을 건넸던 119구조대 응급구조사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군 복무까지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떼려 하는 다른 한 학생은 후회 없는 삶을 다짐하며 미디어 콘텐츠 에디터를 꿈꾼다. 잠시 휴학을 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도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구조사로 경력을 쌓고 있는 장애진(23)씨, 그리고 이지훈(가명·23·대학생), 김소연(가명·23·휴학생)씨 등 세월호 참사를 겪은 청년 3명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월호'라는 낙인이 따라 붙다이들은 6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단원고 출신임을 주변에 드러내는 게 껄끄럽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원한 이씨와 김씨도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는 걸 걱정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는 장씨는 그런 면에선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익명성 뒤에 숨어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조롱하는 막말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장=사실 가장 부담되는 건 '아~그러냐'며 뭔가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지만, 저희들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김=물론 신경이 많이 쓰여요. 다른 사람들이 제가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상대 반응부터 살피게 돼요.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혼자서 계속 세월호라는 낙인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하게 되죠.이=뒤에서 무슨 말을 하든, 앞에서만 안 하면 다행이라 생각해요. 제 과거에 대해 남들이 폄하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깨달았어요.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로 평가하도록 치열하게 스스로를 개발하고 증명하는 방법이에요. 이렇게 하지도 않고 낙인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건 간절하지 않다고 외치는 것과 같아요. 제가 이런 노력을 했는데도 좋지 않게 보는 이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써요. 그건 억지에 불과하니까요.# 누군가는 지겹다지만… 우린 여전히 아프다.평생 잊지 못할 학창시절, 그 소중한 친구들을 잃은 이들의 상처는 깊다. 왜 친구들이 희생돼야 했는지, 왜 적극적인 구조가 없었는지,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는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다.장=자기가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하는 얘기가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그럴 거니까요. 아니, 그럴 수가 없죠. 저도 예전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사고를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일로 여겼어요. 하지만 막상 제 일이 돼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런 참사를 겪지 않은 이들에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라고 강요하긴 힘들겠죠. 하지만 지겹다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깎아내리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없어지려면 계속 말하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이=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생각해요. 굳이 그 주장에 반박하고 싶지도 않아요. 다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찢어지게 아팠던 경험은 절대 지겨워질 수 없다는 거예요. 아프지 않았다면 지겨울 수 있고, 이 생각이 이상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강요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저 아프지 않았던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는 거고, 많이 상처받은 사람은 공감해서 절대 지겹게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다짐의 의미는이들은 '진상규명'이라는 본질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 세월호와 관련한 여러 유언비어와 막말 등이 사람들을 이쪽 저쪽 편을 가르게 하고 다투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생존 학생들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위해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장=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곧 재발 방지로 이어지는 거예요. 잊으면 똑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될 겁니다. 참사 당사자인 제가 진상규명이 왜 필요한지 알리는 활동을 하는 이유예요. 사회 안전망은 너무도 중요한데, 쉽게 잊히곤 해요. 참사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재발도 없어요. 다른 참사 피해자들을 만나면 듣는 게 '우리가 잘해야 다음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더 노력해보려고요.이=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편을 나눠 다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서로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다가 싸우는 건데, 강요하면 할수록 사실과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넘어가고, 정작 중요한 본질은 흐려지고 말아요.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서로 이해하면서 싸우지 않는 시대가 오길 바랍니다.김=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면 처음에는 관심 없고 지겨워하던 사람들도, 점점 그 무언가에 문제가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게 떠올라요. 세월호 참사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계속 잊지 않고 얘기하면서 기억하는 거죠. 저희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발걸음을 계속할 거예요.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28일 오후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친구인 전종현(23·대학생)씨가 안산 단원고 교내 펜스에 달린 노란 리본을 바라보고 있다. /기획취재팀

2020-04-28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주민과 유가족 연결하는 '4·16 안산시민연대'

추모시설 놓고 일부서 갈등 빚기도 6년 흘러가며 생긴 '벽' 허무는 역할"안전한 사회, 새로운 비전 세울 시점"안산지역 시민들은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혹은 그들의 부모, 형제·자매 등과 '아는 사이'였다. 안산 시민들의 아픔과 책임감이 유독 남달랐던 이유다. 참사 초기에 안산시 지역사회는 남은 가족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6년이란 세월은 한결같던 그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기엔 긴 시간이었다. 기억교실 이전, 합동 분향소 폐쇄, 생명안전공원 건립 등 추모시설을 놓고 일부 주민들과 유가족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아지기도 했다.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서는 화랑유원지에서 지난 16일 열린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 때 '화랑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유가족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던 몇몇 주민들의 모습은 이런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4·16 안산시민연대는 유가족과 일부 주민들 사이에 생긴 벽을 허무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향한 유가족들의 고독한 싸움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위성태 안산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유가족과 안산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만나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며 "유가족들은 동네에 들어가서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반대로 유가족들을 만나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고 싶어 하는 시민들도 많다"고 설명했다.위 사무국장은 안산지역에서 빚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이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봤다. 하나의 사업을 추진할 때 찬성과 반대 입장은 언제든 나뉘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 추모와 관련한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는 행동과 발언은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사무국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신과 입장을 가지고 누구나 자기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세월호와 관련한 갈등이 꼭 안산지역이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소통을 통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아가는 게 중요한데, 대화는 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거나 거친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어 굉장히 안타깝다"고 했다.그는 안산을 생명 존중 도시로 만들기 위해 많은 시민이 안산시민연대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고 했다. 그날의 슬픔을 승화시켜 안전사회를 건설하는 일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여겼다.위 사무국장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과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점"이라며 "안산시가 세월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원의 마음을 보태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4-28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4·16의 기억' 남기는 화가

이종구 화백, 단원고 학생 화폭 담아작가로서 '마음의 힘' 소진되는 느낌'다시 4월, 봄이 오다' 10월까지 전시"우리나라의 축적된 모순으로 소중한 아이들이 희생됐어요. 기성세대가 반성하고 앞장서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함께 그 길을 가자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인천에 작업실을 둔 이종구 화백(중앙대 미술학부 교수)을 만났다. 그는 안산시 단원고 근처에 있는 한 전시실에서 보자고 했다. 학교 근처 주택가의 작은 상가 건물 3층에 자리한 '4·16 기억전시관'이었다. 지난 9일 오후 2시께 찾아간 이곳에는 그와 정평한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 화백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생전 모습을 그림으로 담았다. 아이들이 1학년 때 반별로 찍은 단체 사진을 구해 그렸다. 그림 속 아이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한가운데 담임 선생님을 향해 자기 반 숫자를 가리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 중 325명이 이듬해 인천에서 수학여행지인 제주도로 향하는 세월호에 몸을 실었고 그날 사고로 250명이 숨졌다.이 화백은 2017년 여름 해남 임하도의 한 폐교에서 먹고 자면서 꼬박 3개월을 작업했다. 세월호가 다니던 뱃길이 보이는 곳이다. 그는 "이 시대의 작가라면 누구나 세월호를 그대로 지나치기 어려울 것"이라며 "화가로서 아이들의 영혼이라도 되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림으로 기록해서 역사적 증언을 해야겠다는 각오였다"고 말했다.이 화백은 이 그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 이어 탄생한 새 정부, 그리고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들을 화폭에 담아 2018년 서울 종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광장-봄이 오다' 개인전을 열었다.작업을 모두 마치고 '4·16 기억교실(현재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위치)'을 다시 찾았다는 이 화백은 "초상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책상 위에 놓인, 이제는 영정이 된 사진 속에서 만났을 때의 그 충격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작가로서 마음의 힘이 완전히 소진되는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산 자의 초상이 아닌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그리는 작업이라서 마음이 무겁고 힘겨웠어요. 영혼들이 나를 바라보는 그런 긴장감을 느꼈어요. 목숨을 잃은 아이들을 모두 빼면 이 그림들이 어떻겠습니까. 끔찍해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배경색을 핑크 등으로 예쁘고 따뜻한 색으로 채워넣어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이번 '다시 4월, 봄이 오다' 전시회는 '4·16 기억전시관'에서 오는 10월까지 이어진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안산시 단원고 근처 주택가의 한 작은 상가 건물에 자리한 4.16 기억전시관에서 '다시 4월, 봄이 오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화폭에 담은 이종구 화백(중앙대 미술학부 교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기획취재팀

2020-04-28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어디까지 왔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구성됐다. 사참위는 박근혜 정부 때 출범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사 활동을 당시 청와대와 정부 부처가 조직적으로 방해한 증거를 발견하고 최근 수사를 요청했다.2기 특조위로 불리기도 하는 사참위는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18층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및 개인정보 수집 등과 관련해 조사한 결과 국정원 법상 직권 남용의 금지 및 직권남용죄 등 범죄 혐의에 대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며 "국정원 전·현직 직원 5명과 불상의 직원 수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사참위 조사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 최소 2명은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최소 3건 이상의 보고서를 작성해 국정원 내부망에 보고했다. 또 국정원으로부터 입수한 세월호 참사 관련 동향 보고서 215건 중 48건의 보고서가 유가족 사찰과 관련된 것으로 사참위는 파악했다.여론조작 관련 보고서도 9건이 있었다는 게 사참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보수(건전) 세력(언론)을 통한 맞대응'과 '침체된 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한 일상복귀 분위기 조성' 등 제목의 보고서에는 세월호 추모 분위기를 공익광고 등의 캠페인으로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게다가 국정원 자체 예산으로 '세월호 참사를 이제 잊고 새로운 사회를 위해 나아가자'란 내용의 동영상을 외주로 제작해 게시하기도 했다.앞선 지난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참위는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전·현직 공무원 19명과 국무조정실 등 10개 정부 부처를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수사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사참위는 지난 2015년 특조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을 조사하려 하자 청와대와 여러 정부 부처가 조직적으로 방해 활동을 펼친 증거를 확인했다고 했다.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조사 방해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도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재원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조대환 전 특조위 부위원장 등 박근혜 정부의 여권 인사들이 특조위 활동을 방해해 왔다고 주장해 왔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기춘 전 비서실장, 현기환 전 정무수석, 최경환·유일호 전 기재부 장관 등도 조사방해에 가담했다며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앞서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지휘부 11명의 재판은 지난 20일 시작됐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27일 오전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원의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관련 수사요청 기자회견에서 박병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국장이 조사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04-28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어느 수학여행 안전요원의 고백

4대 보험 6개월치 내고 여행사 직원으로수료증 대여가능 허점… 잔심부름 도맡아사전답사 제외 현장 대응력 부족도 문제'수학여행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수학여행·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내놓았습니다. 안전요원도 그렇게 생겨난 겁니다. 작은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는 저도 봄·가을에는 안전요원으로 일합니다. 코로나19 사태만 아니었다면, 지금 한창 바쁠 때죠.부끄러운 고백을 하겠습니다. 3년 전이에요. 한 여행사 대표가 안전요원으로 일할 사람들을 급히 구한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학교와 수학여행 계약을 하려면 안전요원이 필요했던 거죠.안전요원이 되려면 일정한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국내여행안내사, 국외여행인솔자, 소방안전교육사, 응급구조사, 청소년지도사, 숲길체험지도사 등에게만 교육받을 자격을 줍니다.여행사 대표는 어느 민간단체가 발급하는 국외여행인솔자 자격증을 추천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따기가 쉽거든요. 해외를 나가본 적 없는 제게 여권에 도장 하나는 찍혀 있어야 한다더군요. 부랴부랴 여권을 만들고 당일치기로 일본을 다녀왔죠. 이 자격증을 따려면 여행사에 최소 6개월 이상 근무해야 합니다. 여행사 직원인 것처럼 꾸미려고 최저임금 수준으로 4대 보험 6개월 치를 냈어요. 당국에는 신고가 늦었다고 거짓말을 했죠. 자격증 시험이요? 수업도 안 받고 자격증을 손에 쥔 사람도 봤습니다.이렇게 꼼수로 자격증을 따서 교육부가 대한적십자사에 위탁한 안전요원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정작 학생 인솔에 필요한 전문 교육은 빠져 있더군요. 응급처치 위주였습니다. 적십자가 발급하는 안전요원 수료증은 사진이 안 들어가 대여도 가능하다는 허점이 있어요.안전요원은 학생들을 안전하게 인솔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표소 발권 등 잔심부름까지 안전요원 몫이에요. 교사, 학부모 등이 따라가는 수학여행 사전 답사에 안전요원이 빠진다는 점도 문제예요. 안전요원들이 현장을 몰라 허둥지둥합니다.매뉴얼에 따라 학생 50명당 1명씩은 안전요원을 둬야 합니다. 학생이 100명 미만이면 안전요원은 단 1명만 있어도 된다는 계산이 나오죠. 안전요원은 최소 인력만 쓰고 나머지는 알바생으로 채우는 게 현실입니다.혹여 저의 이야기로 원칙을 지키는 여행사, 학교 관계자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수많은 안전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봤으면 합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정부는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확정,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재난안전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한다는 목표로 당시 국무총리실과 국민안전처를 중심으로 17개 부·처·청이 참여한 중장기 종합계획이다. 학생·학교 안전관리, 소방·해경의 현장 대응 역량 강화, 해양(선박) 안전 등 다양한 정책이 수립됐다. 수학여행 안전요원 대책도 이때 나왔다. 경인일보는 이 익명의 제보자와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추가 취재를 통해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 과정을 거쳤다.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4-27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유가족 '정부 배려 당부'

6살 아들과 아빠 등 43명 가족품 못돌아와인천 추모관 '운영비 문제' 한때 문닫기도세월호 참사 당시 고(故) 권모(당시 50세)씨 가족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권씨와 아내 그리고 6살 아들은 미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한 살 터울 오빠가 벗어 입혀준 구명조끼를 입고 있던 어린 딸만 가까스로 구조돼 홀로 남게 됐다. 딸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됐고, 권씨와 그의 아들은 유해조차 수습되지 못한 채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수습자'로 남아 있다.우리는 이들을 일반인 희생자라고 부른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출항한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에는 모두 476명이 탑승했다.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그리고 일반인 승객 104명, 여기에 선원 23명과 승무원 10명이 함께 있었다. 그날의 참사로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희생됐다. 일반승객 33명, 선원 5명, 승무원 5명도 끝내 구조되지 못한 채 가족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참사 이후 희생자들은 크게 '단원고 희생자'와 '일반인 희생자'로 나뉘었다. 이들 유가족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한목소리를 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안전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도 같았다.하지만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세월호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일반인 희생자가 지워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지난 6년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해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에 아쉬움이 짙어지는 시간이었다.지난 20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인천가족공원 내 세월호일반인희생자추모관에서 만난 전태호 세월호일반인유가족협의회 위원장도 이 같은 설움을 토로했다.전태호 위원장은 "대부분 세월호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단원고를 먼저 떠올린다"며 "상대적으로 일반인 희생자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일반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16년 참사 2주기에 맞춰 개관한 이 추모관은 한동안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비를 들여 추모관을 지어놓고도, 운영 경비 문제로 2017년에는 수개월 간 문을 걸어잠근 일까지 있었다.전 위원장은 일반인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에 정부가 더욱 귀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아주 어린 나이였던 아이들이 추모관으로 견학을 온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편히 앉아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며 "정부, 지자체와 협의해 제2의 추모관을 짓고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다양한 교육과 홍보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4-27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진실규명 향한 '5대 정책과제'

416연대, 총선 전 '정책과제 약속운동'참사 진상 캐기·안전사회 '방향' 제시참여자 144명 '금배지'… 2명 추가동참국회가 유가족의 요구 응답해야 할 때드넓은 바다 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노란 빛깔 부표가 갑판에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부표에 적힌 '세월호'라는 글자가 선명해지면서 그날을 떠올리는 유가족들의 아픔도 또렷해졌다.세월호 참사 6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2일 새벽 2시께 유가족들은 참사 해역으로 향했다. 안산에서 전남 목포까지 버스를 타고 340㎞, 오전 8시께 목포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서 경비함(3015)으로 갈아타 진도 맹골수도까지 다시 110㎞. 사고 해역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9시간이 걸렸다.목적지에 다다르자 기나긴 시간 동안 담담함을 유지하던 유가족들의 감정이 파도에 흔들리는 부표처럼 요동쳤다. 미리 준비한 국화를 바다에 헌화하면서는 갑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가족들은 참사 당일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떠올린 듯했다. 먼저 자식을 떠나 보낸 한 어머니는 아이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먼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40분간 이어진 추모식이 끝날 때까지 유가족들은 갑판 위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슬픔을 달랬다.당일 전국에 많은 비가 예고됐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선상 추모식을 하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목포신항의 세월호 선체를 둘러볼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고(故) 장준형군의 아버지 장훈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모든 일정이 끝나려고 하니 비가 내리려 한다. 고생할 부모들을 생각해 아이들이 함께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이날 유가족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꼭 밝혀내겠다는 약속이었다.다음날인 13일 유가족들의 이런 다짐에 함께하겠다는 이들의 소식이 전해졌다.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4·15 총선을 앞두고 진행한 '21대 총선 5대 정책과제 약속운동'에 총 932명 후보자 중 429명이 참여하기로 했다.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과제로 선정한 다섯 가지 정책은 사고 당일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고(故) 김건우군의 아버지 김광배 4·16 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세월호가 정치적인 이슈가 될 순 없지만,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 정치적인 부분이 필요하다면 그런 부분도 수용할 수 있다"며 약속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우선, 유가족들은 참사 당시 '7시간 의혹'으로 불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연치 않은 행적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대통령 기록물' 공개를 요구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상 국회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을 경우 최소한의 범위에서 열람과 자료 제출이 가능한 부분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진상조사 기간 연장과 충분한 조사 인력 보장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세월호 참사 2기 특별조사위원회 격인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 활동 기간이 오는 12월 10일 종료된다. 사회적 참사 특별법을 개정해 조사 기간을 1년 더 연장하고 120명 이내인 인력도 늘려야 한다는 취지다.김광배 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2018년 사참위가 출범한 이후 당시 해경의 구조 작업과 후속 대처와 관련한 여러 의혹을 조사하는 등 많은 노력과 성과가 있었다"며 "하지만 부족한 시간과 인력 문제로 실질적인 진상규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지적했다.두 가지 정책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여러 '물음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요구는 안전사회 건설을 목표로 한다. 기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 관련법의 범위가 중대안전사고를 포함하지 못해 발생한 사각지대를 '국민안전권' 명문화로 보완하자는 목소리다.5대 정책 과제에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혐오 발언의 처벌 규정을 강화할 것과 민간잠수사 등 구조·수습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과 기간제 교사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책 마련도 요구하고 있다."가족들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이해해 달라고만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싸움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 정치성향, 이데올로기가 달라도 사람의 생명이 가치 있고 고귀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은 앞으로도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싸워나갈 겁니다." (김광배 가족협의회 사무처장)5대 정책 과제를 약속한 21대 총선 후보자 429명 가운데 144명이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고, 선거 이후에도 당선자 2명이 추가로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가족들의 간절한 호소에 이제 국회가 응답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 12일 오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 유가족들이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 /기획취재팀

2020-04-27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국가와 싸우는 피해자들… '故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

'맞춤 복지' 적용 못 받아 보험금 지급 제외 경기도교육청 상대로 손배소 대법 선고 남아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고(故) 김초원 교사가 3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을 때, 부친 김성욱(61)씨는 서둘러 묘비부터 살폈다. 그는 딸아이의 이름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기간제'라는 세 글자가 혹시라도 묘비에까지 적혀있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김씨는 사고 이후 6년간 딸의 죽음에 새겨진 기간제라는 낙인을 지우는 사투를 벌여왔다. 뒤늦게나마 국가로부터 딸의 순직을 인정받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김씨는 지난 2017년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2천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딸의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요구인데, 이 역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차별과 관련이 깊다.안타깝게 숨진 단원고 교사 11명 가운데 기간제 신분은 김초원 교사를 포함한 2명이다. 이들은 정규 교사에게만 '맞춤형 복지제도'가 적용된 탓에 생명보험에 가입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김씨 측 변호인단은 도교육청과의 소송에서 기간제 교사도 맞춤형 복지제도가 적용되는 교육공무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교육청이 이들을 배제한 건 명백한 차별적 처우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법원은 정규·기간제 교사에게 주어진 책임의 정도 등을 고려할 때 이 둘을 동등하게 볼 수 없다는 취지로 김씨의 청구를 1심과 2심에서 모두 기각했다.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김씨는 딸을 위한 자신의 싸움이 모든 기간제 교사에게 선한 영향력이 되길 소망했다. 참사 이후 기간제 교사의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각 시·도교육청은 기간제 교사에게도 맞춤형 복지제도를 적용할 수 있는 일정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육청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기간제 교사에게는 생명보험이 포함된 기본복지점수만 부여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기간제 교사에게도 정규 교사와 차별 없이 근속·가족복지점수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강제력이 없어 현장 교육행정에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김씨는 "기간제 교사도 담임을 맡고, 수업을 하고, 행정업무를 처리한다. 하는 일만 놓고 본다면 정규 교사와 차이가 없다"며 "차이가 없다는 건 처우에서도 차별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 딸과 기간제 교사들이 받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 6일 고(故) 김초원 교사의 부친 김성욱씨를 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김씨는 딸의 명예회복과 기간제 교사들이 받고 있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2020-04-27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국가와 싸우는 피해자들… 구조 위해 달려간 '민간 잠수사들'

팽목항 간 20여명 선체수색 트라우마 시달려해경 계약 안맺어 '산재 배제'… 지원법 국회에"그날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어두컴컴한 선실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구조되기를 기다리다 마지막을 맞은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막 소리를 질렀습니다…."세월호 참사 직후 가장 먼저 선체 수색 작업에 나선 민간 잠수사들의 삶도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해역은 조류가 센 곳이다. 목숨을 걸고 바다로 뛰어든 그들은 희생자 수습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잠수병의 하나로 뼈 조직이 썩어간다는 '골괴사' 판정을 받아 더는 잠수사로서 가족의 생계를 잇지 못하는 이들도 허다하다. 차디찬 주검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들은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등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지난 16일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에서 민간 잠수사 피해자 황병주(61), 하규성(51), 김상우(48)씨를 만났다. 첫 선내 진입을 하던 2014년 4월 20일,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황씨는 "아이들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겠냐"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쿠웨이트에서 일하던 중 사고 소식을 접하고 즉시 귀국해 수색 작업에 합류했다는 하씨는 "당시 우리 집 애들도 고등학생이었다"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고개를 떨구었다.표정이 어둡던 김씨는 "국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세월초 참사 초기에 팽목항으로 달려간 20여명의 민간 잠수사들은 보상은커녕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그해 7월 10일 이후 해경과 계약을 맺은 업체 소속 잠수사들과는 달리 이들은 부상을 당해도 산업재해보상을 받지 못했다. 사망 또는 신체장애를 입은 수난구호 업무 종사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한 '수난구호법'에서도 온전히 보호받을 수 없었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의상자로도 지정되지 못했다. 김씨는 "제대로 치료받게 해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서글프고 분노가 치민다"며 목소리를 높였다.현업으로 복귀한 잠수사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생활고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민간 잠수사 김관홍씨는 2016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관홍이가 생전에 '형, 대리운전하면서 어떻게 애들을 키우지'라며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민간 잠수사 등으로 피해자 범위를 넓혀 발의한 이른바 '김관홍법'으로 불리는 세월호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 16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에 참가한 민간 잠수사 피해자 김상우, 황병주, 하규성(왼쪽부터)씨.

2020-04-27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국립트라우마센터' 언제쯤…

박근혜정부서 시작… 예산 전액 삭감 정권 바뀌고 재추진 "본궤도 2~3년 더"정부가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약속한 국립 트라우마 지원 센터는 6년째 답보상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안산에 트라우마 관련 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이 센터는 각종 재난·재해로 인한 피해자들의 정신적·신체적 치료를 종합 지원하는 곳이다.보건복지부는 센터 건립을 위해 2016년도 정부 예산에 설계비(3억8천400만원) 등 총사업비 200억원(건축비 100억원·장비 100억원·안산시 부지 제공)을 반영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면서 이런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당시 기재부는 세월호 피해자 심리 상담과 치료 지원을 돕기 위해 경기도가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 위탁해 임시로 운영 중인 안산온마음센터(옛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국립 센터 건립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냈다.겉돌던 이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란 명칭으로 재추진됐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6주기인 지난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도 "다시는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약속한 '안전한 나라'를 되새긴다"며 "4·16생명안전공원,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건립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하지만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건립 사업은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진행이 더디기만 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19년 용역을 한 차례 진행해 '정신건강·신체건강 치료'란 큰 틀의 구상을 세우고 내년도 자체 예산안으로 올려둔 상태"라며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각종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정부로부터 그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의료진에 자신이 세월호 참사 피해자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치료 과정에서도 그날의 아픈 상처를 다시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세월호 피해자들이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건립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당장 기댈 수 있는 곳은 안산온마음센터가 유일하다. 이곳은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왔다. 총 903명(2019년 12월 등록 기준)이 이곳에서 심리 치료와 상담 등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센터 측은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건립과 맞물려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지원받고 있는 센터 운영 예산(국비·도비)이 오는 2024년을 마지막으로 끊기게 된다. 또 정부가 그동안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건립을 추진하면서 정작 안산온마음센터 측과 어떠한 논의도 진행한 사실이 없다.익명을 원한 안산온마음센터 한 직원은 "언제까지 운영되는 것인지 우리도 모른다"며 "언제 실직할지 모른다는 혼란과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기도 힘들다는 현실적 이유가 혼재한다"고 하소연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세월호참사 6주기 기억식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안산온마음센터 재난심리지원종합플랫폼 홈페이지 캡처

2020-04-27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아빠마저 데려간 세월호

조울증 앓던 부친 결국 예전으로 못돌아가형이 남긴 동생 방명록에 '안타까운 소식'"남은 자 위한 전문치유시설 만들어지길"4월의 봄이 지나고 있다. 그들에게 했던 약속,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두 번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책임자 처벌 문제도 아직 제자리걸음이다.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날의 시간에 멈춰 있다. 얼마 전 우리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했다. 먼저 떠난 자식을 그리워하던 두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등졌다.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민이 안전한 나라, 그리고 빈틈없는 피해 지원을 약속하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수많은 희생과 맞바꾼 대한민국의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는 데서 이 기획은 출발한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 편집자 주세월호 참사 때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로 숨진 단원고 손모군의 부모님은 '기억교실'을 찾을 때마다 늘 작은아들에게 편지를 남겼다.아들의 스무 번째 생일 날에도, 학교 졸업장을 3년 만에 받아들었을 때도, 아들이 꿈속에 나타나 주지 않아서, 또 꿈에 찾아와준 게 반가워서…. 먼저 떠난 작은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무칠 때마다 아이의 책상에 올려진 메모장에 '엄마 아빠가'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편지를 썼다.'엄마랑 아빠랑 왔다 간다 너무 보고 싶은 내 새끼!', 이 짧은 한 줄은 손군에게 아버지가 보낸 마지막 글귀가 됐다.아버지의 이 편지가 적힌 바로 다음 장에 큰아들 손모(36)씨는 가족의 최근 소식을 전하는 글을 남겼다. '예쁜 내 동생 ○○야! 형수 될 사람하고 엄마, 이모 왔다 간다. 아버지도 니 곁으로 가셨구나. 하늘에서 우리 가족 지켜줘~ 사랑한다 내 동생아♡ 2020.3.11'.그의 아버지는 지난 2월 스스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2014년 4월 16일 이전의 자상했던 가장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주위에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지난 21일 만난 손씨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렇게 기억했다. 작은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조금씩 변해갔다. 수더분했던 아버지가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빚는 일이 잦아졌다. 그의 아버지는 조울증을 앓았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폭력 성향이 가족에게까지 뻗쳤다. 손씨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같은 상실감을 안고 있는 남은 가족들도 살아야 했다."어머니도 심적으로 힘든데, 아버지까지 그러시니까…. 그런데 정신병원에 아버지를 가뒀다는 게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래서 일주일 만에 퇴원시켜드렸죠."유서 한 장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에 손씨는 헛헛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평상시랑 똑같았다고 해요. 어머니, 이모님과 같이 저녁 식사하고 주무시다가 갑자기 새벽에 나가셨대요. 저는 정말 아쉽고, 안타까워요. 가족 뒷바라지에 돈도 한 번 제대로 써본 적 없으시거든요…."손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겪은 '마음의 병'을 전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시설이 하루빨리 만들어지길 소망했다."세월호 참사로 동생을 잃고, 최근에는 아버지까지… 남일 인줄만 알았어요.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제대로 치유될 수 있게끔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요."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세월호 참사 때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로 숨진 안산 단원고 손모군의 4·16 기억교실 방명록 한 페이지에 왼쪽에는 부모님의 글귀가, 오른쪽에는 최근 세상을 등진 아버지의 슬픈 소식을 전하는 형의 글귀가 남겨져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기획취재팀

2020-04-26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또다른 유가족의 '비극

동생 몫 '사명감' 할머니까지 돌봐야추억의 물건으로 '옛 기억'만 떠올려"6년이 지나… 또다른 피해를 막아야"지난 20일 안산 중앙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모(25)씨는 메고 온 가방에서 뽀얀 먼지가 앉은 게임기와 CD 2장을 꺼냈다. 하나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동생과 어린 시절 즐겨 한 게임이라고 했다. 철 지난 게임이지만 그에게는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애틋한 물건이다."세월호 참사 이후 당신 삶의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그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안산 단원고 학생이었던 한 살 터울 동생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났고, 지난해 12월에는 아버지마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김씨는 이제 한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그와 동생은 집안 사정 때문에 학창 시절 아버지와 꽤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다고 한다. 동생이 떠난 뒤 아버지가 더 깊은 슬픔에 빠졌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작은 아들이 수능시험을 보지 못한 채 떠난 걸 안타깝게 여겨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기로 마음먹은 아버지였다. 자격증을 딴 이후에는 영상 편집 기술을 배워 유튜브를 하고, 블로그도 운영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아버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일주일 전쯤 온 가족이 만난 자리가 마지막이었다.아버지의 빈 자리는 컸다. 김씨에게는 동생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에 더해 이제는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큰 파도처럼 다가왔을 것이다."돌이켜보면 동생은 내가 살아가면서 어려울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인생의 전우'였어요. 아버지는 '인생의 선배'라고 해야 할까요. 인생 선배로서 물어볼 것도 많은데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떠나 슬프면서도 화가 나요."그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길 바란다고 했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났어요. 지금 중요한 건 세월호 참사로 인한 또 다른 피해를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입으로 하게 될 말일 줄은 몰랐어요. 세월호를 잊지 말았으면 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모여 여론이 되고, 그 힘이 다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승객 304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며 국가 재난 안전 시스템의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지난 12일 선상추모식에 참석한 한 유가족이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사고 지점을 향하던 중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고 있다. /기획취재팀

2020-04-26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인터뷰·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나긴 투쟁, 나이 드는 유가족… 트라우마 본격적 발현 안돼'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위해 참사 새롭게 정의해야할 시점두 유가족의 이야기는 '트라우마'라는 공통 분모로 귀결된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고통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유가족들에게 "그 정도면 됐다"며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주문한다. 이들의 말처럼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는 충분히 치유된 것일까."세월호 참사 이후 당신 삶의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습니까?"동생에 이어 아버지까지 잃은 김씨에게 던진 이 질문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등에게 한 연구자가 있다. 그날의 시간에 갇힌 피해자들의 삶을 관통하는 물음이다. 이들은 건강 상태, 경제 여건, 사회적 관계 등 자신이 오랜 기간 쌓아온 것들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017년 1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5개월간 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인터뷰 기반의 연구를 진행했다. '공감 격차'는 이 연구의 중요한 키워드였다. 캐나다의 인간공학자 캐런 메싱은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고통'에서 이 말을 썼다. 가령 일하기 위해 어깨를 반복적으로 써야 하는 노동자가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을 때 "어깨를 쓰지 말라"고 의사가 처방하는 상황을 일컬어 공감 격차라고 부른다. 의사는 증상만 보았고, 증상이 나오기 전까지 환자의 삶을 보지 못한 것이다.박 교수도 외부인의 시각이나 전문가의 진단 차원의 관여에서 벗어나, 먼저 세월호 유가족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연구를 시작했다."우린 모두 증상만 봤어요. (트라우마가) 어디에서 왔고, 왜 왔는지 관심이 없었어요.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운이 없어 죽은 걸로 만든 국가에 대한 좌절감이 생각보다 컸어요.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해줘야 유가족들도 희망이 생겨요. 희망을 주지 않고 치유만 하려고 하는 것도 공감 격차라고 할 수 있죠."박 교수는 유가족들이 느끼는 이른바 '사회적 통증'에 주목한다. 가족과 동네 이웃, 직장 동료, 친구 등 가까운 이들(1차 지지 체계)과의 관계가 끊기는 사회적 고립을 체감했다. 자아 정체감도 흔들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유가족 신분,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먼저 세상을 떠난 '희생자 엄마·아빠'로 살아가는 경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웠던 시간 등 그들은 '아픈 투사'가 되어 갔다."참사 초기 유가족들이 느낀 건 상실로 인한 분노와 억울함이었어요. 그 대상이 국가잖아요. 손에 잡히는 대상이 아니란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는 데도 진상규명이 안 되니까 그땐 자기 자신을 비난해요. 이 시점부터 주변 사람들과 고립되기 시작하죠. 한 유가족의 친척은 본인 아이가 고3인데, 사촌이 죽은 걸 알면 입시에 문제가 있을까봐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많은 부모님이 본인 형제나 가족과도 관계가 멀어지는 경험을 해요."그들도 언제까지나 '투사'로만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유가족, 특히 부모들의 '나이 듦'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박 교수는 이를 '생존 기반의 흔들림'이라고 봤다. 참사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부모들은 어느새 50대가 됐다. 지독한 슬픔 혹은 처절한 싸움에 전념하느라 돌보지 못했던 주변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분석이다."6년간 기나긴 투쟁을 하면서 부모님들도 나이를 먹었어요. 이젠 재취업도 어렵고, 긴 싸움을 하면서 건강도 잃었죠. 몸도 아프고, 정신적으로 우울함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단계예요. 모든 상황이 종결되면 혼자 청소년기를 보내고 성인기를 맞은 남은 자식들에게도 눈이 가면서 또 다른 미안함과 슬픈 감정을 느낄 거예요."박 교수는 최근 유가족 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아주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몇몇 연구에서 유가족들의 사회 활동을 '외상 후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기도 해요. 저는 그걸 말할 시점이 아니라고 봐요. 외상 후 성장이 되려면 아이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충분한 애도를 통해 사회가 아닌 자신에게 눈을 돌려야 해요. 본인의 상처가 나아야 성장이 되기 때문이죠. 저는 더는 규명할 게 없어지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부모님들이 그동안 놓쳐버린 많은 것들에 대한 상실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유가족 부모님들의 남은 삶을 살피는 종단 연구를 계속 하겠다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박 교수는 유가족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본격적으로 발현되지 않았음을 거듭 지적했다. 그러면서 6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2020년의 시각에서 6년 전 세월호의 사회적 의미를 다시 정의하면, 우리 사회가 유가족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돼요. 유가족들은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죠. 그들도 곧 60대를 바라봐요. 참사 이후 자살을 하거나 알코올 중독, 이혼 등 어려움을 겪은 분들이 있었고, 동료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견뎌 온 유가족들이 많아요. 이들의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고 명예로운 일이었다고 인정해야 해요. 국가와 사회가 이런 희망을 줘야 남은 가족들도 끝까지 살아갈 힘을 얻을 거예요."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4-26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데이터로 살펴본 '트라우마'

305명중 75%가 '가족원간 스트레스'생존자들 '극단적 선택 생각' 5% 달해"외상후 울분 영향… 지지감 개선해야"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무력감과 우울증 등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알코올 의존 증세가 심해지거나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가정불화를 겪는가 하면, 심지어 삶의 끈을 놓으려 했던 이들도 있다.안산온마음센터가 내놓은 '4·16 피해자 건강 및 생활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세월호 유가족들은 무기력(14.3%)·우울(14.2%)·짜증(13.9%)·분노(13.2%)·죄책감(12.8%)·불안(12.5%) 등 부정적인 심리 상태를 보였다.정신 건강상 문제는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69.9%가 수면 시간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56.1%는 식사량이 줄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전후의 음주 상태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알코올 사용 장애(음주로 일상·심리·생리에 문제가 생긴 음주자)는 7.3%에서 10.9%로 증가했다. 알코올 의존도(사회·심리·신체적 장애를 겪고 음주를 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운 상태) 역시 1.7%에서 14.8%로 늘었다.사회적 활동이 위축되기도 했다. 현재 직업이 있다는 응답은 절반 이하(46.4%)에 그쳤다. 월수입이 줄었다고 답한 이들도 61.9%에 달했다. 가정불화도 심각했다. 가족 간 스트레스가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전체의 77.4%나 됐다. 이중 '극심하다'(7%)거나 '상당했다'(24.3%)는 응답도 31.3%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특히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5%에 이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단원고 학생 등 생존자들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우울(17.6%)·무기력(16.7%)·불안(15.8%)·짜증(14%) 등 부정적 심리 상태를 보였고, 알코올 사용 장애(9.4%→17.2%로)와 알코올 의존도(1.6%→12.5%)가 높아졌다.응답자의 66.7%가 가족 간 스트레스가 있다고 답했다. 대인관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생존자(31.8%)도 적지 않았다.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다는 응답도 5%에 이르렀다.이 조사는 2017년 10월부터 12월까지 유가족과 생존자 등 305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유가족은 239명으로, 이 중 72.8%는 희생자 부모, 20.9%는 형제·자매였다. 생존자 응답자(66명) 중 단원고 학생은 41명, 일반인은 25명이었다. 여성은 167명으로 전체의 54.7%, 남성은 138명으로 45.3%였다. 센터는 조사 결과를 가지고 1년간 분석·연구 과정을 거쳐 이듬해인 2018년 12월 보고서를 공개했다. → 그래픽 참조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깊이 있게 관찰한 연구 자료도 주목할 만하다.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이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재난피해자 정신건강 추적연구결과'에서 생존 학생들 14.6%가 불안·PTSD·복합성 애도·불면증을 보였고, 25%는 우울 증세가, 31.3%는 신체화(심리적 조건이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지는 현상) 단계가 나타났다. 이 같은 증세는 1주기가 되던 날 가장 악화했다가 대입 이후 다시 나빠져 지속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한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이 과장은 당시 연구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 학생의 '외상 후 울분' 증상 정도가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주관적, 사회적 지지감을 개선해 삶의 의미에 긍정적 영향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4-26 경인일보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그들은 왜…연락마저 끊은 유가족들

안산온마음센터, 900여명 '5단계 관리'경인일보 취재 결과 '미파악자' 42명"재발방지·진상규명이 먼저" 거부도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단원고 고(故) 고우재 군의 아버지 고영환(54)씨는 6년째 전남 진도군 팽목항(진도항)을 지키고 있다. 먼저 떠난 자식이 눈에 밟혀 팽목항을 떠날 수 없었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는 심리 상담이라도 받아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한사코 뿌리쳤다.지난 12일 진도항에서 만난 고씨는 "남은 자식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며 "부모가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자식 취업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들 하는데, 당최 믿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고씨처럼 최소한의 심리 치료조차 거부하거나 연락을 끊은 채 고립된 삶을 사는 세월호 유가족 등이 수십 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산온마음센터는 세월호 유가족 중 42명을 이른바 '미파악자'로 분류하고 있다. 심리 치료 지원을 받지 않으려 하거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이들이다.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란 이름으로 2014년 5월 문을 연 센터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903명(2019년 12월 기준)의 심리 상담과 지원을 전담하고 있는 곳이다. 정신건강전문 심리상담사 22명과 정신건강전문의 4명(상근2·비상근2)이 치료를 돕고 있다.센터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험도에 따라 '집중'·'유지'·'일시'·'파악'·'미파악' 등 5가지 단계로 관리 중이다. 집중 관리 대상자는 주 1회 이상 꼭 대면 상담이 이뤄진다. 이에 해당하는 유가족이 23명에 달한다. 유지 관리 대상(232명)은 월 1회 이상, 일시 관리(282명)는 3개월에 1회 이상 상담하게 돼 있다. 파악(200명)은 명단 관리 중인 이들이다.지난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가족 손모(단원고 희생 학생 아버지)씨도 센터에서 줄곧 심리 상담을 받다 2018년 돌연 연락을 끊었다. 센터는 가족과 지인 등을 통해 손씨를 수소문했지만, 연결이 닿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던 차에 비보를 접했다. 센터 관계자는 "(사망 후)가족을 통해 근황을 점검해 봤더니 심한 우울증 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안타까워했다.앞서 지난해 12월 숨진 채 발견된 유가족 김모(단원고 희생 학생 아버지)씨도 마찬가지였다. 센터는 심리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던 김씨를 가장 상위 단계인 '집중' 관리 대상에 이름을 올려놓은 상태였다.센터는 두 아버지처럼 또 다른 비극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미파악 상태의 유가족과 생존자를 찾거나 설득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정해선 안산온마음센터 부센터장은 "무엇보다 소중한 자식을 잃어 자신이 치료를 받을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는 유가족이 대부분"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한 진상규명이 해소되지 않아 치료받기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 12일 한 유가족이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기획취재팀

2020-04-26 경인일보

코로나도 막을수 없는 세월호 추모 행렬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800여명 시민들이 6주기를 맞아 추모행렬을 이어갔다.16일 오후 2시께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앞.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재단의 주관으로 열릴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을 한시간 앞뒀지만, 이미 대기줄은 주차장 밖까지 넘쳤다. 유원지 맞은 편 도로에서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을 향한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차분히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 기억식을 기다렸다.행사장 모든 좌석들은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수하고자 2m가량 거리를 띄웠고 모든 참가자는 마스크 착용, 열 감지 및 문진표 작성 등의 과정을 거쳤다. 안산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유진(22)양은 "오빠가 희생자들과 같은 나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다음주에 오빠도 제주도 수학여행이 예정됐었는데 취소가 된 기억이 있다"며 "착잡하고 슬픈 마음"이라고 방문 이유를 밝혔다. 중학교 친구를 세월호 참사로 잃은 A(24)씨는 "매년 오지는 못하지만 오늘까지 4번정도 방문했다"면서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항상 생각하지는 못해도 기억식이 있어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날 기억식을 찾은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세월호의 진실을 끝까지 규명하고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4·16 생명안전공원 조성,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등 세월호 관련 사업들이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도교육청은 이날 오전 10시 청사에서 간소하게 세월호 추모식을 진행했다. 이재정 교육감은 "오전 10시는 세월호 침몰의 시간에서 학생과 교사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의미"라면서 "단순히 세월호 참사를 일어나지 않게 하는 걸 넘어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게 과제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남국성기자 nam@kyeongin.com16일 오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에서 4·16합창단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책임·기억·약속'을 주제로 열린 이날 기억식에서 참석자들은 차분함 속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안전사회를 염원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4-16 남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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