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시일 것이다. 그의 표정 역시 평온하다. 친구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 잠든 것처럼 그는 시의 어깨에 기대 잠시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른다. 주권과 말과 이름까지 빼앗긴 시대에 각자의 길을 선택한 두 청년의 평온한 한때가 기차의 덜컹거림과 함께 흘러간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윤동주의 시집을 정성스레 베껴 쓴 필사 시집 같다. 영화 속 동주가 어렵게 구한 정지용과 백석의 시를 필사하듯이 이준익 감독은 자신만의 연필로 꾹꾹 눌러 윤동주의 삶과 시를 흑백 영상으로 필사한다.
윤동주 시의 낭송과 함께 펼쳐지는 흑백영상은 오히려 투명해 보인다. 동주를 보러 갔다가 몽규를 보고 왔다는 우스갯말을 할 정도로 박정민의 연기는 단단하고 강하늘의 연기는 처연하다.
적극적인 운동가도 아니고 당대에 이름난 시인도 아니었지만 시대를 아파하고 고뇌했던 청년 동주의 삶은 친구 몽규의 삶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다. 동주가 그렇게 원했던 신춘문예에도 먼저 당선되고 연희전문의 졸업에서 우등상을 탄 것도 몽규였다.
그리고 교토제대에도 몽규는 홀로 합격하였다. 적극성과 단호함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그가 동주에게는 뼈아픈 열패감의 근원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때문에 더욱 시 속으로 파고들었는지도. 그러나 몽규가 기대 잠든 곳은 동주의 어깨였다.
예술가로 살고자 햇던 동주와 운동가의 삶을 선택한 몽규의 삶은 담쟁이넝쿨처럼 서로 얽히며 서로를 지탱하며 위로 뻗어나가는 듯하다.
영화의 말미에 동주는 조선말로 자신의 시집 제목을 또박또박 발음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그때 화면 밖에서 문소리가 난다. 말이 끊긴다.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그가 다시 입술을 연다. '...시'. 이 한 음절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하늘이라는 부끄러움의 윤리와 시대와 역사의 바람과 이상으로서의 별이 그 속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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