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지속적이고 평화적인 저항

'레미제라블' 혁명은 일회적 아냐
시민 의지 관철까지 계속되어야

경인일보

발행일 2016-11-17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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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영화평론가
백만의 시민이 광화문에 모였다. 그 자체로 상처 입은 역사적 자의식의 치유였고, 한없이 낮아진 정치적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4·19 혁명과 6월 항쟁에 이은 또 하나의 시민 저항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르다. 폭력 사태도 유혈 충돌도 없다. 백만 개의 촛불과 백만 개의 개성과 백만 개의 욕망이 모여 보여준 질서의식은 놀랍고 기이하고 강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마음 속에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피어난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단지 모였다 흩어지는 것만으로도 가능한가?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으로 유명한 롤랑조페 감독의 '미션'은 서구중심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윤리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노예상이었지만 회심해 수도사가 된 로드리고와 예수회 신부인 가브리엘을 한데 묶어준 것은 과라니족이라는 남아메리카 오지의 작은 부족이다.

그곳은 선교지이자 지상의 낙원이었으며,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다. 로드리고는 자신의 전투 기술을 이용해 무력으로 저항하고, 가브리엘은 평화적 시위에 나선다.

그들은 모두 죽는다. 죽음 앞에서 로드리고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십자가를 선두로 성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가브리엘의 평화적 행렬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총탄과 포탄의 세례였다.

백만 시민의 결집 이후로 미국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의 TED 강연이 화제다. 최근 백여년 간의 시민 저항을 연구한 그녀는 폭력적 저항 이후 발생한 쿠데타 등 비민주적·폭력적 보수 회귀 현상을 지적한다. 그리고 국민의 3.5%가 지속적이고 평화적으로 저항했을 때 정권 이양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가브리엘의 선택에 한 표를 던지는 듯하다. 로드리고와 가브리엘의 방식 중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속적이고 평화적인 저항이라는 그녀의 주장에 찍힌 또 하나의 방점인 '지속성'에 주목하게 된다.

'레 미제라블'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혁명은 일회적이지 않다. 그리고 시민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는 한 백만 시민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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