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가 규정하는 개인, 나는 누구인가… '문학의 광장'에 새겨진 불멸의 성찰

존재의 탐구자, 최인훈이 남기고 간 대표작들
2018072701001959100093871
崔仁勳, 1936~2018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 최인훈 작가가 지난 23일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문학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온 몸으로 껴안으며 방황하는 한국인을 위로했다. 개인보다 전체가 우선시됐던 20세기 동안 그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는 기념비적 작품을 썼다.

'광장'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회색인' 등 그의 작품 대부분이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돌아가는 전체사회 속에 끊임없이 삶을 고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제 그는 떠났고 그가 인도하던 새로운 세상을 더는 볼 수 없다.

그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을 읽고 또 읽는 수 밖에 없다. 아마 그것이 그를 추모하는 독자의 진심일 것이다.

해방-전쟁-분단, 이념 대립속
자유·사랑 본질적 문제 풀어내
50여년 세월 9번 개작 공 들여

8932008485_f
■ 광장

1960년에 새벽지를 통해 발표된 광장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듭 읽히며 사랑받는 작품이다.

해방-전쟁-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소설 안에 그대로 옮겼고 주인공 이명준을 통해 한반도 속 개인의 고뇌를 그렸다.

이 작품이 문단 뿐 아니라 국민적 추앙을 받는 데는 분단 문제를 다루면서도 남북 간 이념과 체제를 균형있고 냉철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작가 스스로 그 혼란의 시대를 살아내며 치열하게 성찰했고 남다른 깊이를 통해 극단적인 이념 대립의 허무함을 드러냈다.

특히 작품은 전체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에 '개인'의 삶을 고찰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 간의 긴장과 갈등, 인간 자유의 문제와 사랑과 같은 아주 본질적이지만 결코 풀어내기 어려운 개인의 문제를 섬세하게 풀어내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또 광장은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유독 돋보인 작품이다.

한국 문학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판과 쇄를 거듭했는데 작가가 끊임없이 내용과 형식을 수정해 9차례의 섬세한 개작 과정을 거쳤다. 그야말로 치열한 자기 반성을 통해 그는 '무결점'의 소설을 지향했다.

위수령 등 자유가 사라진 사회
방황하는 지식인의 처지 고백

8932019185_f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69년 연재를 시작해 1972년 초에 발표된 총 15편의 연작소설이다. 명망있는 소설가 구보씨가 사회의 중심에 편입되지 못하고 서울 변두리 어딘가를 헤매며 시대를 괴로워한다.

그 시대는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고, 우리 대학은 위수령과 휴업령이 내려져 자유가 사라지고, 남북 대화 속에 무장공비가 침투해 모든 것이 물거품 된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주인공은 그 역시 몸과 정신이 사슬에 묶인 것처럼 어떤 곳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끝없는 방황을 계속하는 자신을 비판한다.

소설은 그의 매일을 관찰하고 그의 심경을 서술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아주 단순하고 좁은 일상의 반복이지만, 구보는 어쩌면 작가 자신일지 모른다.

예술가, 지식인으로 시대를 살았던 작가 자신의 처지를 정직하게 고백한다고 느낄만큼 지극히 현실적이다.

강점기 태어나 월남한 주인공
진정한 삶 살기위한 여정 그려

8932019169_f
■ 회색인

회색인은 사회와 개인 사이의 방황을 그렸던 광장과 달리, 인간에 대한 탐문과 이해에 천착해 보다 개인에 집중한 작품이다.

주인공 독고준은 한번도 정립된 적 없었던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자기성찰을 거듭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통과의례 규정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원시인 젊은이의 공방의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독고준이라는 인물 설정 자체가 일제 강점기 북한에서 태어나 가족을 두고 월남해 남한에서 홀로 공부하는 지식인으로, 자유롭지만 고독하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삶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방랑을 서슴지 않았고 기존의 경계를 허물고 진정한 삶의 지평을 열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다. 이 소설로 작가는 '존재의 연금술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경인일보 포토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공지영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