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인천아트플랫폼, 체험 공간으로 전환”…예술계 “레지던시 강화가 곧 활성화”

입력 2024-02-29 09:54 수정 2024-03-04 15:41

‘인천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 토론회’ 총정리

인천아트플랫폼 토론회

지난 28일 오후 인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인천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 토론회’ 행사장 앞에서 지난해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14기) 작가들이 ‘전국 단위 레지던시’ 폐지를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2024.02.2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시가 예술가 레지던시와 전시 등 인천아트플랫폼 주요 사업을 잠정 중단한 가운데, 아트플랫폼 운영 방향을 레지던시·전시 중심 공간에서 문화예술 체험 공간으로 대폭 개편하는 ‘활성화 구상’을 28일 인천문화재단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했다.

이날 인천시가 인천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 상당수는 순수예술 창작 지원 기능으로서 레지던시 사업이 중요하며,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낙후한 주변 구도심 재생과 상권 활성화를 위해 인천아트플랫폼의 기능을 사람이 모이는 문화적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했던 작가들 10여명은 토론회장 앞에서 “모든 예술가를 위한 안정적 터전을 보존해 달라”는 문구 등을 적은 피켓을 들고 ‘전국 단위 레지던시’ 존속을 주장하며 시위했다.

토론회에선 지난해 10월 인천아트플랫폼 ‘전국 단위 레지던시 폐지 추진’ 논란으로 촉발한 문화예술계 반발이 여전히 거세다는 점과 인근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한 인천아트플랫폼의 ‘관광 활성화 기능 확대’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천시 “문화예술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

인천문화재단이 이날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연 ‘인천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박정남 인천시 문화정책과장은 “시민 중심의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시민 요구를 부응하고자 한다”고 기능 개편 방향을 밝혔다.

인천시는 인천아트플랫폼 활성화 주요 사업으로 ‘시민 버스킹 공간 조성 등 버스킹 상설 공연화’ ‘스트릿 아트 페스티벌 확대’ ‘경관 조명·미디어 파사드 설치’ ‘드라마·CF 촬영 유치’ ‘인스타그램 감성 포토존 조성’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문화예술체험 공간으로 주요 기능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기존 창작 공간은 음악, 문학, 영상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1·3·5인 프로젝트형’ ‘오픈랩 형식’ 등으로 운영 방식을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원데이 클래스’ 등 시민참여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개항장 특화 문화예술을 지원한다는 구상도 세웠다. 기존 순수예술 중심 레지던시와 전시 기능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는 의미다.

박정남 과장은 인천아트플랫폼 기능 개편 검토 배경에 대해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시민들의 발길이 끊겨 주변과 단절된 공간이 돼 간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며 “시민 욕구 충족을 위해 인천아트플랫폼 공간 성격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레지던시 기능 강화가 진정한 활성화 방안” 예술계 반론

인천시 활성화 구상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인천아트플랫폼의 본질적 의미를 짚는 여러 반론이 나왔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지선 프로듀서그룹 ‘도트’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는 “인천아트플랫폼 주변 동인천과 인천차이나타운은 예술가 언어인 상상력이 가장 멋있게 발현될 수 있는 곳”이라며 “시각예술뿐 아니라 공연과 시각을 오고가는 다원예술까지, 그 예술가들이 인천아트플랫폼에 거주하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공연을 만들어 서울뿐 아니라 전 세계에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부분이 아카이빙되고 시민에게 알려져야 한다”며 “예술가들에게 그저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고 점령한 방식으로 (인천아트플랫폼이) 왜곡돼 이해되고 있다”고 했다.

2019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에 입주했던 이민하 작가는 토론자로 나서 “순수예술은 대중예술과 달리 창작자들에게 돌아가는 유의미한 보상이 거의 없고, 작업물이 특정한 경제적 성과로 연결되기 어려우므로 세금을 투입해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작업비를 지원하는 문화정책이 있는 것”이라며 “순수예술이 자본의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또한 “레지던시는 자본의 논리를 벗어난 창작자들이 고립된 환경에서 탈피함과 동시에 동료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를 만나 창작을 지속할 힘을 얻는 것”이라며 “버스킹, 미디어 파사드는 인천 영종도에 새로 생긴 복합리조트만 가도 미디어 파사드로 사람이 모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개항장, 인천차이나타운, 신포시장 등 관광 자원이 굉장히 많은데, 과연 이 지역 상권이 죽는 것이 인천아트플랫폼 때문인지 의문”라며 “인천아트플랫폼이란 좁은 공간을 위해 나눠 먹기식으로 하지 말고 차라리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에 맞춰 파이를 키우고 작가들을 위한 장기적인 (레지던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토론자 안소연 미술비평가는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이 활성화가 필요한지부터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라며 “지역성과 역사성이란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탄생한 인천아트플랫폼은 디아스포라 도시, 복합성, 다양성, 다원성이란 명확한 성격으로 문화예술 현장으로서 생태계가 이미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안소연 비평가는 “한국 미술계는 아시아 네트워킹이 활발하고, ‘프리즈’ 등 아트페어로 미술 시장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아시아 미술계와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며 “인천아트플랫폼이 그 일을 맡을 수 있는 문화예술 생태계”라고 했다. 그는 토론문에서 “지역성의 개념을 왜곡시켜 지역의 시민들이 향유하는 문화 공간을 조성한다는 취지로 지역 작가와 지역 시민 중심 공간 운영을 기획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레지던시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통로를 보유해야 하며, 이러한 경로를 통해서 ‘창작의 나눔’이 여러 층위에서 이뤄진다”고 했다.

인천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 토론회

지난 28일 오후 열린 인천문화재단 주최 ‘인천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박정남 인천시 문화정책과장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2024.02.2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낙후한 개항장 일대 공간 가치 재창조 해야” 기능 전환 주장도

토론자로 나선 신일기 인천가톨릭대 문화콘텐츠학과 학과장은 “인천아트플랫폼이 조성된 지 15년이 지났으나 개항장 일대의 낙후성은 심화하고, 노포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며 “인천시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인천 내항 1·8부두 개방(상상플랫폼), 자유공원 야간 명소화, 인천시민애집, 제물포구락부 등이 연결돼 모처럼 유동인구가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일기 학과장은 “인천아트플랫폼이 그 한복판에 끼어 있고, 예술가 작업장으로 조성돼 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며 “인천아트플랫폼은 뉴트로나 레트로 공간으로 청년층과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역사적 경험과 현대가 재해석된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마디로 셀카를 찍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독특한 노스탤지어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 가치를 재창조해야 한다”고 했다.

토론자 김아영 인더로컬 협동조합 대표는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활동하는 청년으로서 인천아트플랫폼에 아쉬운 점은 예술이 지역과 접점을 만드는 도시적 이벤트가 부족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술의 역할은 시민에게 도시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과 경험으로 다양성을 가치를 주는 것”이라 “인천아트플랫폼이 앵커시설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 장관훈 중구 개항동 주민자치회장은 “개항장 지역은 역사문화지구, 지구단위계획으로 보존 가치가 높다며 고도제한이 많이 설정돼 있다”며 “다른 지역은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이 지역은 신흥동 일대에만 고층 아파트가 있고 중구청을 중심으로 다 저층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장관훈 주민자치회장은 “인천아트플랫폼이 생길 땐 주민이나 상인 입장에서 관광 상품이 많아져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추락했다”며 “(작가들이) 일방적 작품 활동뿐 아니라 전시·발표회를 많이 해서 관광객이 왔을 때 같이 지역과 공생·공존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낙후한 이 지역의 관광 상품과 개항장 문화지구를 연결해야 한다”며 “가상현실, AR, VR, 고해상 디스플레이, LED 조명 등을 활용한 미디어 월을 설치한 갤러리를 조성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천시 설문조사 해석 문제 있다” 시민 지적도

토론이 끝난 후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질의 응답이 이어졌는데, 이 자리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한 시민은 인천시가 인천아트플랫폼 활성화 방안을 구상하기 위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대한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시는 지난 2월 6~14일 19세 이상 인천시 거주자 중 인천아트플랫폼 인지자 5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했다. 주요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6.2%,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은 23.8%다. 레지던시 사업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37.4%, 불만족한다는 응답은 19.8%, 겅험 없음은 42.8%다.

인천아트플랫폼 전반 평가는 긍정 44.8%, 부정 24.8%, 모름 30.4%다. 잘 하고 있는 분야를 물었을 땐 가장 많은 35.0%가 예술가 창작공간 제공 및 레지던시 사업이라고 응답했다. 기존 인천아트플랫폼 운영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설문 결과다.

문제를 제기한 시민은 “이번 설문의 응답자 500명 중 50대와 60세 이상이 247명이고, 나머지 세대 구간이 254명으로 거의 절반씩 나뉘었고, 월평균 가구 소득 200만~800만원 사이 응답자가 대다수”라며 “설문에 참여한 대다수 구간에서 인지도와 만족도가 높고, 설문 참여율이 가장 낮은 구간에서 인지도와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왔다면, 전반적 인지도·만족도는 높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러나 인천시는 마치 특정 세대와 소득 구간의 인지도·만족도가 낮아 기존과는 다른 사업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설문 결과를 해석했다”며 “설문 결과를 과학적으로 해석해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 작가도 “인천시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인천아트플랫폼 운영 방향을 개편한다고 설문을 진행하면서 그 대상을 인천 시민으로만 한정했는데,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타 도시 시민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라며 “서울 등 인천 외 지역 시민과 작가들이 인천아트플랫폼을 받아들이는 의미와 원하는 것은 다르다. 설문 조사 설계 자체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작가는 “전 세계 예술가 레지던시 네트워크 협회에 소속된 기관이 일본은 19곳이고, 한국은 6곳인데 그 중 한 곳이 인천아트플랫폼”이라면 “이런 역할을 하는 기관을 없애자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천의 한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 등 다양한 예술이 지역 경계를 초월해 SNS같이 모두가 공통된 가치로 인천아트플랫폼에 다가갈 수 있게 활성화해야 한다”며 “이 공간에 대한 바이럴 마케팅과 브랜딩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박신의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고황명예교수는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인천시가 문화예술을 통해 재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낮은 수준의 관광 사업으로 보면 절대 안 된다. 망할 게 뻔하다”며 “예술은 쓸데없는 짓, 즉 ‘탈효용성’의 사회적 영향으로 개인과 사회를 바꾸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했다. 예술을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성과(효용성은 낮지만 개인·사회를 바꾸는 역할)를 간과한다는 것에 어마어마한 실패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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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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