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의 역사산책

궁예를 보라, 초심 잃은 지도자는 패망한다

   
▲ 김준혁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우리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중의 하나가 바로 궁예이다. 신라 경문왕의 서자로 알려진 그가 철원 일대를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한 것은 무엇인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현실화시키려 하였기 때문이다.

신라말은 귀족들의 발호가 극에 달한 시대였다. 골품제도라고 하는 핏줄을 중요시하는 신분제도는 백성들에게 발전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모든 권력은 국왕과 귀족들에게 있었고 백성들은 착취의 대상이었다.

경주를 벗어난 여러 곳에서 지역의 호족들이 자신들도 국왕이 되겠다며 난을 일으키고 힘없는 백성들은 그들의 화살받이로 끌려 나갔다. 이러한 현실에서 궁예는 새로운 세상을 천명하였다. 바로 미륵세상이자 용화세상이었다. 모든 백성들이 신분의 차별없는 평등한 세상에서 전쟁과 미움이 사라진 평화세상이 곧 그가 외치는 세상이었다.



그는 오랜 수행에서 얻은 평정심과 겸손함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하였다. 비단옷이 아닌 헤진 옷을 꿰매 입은 그의 복식은 신라 귀족들이나 지방의 호족들과 전혀 달랐다. 군사력을 장악하여 한반도 중심부의 땅을 차지하면서도 거대한 궁궐에 거처하지 않고 자신의 군사들과 똑같이 먹고 똑같은 침상에서 잠을 잤다. 백성들은 열광했다. 그가 외쳤던 미륵세상이 올것이라고 너도나도 환호하였다.

궁예가 오늘날 강원도 강릉지방인 명주로 군사들과 이동하였을 때 명주지역의 백성들이 서로 자신들의 군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서 화살 하나 사용하지 않고 강원도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포함시킬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궁예는 변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지은 나라 이름 '후고구려'가 사라졌다. '마진(摩震)'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국호는 자신을 신비화하는 이름일 수 있었다. '크다'는 의미를 가진 마진은 '진인'이 사는 세계라는 뜻이다.

결국 도참사상에 근거해 세상을 움직이는 '진인'은 자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궁예는 백성들에게 자신을 신격화하는 정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마진에 이어 나라 이름을 '태봉(泰封)'이라 하였다. 태봉이라는 의미는 극락 세계의 다른 표현으로 궁예 자신이 부처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초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을 미륵이라 부르게 하였다.

전제주의와 영웅주의에 빠져 자신을 과시하는 데 급급하였고, 수도를 송악에서 철원으로 다시 옮기고 궁궐과 전각을 수리하는 데 사치를 다하기 시작하였다. 외출할 때에는 백마를 타고 채단으로써 그 갈기와 꼬리를 장식했으며, 동남·동녀로 하여금 대형 우산과 향화(香花)를 받들어 앞장서게 하고 승려 200명으로 하여금 범패를 부르며 뒤따르게 하였다.

백성들의 고통을 없애고 평등과 평화의 세상을 열겠다고 군사들과 똑같이 생활하던 참다운 지도자 궁예는 사라진 것이다. 결국 초심을 잃어버린 지도자는 백성들의 돌에 맞고 세상을 마감해야 했다.

오늘 이 시간 대한민국은 대통령선거 열기로 가득하다. 3명의 대선 후보는 모두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를 하겠다고 목청 높여 외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자신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백성들의 지지는 그가 초심을 잃어버리면 한순간에 사라질뿐만 아니라 생명도 거두어가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그래서 절대 스스로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역사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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