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961_337848_5022선시대 종기 치료의 최고 의원으로 인정받는 이는 피재길(皮載吉)이다. 피재길의 아버지는 종기 치료를 하는 고약을 탁월하게 만드는 의원이었는데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피재길이 아버지의 기술을 전수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보고 들었던 것으로 여러 방법을 피재길에게 가르쳐 주었다. 피재길은 의서를 읽은 적이 없고 다만 약재를 모아 달여서 고약 만드는 방법만 알 뿐이었다. 아는 것이 없다보니 모든 부스럼과 상처에 이 약을 팔아서 먹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피재길이 마을에서 의술을 행하기는 해도 감히 의사축에 끼지는 못했다.

사대부들이 피재길의 고약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약을 써 보니, 신통하게 나아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임상치료를 아무리 잘한다 해도 그저 고약을 만드는 정도의 인물이지 정식 의원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1793년(정조 17) 여름, 정조의 머리에 부스럼이 났다. 정조의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정조는 어린 시절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늘 홧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홧병이 머리에 종기로 나타났다. 온갖 침과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오랫동안 효과를 보지 못하고 끝내는 얼굴과 목의 여러 부분까지 점점 부스럼이 퍼지게 되었다. 더구나 한여름이어서 제대로 치료도 안되어 정조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궁중 내의원 소속의 의원들이 치료를 해도 낫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피재길에게 치료를 받아 완치한 경험이 있는 관리가 정조에게 피재길을 추천하였다.



갑작스럽게 국왕을 치료하게 된 피재길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당연한 것이리라! 이때 많은 대소 신료들이 속으로 피재길을 비웃었다. 정조는 "두려워 할 것 없다. 네가 가지고 있는 의술을 모두 내게 발휘해 보거라"라고 피재길을 격려했고 이에 용기를 얻은 그는 "소인에게 다른 재주는 없으나, 딱 한가지 시험해 볼 처방이 있나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피재길이 웅담을 여러 약재와 섞은 뒤 볶아서 고약을 만들어 정조의 환부에 붙인 뒤 하루가 지나면 통증이 잦아들 것이고, 사흘이 지나면 부스럼이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두 그의 말대로 되었다.

정조는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놀랐다. 그리고 직접 글을 지어 의원들과 대소 신료들에게 피재길을 칭찬하였다. 정조는 이러한 인재가 내의원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어찌보면 내의원에 있는 많은 의관들보다 종기 치료에 관해서는 피재길이 가장 나았던 것이다. 하지만 조정 대신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의관들의 반대가 심했다. 지방에서 종기 치료를 위해 고약이나 만들던 일개 평민을 내의원의 의관 그것도 임금을 치료하는 어의(御醫)로 쓴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의원 집안에 비록 잡과(雜科)이기는 하지만 의과(醫科) 시험을 합격해서 들어온 의관이었는데 의관이 갖추어야 할 학통도 없는 천한 인물이 의원으로 들어오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정조는 이러한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재를 발굴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치료를 마친 직후인 7월 16일에 그를 내의원의 종6품 침의(鍼醫)로 임명을 하였다.

백성들과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이다. 정조가 능력있는 인재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발탁하듯이 오늘 이 사회의 지도자들도 여러 가지 인연으로 사람을 선발하지 말고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이를 뽑아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였으면 한다.

/김준혁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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