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단상

피카소, 변화와 혁신속에 있는 따뜻함

핍박받는 민중들·평범한 여인들의 모습 표현

1명의 천재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수 있는지 고민

사람을 사랑하고 메시지를 전하려는 행동 배워야
   
▲ 김혜옥 연세대 음대 교회음악과 교수
피카소는 현대 미술 세계의 거장이다. 그가 남긴 미술사적 업적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다. '입체파'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데 이어, 유럽인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통해 평화주의 운동을 펼쳤던 것에 이르기까지 정열적인 삶 그 자체를 살다 간 사람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피카소가 왜 그런 길을 걸어갔는지,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는지 깊이 있는 문제 의식을 던지는 전시나 서적은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경인일보가 기획한 '피카소 : 고향으로부터의 방문' 전시는 필자가 오랫동안 피카소의 열정에 대해 두려우리만큼 느꼈던 갈증을 시원히 해소해 주는 전시회였다. 특히 거장이 남긴 작품 200점 못지않게 그의 생전 모습을 찍은 사진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필자가 가장 먼저 주목했던 것은 피카소 본인의 눈동자였다. 그의 눈동자는 여러 작품들의 혁신성과 변화 지향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통로였다.

전시회 도록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스페인의 자연환경이 지닌 마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유럽과 달리 스페인은 인간에게 비교적 거친 기후를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피카소 역시도 작품의 감상자가 수동적인 입장에 머무르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물체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18세기 이전의 회화와 작품 생산자 관점에서 주관적 인상이나 관심을 표현했던 19세기 이후의 회화 모두를 부정한 그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미술사적 변화와 혁신 속에 숨어 있는 인간에 대한, 아니 생명의 신비에 대한 감탄과 불튀는 사랑이 담겨 있다. 파시스트들의 횡포로 인해 민중이 핍박받는 현실을 개탄했던 '게르니카', 평범한 여인들의 모습을 담은 '아비뇽의 처녀들'과 같은 작품을 보면 그는 대중, 즉 일반인들을 또 다른 작은 거인들로 조명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일평생 반전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 살았던 그는 작품 속의 평범한 주인공들에게 자유의 혼을 불어넣었다. 피카소가 역사상 몇 안 되는 '살아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시대 영합적이라는 비판을 듣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끊임없는 공간에 대한 파괴와 재구성, 그리고 형태에 대한 실험 이면에는 전통 회화가 만들어 놓은 인간에 대한 시선 이상으로 사람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필자는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또 연주자로서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또 다른 생각을 했다. 과연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피카소와 같은 혁신적인 인재를 교육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와 관련된 질문이었다. '창조경제'라는 개념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피카소 같은 1명의 천재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최근 들어 전문가들이 바흐,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들이나 우사인 볼트, 손연재 같은 체육인과 같이 전통 산업에서 이해하기 힘든 창의적 인재들의 문제 해결 방식에 주목하게 된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그러나 정작 교육 현장에서는 그런 시도가 요원한 상황이다. 여전히 어린 전공생들은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주입식 교육 과정을 바탕으로 음악이나 미술 공부를 하고 있다. 취미로 예술을 배우는 학생도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작품에 대한 이해와 원작자에 대한 공감보다는 테크닉, 악보 독법과 같은 것들을 잠깐 배우다 음악, 미술 공부 자체에 질려버리는 아이들이 허다하다.

단순히 기술적인 우월성을 지닌 화가가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설파하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도 할 줄 알았던 피카소에게서 배워야 한다. 당대 미술계의 관점에서는 매우 전위적인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알리기 위해 그는 파리의 화랑들을 돌아다니며 직접 작품을 구매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피카소 그림 어디 있나요? 그의 그림이 요즘 제일 인기 있다던데'라고 말하는 와중에 자신의 미술적 이상을 전문적으로 알린 것이다. 천재의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환경과의 상호작용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아틀리에에 머물러 있는 수동적인 '테크니션'이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필자의 제자들에게도 단순한 음악적 실력보다 피카소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혜옥 연세대 음대 교회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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