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

[방민호 칼럼] 개벽의 시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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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시인 김지하가 세상을 떠난 것은 지난 5월8일이다. 학교 일에 몸이 몹시 좋지 않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는 분이 원주 토지문화관에 모신 그의 묘지 비석을 사진 찍어 보내주었는데, 수식 없이 너무 간략해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의 시집 '황토'와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1980년대 중반 학번인 나에게도 고전이나 다름없었다. 그 무렵 김수영 시집을 끼고 다니지 않으면 지성인 흉내를 낼 수 없었다는 과장법이 있지만 나는 김수영도 김수영이지만 김지하의 시를 좋아했다. 그러고 보면 그때는 선배들을 사랑하고 존경해서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 '공장의 불빛', '친구', '아침이슬'은 잊힐 수 없는 노래들이었다.

나중에는 김지하의 시집이면 무엇이든 구해서 읽는 버릇을 들이기도 했다. 그때 솔출판사에서 나온 김지하 재간 시집들이 장정이 좋아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확실하지만은 않지만 그때 '검은 산 하얀 방'이라는 시집을 아주 아껴 읽었다. 그 시집이었을 것이다, 시를 퇴고를 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그대로 적어서 옮긴 시들을 수록했다는 것이. 이렇게 음유 시인적인 기질을 지녔던 그가 독재체제와 맞서 싸우며 생명을 내걸었던 것이, 그래서 사형선고까지 받고 감옥에 오래 갇혀 있었다는 것이, 다 지난 일이라는 게 덧없으면서도 한없이 쓸쓸한 감정을 자아내는 요즘이다. 


1970년대 긴급조치 시대 시인 김지하
1980년대 죽음물결 적응 어려웠을 것


이 김지하 시인이 노태우 정부이던가 아래서 젊은이들이 체제에 저항한다는 뜻을 담아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하는 칼럼으로 세인들, 특히 이른바 진보파 지식인들, 문학인들의 뭇매를 맞고 문인단체에서 제명까지 당했던 것은 돌이켜 생각하면 씁쓸한 아이러니의 하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생사를 넘나드는 사형수의 지경에까지 몰렸던 그는 어째서 목숨을 끊은 잇따른 행렬을 향해 그와 같은 말을 해야 했던 것일까?

나는 지금도 전태일의 분신에 대해 거듭 생각할 때가 많다. '전태일 평전'을 여러 번 읽은 내게 전태일의 죽음은 숭고한 행위 이상일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캠퍼스에서도, 캠퍼스 가까운 곳에서도 그와 같은 죽음들이 많았고, 직접 그 장면을 목도하며 전율하기도 했건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죽음들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왜였던 것일까? 어떤 죽음은 어떻게 해서 의롭고 떠받들 죽음이 되며 어떤 죽음은 그렇게만은 여기지 못할 것이 될 수 있는가? 나는 누구나 생애의 끄트머리에 맞닥뜨릴 죽음이라는 사태를 놓고 이 문제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그가 중도 말함은 너무 성급했던가
적대 못 벗어나면 화평함은 힘들듯
천지개벽 '소통시대' 고대하는 이유


세대가 다르고 시대가 변해 고민하는 의제가 달라지면, 생각도, 가치판단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김지하 시인은 '1970년대'의 시인이며 긴급조치 시대의 시인이어서 1980년대에 새롭게 시작된 죽음의 물결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김지하 시인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의제에서 '벗어나' 생명사상으로, 동학사상으로, 개벽사상으로 향하고 있었음을 그가 남긴 많은 논의를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현상도 보는 시각과 각도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음을 그의 외침과 주장들은 말해준다.

그에게서의 민중은 솔출판사에서 펴낸 '생명'이라는 책에 실린 여러 글들이 보여주듯이 진보파 마르크시즘 계열의 계급론에서 말하는 민중은 아니었고, 그의 생명의 동등성은 최제우 선사가 설파한 우주 천지만물의 근원적 근거로서의 한울에서 가지쳐 나온 모든 존재들의 평등함으로부터 우러난 것이었다.

이제 그가 떠날 무렵이 되니 도올 김용옥도 동학을 말하니, 김지하의 개벽은 너무 일찍 왔던 것인가? 그가 중도를 말함은 너무 성급했던 것인가? 그러나 낡은 편가름과 편벽된 시선에서, 적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화평한 공동체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천지가 개벽할 새로운 가치의 시대, 소통의 시대를 고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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