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

[윤상철 칼럼] 다규범사회, 무규범사회

입력 2022-09-05 19:55
지면 아이콘 지면 2022-09-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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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보호종료아동(?)의 연이은 불행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이 사회문제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안이 아니다. 두 청년의 죽음으로 촉발되었으나 주기적으로 제기되었고 그 대안들이 재탕삼탕 거론되었으니 말이다. 또 한번 신문과 방송을 소비하다가 사라져 갈 것이다. 이들을 담당했던 구청 아동복지과 직원들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경제적 추가 지원이 아니라 정신적 멘토라고 말한다. 아마도 정부는 이들에 대한 사회복지예산을 증액하는 수준에서 생색만 내고 덮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18세를 넘어선 사회적 성인인 이들에게 정신적 멘토링이 가능할지는 의심스럽다. 이들을 아동취급하는 언론의 시선도 그렇거니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시절에나 필요할 듯한 수준의 멘토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마땅치 않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부모나 교수들, 심지어 선배들조차 영향력있는 타자들이 아닌 이 사회에서 과연 멘토링이 가능할까? 사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 아무런 규범도 없는 상태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른바 아노미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고와 행위를 이끄는 옮고 그름의 기준이 없는 상태이다. 사실은 극심한 사회변동으로 다양한 규범들이 충돌하면서 사람들이 어느 규범을 따라야 하는지 선택할 수 없는 상태이다. 에밀 뒤르껭이라는 프랑스의 사회학자는 이러한 아노미상태에서 자살, 범죄 등과 같은 사회적 일탈이 발생하고 그러한 일탈행위들이 전면화되면서 사회적 해체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로버트 K. 머튼이라는 미국의 사회학자는 문화적 목표와 제도적 수단간의 괴리로 인해 일탈이 발생하고 사회적 통합이 지연되는 상태를 아노미로 보았다 민주화운동 시절에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은 민주주의라는 문화적 목표를 위하여 국가보안법이라는 제도적 수단을 거부하는 개혁의 태도를 취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스승에 대한 예를 취하고 도로교통법을 준수함으로써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의 규범을 가지고 있었다.

여당대표, 일탈적 행위 인정보다는
'당내 권력갈등 피해' 동정심 유발


오늘날 민주화된 한국사회에서는 규범의 부재 혹은 목표규범과 수단규범간의 괴리도 아닌 특이한 아노미적 일탈이 눈에 띄고 있다. 여당의 대표는 장유유서와 같은 전통적 사회규범은 물론 이른바 성상납과 그 은폐시도와 같은 일탈행위로 인해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징계 만료 이후에 당대표로 다시 복귀하고자 한다. 또한 이를 방해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도를 넘는 비난과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야당의 대표는 무고와 공무원자격사칭, 도로교통법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선거법위반 등의 전과를 저지르고도 시장과 도지사를 역임했고 선거법 위반, 배임 뇌물 등의 부패혐의, 사법부 매수 및 변호사비 대납 등 의혹과 검찰수사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였고 이제 국회의원 및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규범을 편의적으로 차용하는 모습들이다.

여당 대표는 일탈적 행위 자체를 인정하기보다는 당내 권력갈등의 피해자로 자처하면서 당원과 국민들의 동정심과 지지를 유발시키고자 한다. 야당대표는 기존의 전과행위에 대해서는 공익구현을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하였고,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여권의 정치보복으로 둔갑시키면서 차기 집권과 국가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방어하고 있다. 사실 이들의 일탈적 범죄는 그 자체로서 사회적으로 용인되기가 어렵고, 그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수호나 국가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수용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자기의 범죄적 일탈을 인정하지도 않고 이를 사과하지도 않는다. 또한 양당의 당원들과 일부 국민들은 여전히 이러한 일탈을 문제삼지도 않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더 강하게 지지하기도 한다.

野대표, 전과 공익구현 수단 정당화
'與 정치보복' 둔갑시켜 자신 방어
규범 충돌속 아노미상태 빠지면 안돼


과거와 달리 정치지도자들의 도덕성 수준이 반드시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종교지도자나 교육자들의 도덕성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용의 수준이 높은 사실을 감안하면 정치지도자들에게는 더 관용적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사회의 정치지도자들은 여전히 국민들의 도덕적 전범(典範)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결국 이 사회는 개인의 수준에서 괴리되거나 충돌하는 서로 다른 규범수준을 용인하게 되고, 일반시민들은 충돌하는 규범들 사이에서 편의적, 이율배반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정치지도자들은 도덕적 존경의 대상은 아니지만 도덕적 규범을 회피하기 위한 영향력있는 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의 사법제도가 이들의 일탈을 징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회규범이 변화할 수는 있지만 아노미상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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