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가 들어주실까… 왕릉에 전화걸어 문안올린 순종

입력 2024-01-10 18:56 수정 2024-01-10 19:30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1-11 13면

[전시리뷰] 인천시립박물관 기획전 '덕률풍, 마음을 걸다'


140년 넘은 우리나라 '전화 역사'
텔레폰 소리따서 명명한 '德律風'
1962년 첫 국산 '체신1호' 등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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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박물관 기획전 '덕률풍, 마음을 걸다' 전시장 모습. 최초의 국산 전화기 '체신 1호'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조선의 마지막 국왕 순종은 1919년 아버지 고종의 장례를 치른 후 덕수궁에 혼전(魂殿)을 차리고, 왕릉에 직통 전화소를 설치해 수시로 전화를 걸어 문안을 올렸다. 상복을 입은 내시는 혼전을 지키는 참봉에게 전화기를 혼백에 대도록 명했다. 순종이 엎드려 절하면 내시가 엎드린 순종의 입 가까이에 전화기의 화구(話口)를 갖다 댔다. 순종이 곡을 하며 선왕의 혼백에 고했다.

신문물과 전통문화가 묘하게 겹쳐 보이는 이 장면은 전화라는 근대 통신 수단이 단순히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예고하는 일화다. 당시 전화를 가장 먼저 사용한 오늘날로 치면 '얼리어답터'에 해당한 조선의 국왕조차 아버지를 향한 마음을 담는 데에 이 기계를 썼으니 말이다.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특별전 '덕률풍, 마음을 걸다'는 140년 넘은 우리나라 '전화의 역사'를 생생하게 펼치면서, 전화가 우리 일상에 어떻게 다가왔는지 감성적으로 전하는 전시다.

시립박물관은 순종이 썼을 법한 1880년대 에릭슨사가 제작한 '자석식 벽걸이형 전화기'를 전시하며, 그 아래 순종의 전화 상례(喪禮) 일화를 알렸다. 전화박스 표면에 옻칠을 하고 장식성이 강한 이 전화기는 고종 황제가 썼던 제품과 같은 모델이다.

1882년 조선 정부가 청나라에 파견했던 기술자들에 의해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된 전화기. 처음 이름은 덕률풍(德律風)이었다. 전화기의 영어 이름 '텔레폰'(Telephone)의 소리를 따서 중국식으로 부른 명칭이다.

사용자가 손잡이를 돌려 직접 전류를 생산해 쓰는 자석식 등 초창기 다양한 전화기가 전시돼 있다. 1902년 한성전화소, 인천전화소 등이 가설돼 일반인이 쓸 수 있는 전화기가 등장했다. 1905년 자료를 보면 한성은 50군데, 인천은 28군데에 전화기가 설치됐다. 은행, 외국계 기업 등에서 주로 이용했다.

1915년 도면을 바탕으로 실제 자동식 전화기를 설치해 체험할 수 있게 재현한 공중전화 부스, 한복을 유니폼으로 입고 일렬로 앉아 전화 교환 업무를 했던 1930년대 우체국 교환실 풍경 등이 흥미롭다.

한국전쟁 때 대부분 통신시설이 파괴됐다. 1950년대 후반에서야 전화 회선이 새로 가설돼 이때부터 점차 전화 설치가 늘었다. 전시에서 선보인 '체신 1호'는 1962년 개발된 최초의 국산 전화기다. 체신부가 전화기 국산화를 촉진하고자 자석식, 공전식, 자동식 등 3가지 방식으로 표준 규격을 정했으므로 이 시기 모든 국산 전화기는 똑같이 생겼다.

산업화가 본격화하면서 전화 설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전화를 가설하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비싼 전화요금 탓에 1980년대까지도 전화기 다이얼엔 '용건만 간단히'라는 문구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서민들이 애용한 공중전화의 변천사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벽돌 크기의 초창기 휴대전화의 크기가 점점 작아져 2000년대 '핸드폰'이라 불리다가, 전화 외에 수많은 기능을 탑재한 지금의 '스마트폰'이 되기까지 20년 동안 급변하는 과정에서 출시된 수많은 전화기들도 전시에서 모았다. 지금의 스마트폰보다도 작은 2000년대 휴대전화들은 젊은 세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전시는 내달 25일까지 이어진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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