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사라진 곳에서 살아난 기억 | 세월호 10주기 ‘바람의 세월’

입력 2024-03-27 14:30 수정 2024-03-27 19:15

故 문지성양 아버지 문종택씨 촬영

유가족이 직접 풀어낸 다큐멘터리

10주기, 다시 외치는 희생자의 이름

부채감 흔들며 질문… 4월3일 개봉

영화 ‘바람의 세월’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사진. /시네마 달 제공

샛노랬던 리본이 빛바래가기 시작할 때쯤 세월호가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애타게 기다리던 선체를 분명 눈앞에 뒀지만 오히려 진실은 아득해졌다. 진상 규명이 정치권에서 표류하는 사이, 추모 공간은 하나둘 철수됐다. ‘기억하겠다’는 선언을 유가족들만이 애타게 붙잡아왔다.

“아이들 이름을 불러보겠습니다.” 2024년, 잊힌 이름들이 다시 스크린에 올랐다. 너무도 이르게 핀 국화꽃 앞에서 부모들은 외쳤다. 지난 2014년 팽목항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국회에서, 그리고 아이들이 없는 안산 단원고 교실에서 부르던 그 이름을. 새삼스레 되살아난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의 목격자인 관객을 10년 전으로 이끈다. 사건의 피해자와 죄책감을 느껴야할 가해자가 아닌, 제3자의 부채감을 흔든다. 영화는 단원고 2학년 1반이었던 故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10년간 찍은 영상들을 재구성한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다. 김환태 감독과 공동 연출을 통해 사건에 담긴 구조적 문제를 시간순으로 짚어간다. 특히 당사자인 유가족이 기록하고, 유가족의 시선에서 풀어냈다는 점에서 기존 세월호 소재 영화들과는 차이가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특성상 영화에는 감독의 편집 의도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가장 뇌리에 강하게 남는 장면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 ‘잊히지 않도록’ 부모들이 부단히 이름을 부르고 투쟁하는 대목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다. 단순히 유가족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부끄러움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영화 ‘바람의 세월’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사진. /시네마 달 제공

영화 ‘바람의 세월’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사진. /시네마 달 제공

‘잊지 않겠습니다’. 동료 시민으로서 슬픔을 공유하고 함께 부채감을 짊어졌던 연대 정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느슨해졌다. 으레 정권이 바뀌면 진상 규명이 되겠거니 했던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현재도 묘연하다. 지지부진했던 조사, 어느새 사라진 추모 공간은 세월호를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어냈다. 유가족들에게 흘러가는 시간은 약이 아니라 독이었다.

지난 26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문종택 감독은 “언론에 흔하게 나오는 세월호가 기울어 침몰하는 장면은 일부러 넣지 않았다. (실체적 진실 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장면이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극적인 장면으로 되레 사안의 실체가 가려지는 현상을 우려했다.

이어서 “저희는 마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전부인 양 밤새도록 외쳤다. (다큐라는 장르에서) 유일하게 원고를 들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선생님과 아이들 304명의 이름을 부를 때만큼일 것”이라며 희생자를 호명하는 장면을 넣은 이유를 설명했다.

문종택 감독

지난 26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진행된 영화 ‘바람의 세월’ 기자 간담회에서 공동 연출자 문종택 감독(왼쪽)이 촬영 과정을 돌아보며 소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는 평범한 아버지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 2024.3.26.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영화 후반부에 다다라서는 ‘눈물의 온도’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앞서 5·18 유가족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이들은 또 다른 유가족의 슬픔을 들여다보고 다독였다. 사회적 참사로 가족을 잃는 고통을 뼈저리게 아는 자들끼리의 연대였다. 고통은 내면으로 침잠하지 않았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보편 다수 시민의 부채감을 건드는 장면이었다.

어느새 10주기를 맞은 4·16 세월호 참사. ‘바람의 세월’에 나오는 영상도 대개 10년 전 기록한 것들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군가는 “이제 그만 하라”고, 또 누군가는 “가슴에 묻으라”고 했다. 무수한 ‘지우기’ 속에서 유가족들은 억겁의 시간을 버텼다. 누군가에게는 금세 흘러갔던 10년의 세월이 다시금 찾아와 우리를 가만히 붙잡는다. 다음 달 3일 개봉.

영화 ‘바람의 세월’

영화 ‘바람의 세월’ 포스터. /시네마 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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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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