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하는 최신원 SKC 회장

가진 것을 베풀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 되새기며 살고 있어기업 이윤 사회환원·봉사… 끊임없이 아픔 보듬는 노력할 것어려운 경제상황속 지역기업 성장위한 ‘징검다리 역할’ 약속2015년 막바지에 다다른 지난 12월 29일, SKC 최신원(64)회장과 서울 을지로 집무실에서 만났다. 처음 만난 순간 “어서들 와요.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며 먼저 손을 내밀며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줬다. 시원시원한 말투에다 화통한 웃음 소리는 매력적이었다. 하얀 셔츠에 풀어헤친 넥타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솔직함이 묻어나는 그의 모습에서 대기업 회장이란 사실을 순간 까맣게 잊게 했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굳이 최 회장과의 만남에 나선 건 모두가 지금 힘든 시기에 나름의 행복한 삶에 관해 조언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차 한잔을 놓고 그가 풀어놓는 일상의 이야기는 ‘기부와 나눔’으로 귀결됐다. 최 회장은 “서로 기분 좋게 이야기나 나누면 좋은 거지. 뭘 틀에 박힌 인터뷰를 하려고 하냐”며 “다들 잘 살려고만 하는데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정작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아버지로부터 내가 가진 걸 남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걸 배워왔다”며 “아버지도 그러셨고 자식된 도리로서 당연히 아버지를 따라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늘 되새기면서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SK그룹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차남으로 현재 국내 재계 서열 3위인 SK 집안의 맏형인 최 회장은 ‘기부 영웅’ ‘나눔 전도사’ 등으로 불리면서 소외된 이웃을 직접 찾아 나서 봉사와 기부를 실천하는 CEO로 유명하다.‘기업가들이 솔선수범해 나눔을 실천해야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1952년 수원 출생인 최 회장은 지난 1981년부터 SK그룹에 몸담았다. 선경인더스트리 이사, 선경그룹 전무를 거쳐 2000년부터 SKC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의 나눔 멘토는 선친 최종건 회장이다.그는 선친에 대해 “항상 주변 이웃을 보살피는 것에 소홀하지 않았고 나눌 수 있다는 게 최고의 행복이자 특권으로 가르쳐주셨다”고 회고했다.최 회장은 지난 2008년 11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개인 기부자 명단에서 현직 기업인으로는 최고액인 3억3천200만원을 기부하고 대기업 회장 중에는 처음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에 정식으로 가입했다.이어 2009년에는 미국 경제 주간지인 포브스 아시아판이 선정한 ‘기부 영웅’으로 뽑히기도 했다. 2011년 7월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5대 회장으로 취임한 최 회장은 지난 2014년 7월 임기가 만료됐으나 연임이 결정돼 2017년까지 모금회를 더 이끌고 있다. 나눔 문화 확산에 나서면서 그가 내놓은 기부금은 28억원에 달한다.‘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최 회장은 세계공동모금회(United Way Worldwide·UWW)가 발족한 세계리더십위원회의 유일한 아시아 국가 위원으로 위촉됐다. 그의 기부와 나눔에 대한 신념은 지난해 9월 세계공동모금회의 산하조직 세계리더십위원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고액 기부자 모임인 세계리더십위원회가 아시아에서 개최한 것은 지난 1887년 UWW가 설립된 이후 처음이었다. 2013년부터는 다문화 가정과 탈북청소년을 위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 회장은 “나눔은 이제 일상이고 습관이 됐다”며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누면서 새롭게 배우게 된다”고 했다. 최 회장은 현재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이자 경기도상공회의소연합회장으로 지역 경제 발전에 힘쓰고 있다.그는 “지금의 내 위치에서 해야 하는 일은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고민을 듣고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라며 “기업인들 어깨 두드려주고 흥이 나서 일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2016년 한해 상공회의소 역할에 대해 “국내외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의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려고 한다”며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제도적 규제를 해소하고 갖가지 기업 애로를 해소하는데 적극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또한 그는 경기도상공회의소연합회장으로서도 회원사들과 함께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지역 사회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노력도 함께 펼치고 있다. 그는 “기업인들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럴수록 힘을 합쳐 더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하는 게 바로 진정한 나눔”이라며 “회원사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으고 몸으로 실천하는 봉사활동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최 회장에게 ‘새해 덕담 한마디’를 부탁했다. 이에 그는 “내가 많이 갖고 잘나서 베풀 수 있는게 아니라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려고 더욱 노력하고 있다”며 “서로 나누고 양보하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신원 SKC 회장은?▲ 1952년 수원 출생▲ 1981~ 선경인더스트리 이사, 선경그룹 전무, SK유통 대표이사▲ 2000 ~ SKC 회장▲ 2011.8~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2011.12~ 한국브라질협회 초대 회장 ▲ 2012.4~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2012.11~ ‘아너소사이어티’ 대표 ▲ 2012.12~ 세계공동모금회 리더십위원회 한국 대표▲ 2015.3~ 경기도상공회의소연합회장/글=이성철기자 lee@kyeongin.com ·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SKC 최신원 회장이 서울 을지로 집무실에서 자신만의 기부철학에 대해 설명하다가 ‘누군가에 도움을 주고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16-01-05 이성철

[인터뷰… 그] 김영수 kt sports 대표이사

◈프로야구 데뷔 첫 해를 되돌아본다면…4·5월 힘든 시간 보내… 11연패뒤 첫승 온몸에 전율향토음식 야구장 입점 다양한 콘텐츠 제공 큰 성과스마트폰 앱 위잽 등 ‘ICT 접목’ 해외수출까지 준비◈다른 종목 선수단 운영과 하고 싶은 말은?농구단 구조조정 마무리 용병선발 현장 직접 방문사격·하키 등 비인기종목 선수들과 소통위해 노력기다려주고 믿어준 팬들에 감사 지속적 관심 부탁“내년에도 많이 아껴주시고 채찍질해 주시기 바랍니다.”프로야구 막내구단 수원 kt wiz는 올해 1군 무대에 진입해 당당히 프로야구 10번째 구단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kt는 개막 후 11연패 뒤 첫 승을 거두며 시즌 초반에는 힘겨운 시절을 보냈지만, 중반부터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4월 kt의 성적은 3승 22패에 그쳤지만, 6월에는 11승 12패, 7월에는 8승 10패를 기록하며 각각 선전했고, 최종성적은 52승 1무 91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비록 최하위에 머물긴 했지만, kt가 보여준 잠재적 능력은 2016년 시즌 도약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지난 22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김영수(64) kt sports 대표이사를 만나봤다.kt 스포츠단을 이끌고 있는 김 대표이사는 올해 kt wiz 평가에 대해 “올 시즌을 되돌아봤을 때 80점은 된다고 생각한다. 4, 5월에는 정말 힘들었다. 11연패 뒤 첫 승리를 거뒀을 때는 몸에 전율이 오더라. 당시 어떤 팬들은 눈물까지도 보였다. 끝까지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6월부터는 리그에서 중간 정도는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적으로 칭찬을 많이 받고 있는데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고 내년에는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또 김 대표이사는 “kt가 수원에 잘 정착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며 “독특한 시구와 다양한 이벤트를 연출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수원시의 도움으로 야구장에 향토 음식이 들어오게 됐다. 야구장에서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의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kt는 지난 8월 27일 신생 구단 데뷔 첫 해 최다관중 기록(53만 1천696명)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2013년 NC 다이노스가 세운 창단팀 홈 관중 52만8천739명 (평균 8천261명, 64경기 기준)보다 3경기를 적게 치른 시점에서 세운 기록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올 한해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의 또 하나 이슈는 애플리케이션 위잽(Wizzap) 등 야구장에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김 대표이사는 “수원 케이티위즈파크가 ICT를 가장 잘 접목 시킨 구장이라고 생각한다. 위잽은 티켓 구매, 스피드 게이트, 스마트 오더, 선수들의 기록 데이터 확인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며 “이런 기술들이 해외에 알려져 수출까지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수원 야구장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김 대표이사는 “수원시에서 리모델링을 정말 잘 해주셨다”며 “좀 더 관중들이 야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팬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김 대표이사는 야구를 비롯해 농구, 사격, 하키, E-스포츠 등을 총괄하고 있다. 야구만 편애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야구단은 올해 처음 1군 무대에 진출했기 때문에 신경을 더 써야 했다”고 웃으면서 “지난해 농구단은 구조조정을 거쳤고 조동현 감독이라는 젊은 감독도 새롭게 선임했다. 올해 용병을 뽑을 때 직접 트라이아웃 하는 곳에 참석해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려 노력했다”고 전했다.또 “사격, 하키 등 비인기 종목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선수단 워크숍 등에 참여해 선수들과 소통하려고 한다”며 “우리 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는 등 실력이 뛰어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E-스포츠도 인기가 대단하다”며 “특히 독일에서 열렸던 LOL. 월드챔피언십에선 수 만 명의 관중들이 몰릴 정도로 팬들의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김 대표이사는 쉬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는 “야구 시즌 때 프런트는 오후 1시에 출근을 하는데, 그 전에 시간이 나면 헬스 클럽에 가거나 산책을 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며 “요즘에는 사무실에 와서 야구장을 걸으며 운동하는데 5바퀴 정도 걸으면 3천보 정도 된다. 야구장을 걸어보면 마음이 새로워진다”고 말했다.내년 시즌 kt wiz의 목표는 무엇일까. 김 대표이사는 “야구는 내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감독·코칭 스태프로 하여금 선수들이 끈기 있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 야구장에 있는 계열사들과 함께 여러 가지 마케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야구단이 자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끝으로 “지난해 그렇게 성적을 내지 못하고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줬지만 기다려주고 믿어주셔서 감사하다”며 “내년에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올해 보다 더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내년에도 kt wiz 야구를 아껴주시고 채찍질 해달라”고 당부했다.■김영수 대표이사는?▲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LG그룹 회장실 홍보담당 이사▲ (주)LG전자 홍보팀장 부사장▲ (주)LG스포츠 대표이사 사장▲ (사)한국 ABC협회 부회장▲ (주)kt sports 대표이사▲ 한국광고주협회·전경련 경제홍보협의회 운영위원▲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심의위원▲ KBO 이사▲ KOC 미디어위원회 위원장▲ 한국광고대회 유공광고인 국민포장/대담=신창윤 체육팀장정리=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김영수 kt sports 대표이사가 수원 케이티위즈파크 사무실 앞에서 수원 kt wiz에 대한 올해 평가와 내년 시즌 청사진을 밝힌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12-29 이원근·신창윤

[인터뷰… 그] 김만수 부천시장

◈제17회 국제로봇올림피아드 어땠나?20개국 1161명 학생 열띤 경연에 시민 수천명 발길로봇만화전·한국전통소재 등축제 인기 ‘연장 개최’◈부천시의 로봇산업 육성정책은?2004년부터 年15억 투자 매출 3배·수출 7배 ‘큰 성장’국제연구소 설립·영화제 결합등 첨단문화도시 될 것“부천이 국제로봇올림피아드(IRO 2015) 세계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대한민국 로봇산업의 메카’임을 입증했다.”지난 15일부터 20일까지 6일간 부천체육관과 부천로보파크, 한국만화박물관 등 부천 일원에서 전 세계 20개국 1천161명의 초·중·고교생들이 참가해 열띤 경연을 펼친 제17회 국제로봇올림피아드(IRO 2015) 세계대회가 폐막됐다. 2년 전인 2013년 미국 덴버에서 열린 제15회 국제로봇올림피아드에서 2015년 개최 도시로 부천이 선정됐을 때만 해도 일부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부천의 성공적인 대회 개최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5일 개막식에서부터 그 같은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였음을 보여주었다. 로봇산업의 메카를 꿈꾸는 부천, 미래 로봇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려는 부천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광역도 아닌 기초 자치단체에서 국제로봇올림피아드(IRO 2015) 세계대회를 유치하고, 또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김만수 부천시장을 만나봤다.국제로봇올림피아드는 기존의 수학, 물리, 화학 올림피아드 등과 함께 청소년들의 창의적 과학기술 마인드를 배양하기 위해 지난 1998년부터 열어온 지구촌 최대의 로봇축제다. 현재 한국, 중국, 미국 등 총 26개국이 가입돼 있고, 지난해엔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대회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는 덕담에 김 시장은 “대회기간 혼신을 다해 명승부를 펼쳐 준 전 세계 20개국 선수와 성원을 보내 준 관람객들에게 우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로봇도시 부천’의 위상을 굳건히 다지는 큰 성과를 거뒀다”고 힘주어 말했다.대회 주제를 ‘로봇과 영화(Robot&Movie)’로 정한 부천시는 ‘만화의 도시, 영화의 도시’라는 기존 부천의 이미지에 더해 ‘로봇의 도시’라는 도시 브랜드 창출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쏟았다. 세계대회와 더불어 진행된 부대행사로 로봇과 만화 캐릭터를 전통 등(燈)으로 제작·전시한 ‘로봇-문화 등축제(Robo-Lighting Fair)’, 로봇만화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로봇만화 특별전’은 일반인들은 물론 선수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폐 타이어와 버려진 폐자재 등을 활용해 만든 ‘정크로봇 특별전’, 부천로봇산업 기술력을 보여주는 ‘로봇산업특별전’ 등 다양한 행사는 참가선수들만의 경기에 그치지 않고 시민과 일반인이 참여하는 축제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로봇-문화 등축제(Robo-Lighting Fair)는 로봇과 더불어 우리 전통문화를 소재로 해 세계 각국의 학생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는 등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져 오는 31일까지 연장 개최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조직위 관계자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큰 호응이 있었다”며 “개막식에 4천여명을 비롯해 대회 기간 내내 2천~3천명의 관람객 발길이 이어져 내년 1월까지 이어지는 ‘부천로봇산업 특별전’과 ‘로봇만화 특별전(내년 4월까지)’을 감안 할 경우 역대 기록을 새롭게 쓸 것”이라고 전했다. 김 시장은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며 “이번 대회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10여년 후에는 전 세계 로봇산업의 진화 속도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부천시 로봇산업 잠재력을 보고 느낀 학생들이 향후 부천로봇산업 성장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부천시의 로봇산업 육성 정책과 관련, “자치단체 누구도 나서지 않던 시절인 지난 2004년부터 부천시는 부천테크노파크 401동을 부천로봇산업연구단지로 조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15억원씩 로봇산업에 집중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이어 “국가를 비롯해 각 지역 로봇 산업은 최소 광역자치단체 단위에서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부천은 2005년 이후 총 지원 예산 215억원 중 58%를 부천시가 자체 투자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또 국내 최초 로봇상설전시장 ‘부천로보파크’도 지난 2006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부천시 로봇기업은 2013년 기준 전국 402개사 중 39개사로 9.7%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출액은 2천119억원으로 국가 로봇산업 생산액(2조원)의 8.8%를 점유하고 있다. 로봇부품산업의 경우도 전국 124개 기업 중 23개사가 부천에 집적되어 기업체 수 18.5%, 생산액 57%를 점유하고 있다.그동안 경기도와 부천시의 적극적인 투자에 힘입어 지원 사업 시작단계보다 로봇기업 매출 3배, 수출 7배, 고용 1.8배 이상 성장하는 등 양적으로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향후 부천 로봇산업이 국가 로봇산업발전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설명에서는 자신감까지 내비쳤다.김 시장은 “지능형 로봇은 첨단 IT기술의 집약체로, 국가에서도 로봇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산업의 하나로 지정하고 2018년 국내 생산액 7조원을 목표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며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만화축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예술, 즉 CT(Culture Technology) 도시인 부천시는 앞으로 IT와 CT가 융합하는 첨단문화도시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지난 10월의 ‘제11회 부천로보파크 휴머노이드 로봇댄스 대회’와 11월에 개최한 ‘제5회 휴머노이드 아레나 대회’ 등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봤고, 이번 제17회 국제로봇올림피아드(IRO 2015) 세계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시장은 ▲로봇융합 촉진을 통한 지역 주력·전략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신 비즈니스 모델 창출 ▲지역 로봇 성장생태계 조성으로 로봇기업 저변 확대 및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이라는 부천로봇산업 비전과 목표를 설정했다.이어 IT(로봇)와 CT(문화)의 메카 육성을 위해 부천 로봇영화제 및 부천로봇축제 개최, 로봇공원 설립, 국내·외 로봇전문 기관 유치 및 국제로봇전문연구소 설립을 통한 부천시 로봇융합 생태계 조성, 로봇 강소기업 유치 및 기업육성 플랫폼 구축과 성장 단계별 맞춤형 특화지원, 로봇기술의 전·후방 산업 확산을 통한 부천시 로봇강소기업(챌린지기업) 육성 등 세부 추진과제 등을 제시했다.■김만수 시장은?▲ 1964년 충북 충주 출생. ▲ 충암고,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석사▲ 1995년 부천시의원(초선)▲ 1998년 부천시의원(2선, 기획재정위원장)▲ 2003년 청와대 춘추관장(故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 2005년 청와대 대변인(故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 2010~2014년 제 20대 부천시장(민선 5기)▲ 2014~현재 제21대 부천시장(민선 6기) /글 = 부천/이재규기자 jaytwo@kyeongin.com · 사진 =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제17회 국제로봇올림피아드 세계대회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김만수 부천시장이 부천체육관 광장에 전시된 쓰레기를 재활용한 정크로봇 작품을 들어 보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12-22 이재규

[인터뷰… 그] K리그 1부 승격 일궈낸 ‘명장’ 수원FC 조덕제 감독

◈‘승강PO’ 승리 비결과 올해를 되돌아본다면6위 정도 예상했지만 9월 들어 우승 마음먹어신생 서울 이랜드와 준PO 가장힘들었던 경기철저한 분석·선수들에 자신감 심어준게 주효◈내년 시즌준비 과제와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삼성과 ‘수원더비’ 대비 구색 갖추는게 시급이룬 것보다 망가지는 게 쉬워 잔류에 최선60세까지는 어디에 있든 지도자 생활 할 것“우리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리그)에서 클래식(1부리그) 승격을 이뤄낸 ‘명장’ 수원FC 조덕제 감독의 얼굴은 동네 형 같은 느낌이다. 지난 5일 승격을 확정했던 부산 아이파크와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조 감독의 시선은 벌써 내년 시즌을 준비 중이다. 내셔널리그에서 챌린지, 그리고 클래식까지 ‘축구 신화’를 일군 수원FC 조덕제 감독을 만나봤다. 지난 7일 오후 수원종합운동장 내 수원FC 사무실. 어수룩한 차림의 조 감독은 밀려오는 언론사 인터뷰 요청 속에서도 틈틈이 내년 시즌을 위해 선수들과의 일대일 미팅을 계속했다. 그렇게 바쁜 조 감독이었지만, 인터뷰에는 성실히 대해줬다.조 감독은 축하 얘기를 건네자 “갑자기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다. 언론사 취재 요청이 너무 많다. 선수 뽑으러 다니기도 바쁜데, 걱정이다”라며 운을 뗐다. 그는 “클래식으로 승격됐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하루가 지나자 기쁨보다 부담이 밀려온다. 당장 선수 수급을 해야 하는데 대책이 없어 고민이다”라고 토로했다.그의 말대로 현재 수원FC는 비상이 걸렸다. 수원FC는 임성택이 상주 상무로, 김재웅이 경찰청에 입단하며 김종우는 원소속팀인 수원 삼성으로 복귀한다. 블라단, 시시, 자파 등 외국 선수들과의 재계약 여부도 남아 있다.조 감독은 올해 챌린지에서 클래식으로 올라갔던 광주FC 와 대전 시티즌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결과적으로 광주는 10위로 잔류에 성공했고, 대전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해 다시 2부로 내려왔다. 그는 “대전과 광주의 차이는 선수단 구성에 있다”며 “광주는 챌린지에서 뛰던 선수들이 큰 변화 없이 클래식에 올라갔지만, 대전은 선수들이 많이 바뀌었다. 선수단 구성이 매년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생각보다 많이 바뀐 것이 원인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그렇다면 조 감독은 올 시즌을 어떻게 내다봤을까. 그는 “시즌 전 내 마음은 6위 정도로 생각했다”며 잘라 말했다. “사실 언론에는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겠다고 말했지만, 상주, 대구, 경남, 이랜드 등 쟁쟁한 팀들이 2부리그에 많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 올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8월에 3연승을 하면서부터였다. 9월19일 고양 HiFC와 비겼을 때는 선수들에게 우승에 도전해 보자고 격려하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그는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기로 서울 이랜드와 준플레이오프를 꼽았다. 그는 “준플레이오프 때는 거의 잠도 못 잤다. 이랜드는 기업 구단이면서 클래식 진출을 준비한 팀이었다. 시즌 중에도 이랜드와 붙으면 골이 많이 났다”면서 “우리 팀은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팀이기에 이랜드가 강팀이기는 하지만 신생팀에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부산과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선 조 감독의 지도력이 빛났다. 시즌 중 부산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수원FC였지만, 철저한 비디오 분석과 선수들에 동기 부여로 클래식 팀과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조 감독은 “김재웅, 김종우, 시시 등 우리 팀 미드필더들이 부산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선수 개개인에게 경기 중 각자가 맞붙게 될 부산 선수들보다 잘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줘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또 철저한 비디오 분석을 통해 상대 선수들의 스타일을 파악했다. “상대가 드리블을 왼쪽으로 하는지, 오른쪽으로 하는지, 슈팅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철저히 분석했고 선수들에게 대응 방안을 제시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의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평소에 그렇게 했다면 우리와의 경기에서도 그렇게 할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올 한해 팀의 최우수선수(MVP)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조 감독은 자파를 선택했다. 자파는 21골 7도움으로 수원FC의 공격을 이끌었다. 그는 “부상에도 한 시즌 동안 20골 이상을 넣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자파가 개인플레이만 한 것은 아니다. 도움을 기록할 정도로 능력이 있는 선수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자파는 물론 시시, 블라단 등 외국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뛰어줬다. 특히 오사수나라는 스페인 명문팀에서 뛰었던 시시가 이렇게 열심히 할 지는 생각도 못 했다. 시시, 자파가 수비에도 가담해주면서 팀이 더 강한 조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용병을 뽑을 때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정말 복 많은 감독이다”며 웃었다.수원FC는 공격 축구를 지향했다. 팬들은 ‘막공(막강한 공격) 축구’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조 감독은 “내년에도 조덕제 축구가 달라지겠나”라면서 “클래식에는 국가대표급 수비수들이 많다. 공격 축구를 추구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선수들이 얼마 만큼의 기량을 발휘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상대가 한 발 뛸 때 두 발 뛰는 축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수원 더비’(수원FC-수원 삼성)에 대해서도 “K리그 최초로 지역 더비가 생겼다. 수원 삼성과 경기를 할 만큼 팀의 구색을 갖춰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할 것 같다”고 전했다.조 감독은 선수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해주려고 노력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원정 경기에 갈 때 타는 선수단 버스를 딱 1번 타봤다”며 “최대한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식사할 때도 코치진과 프런트들이 선수들과 함께 식사를 못 하게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점들이 수원FC의 끈끈한 팀워크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조 감독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주위에서 덕장이다, 명장이다 이런 얘기를 해주지만 그만큼 열심히 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클래식에 올라가서 수원FC가 타 팀들과 얼마나 대등한 경기를 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20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실업 축구, 챌린지, 클래식을 비롯해 아마추어 축구, 학교 축구 등 다양한 연령과 성격의 팀들을 맡아왔다. 지도자로서는 다 이뤘다고 생각한다. 60세까지는 어디에 있든지 지도자 생활을 할 것이다”고 답했다.이어 “클래식에 올라가서 타 팀의 지도자들에게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 준비가 돼 있다. 클래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수원FC가 내년 시즌이 끝나고 잔류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면서 “클래식에 올라간 것보다 팀이 망가지는 것이 더 쉬울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선수들에게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조 감독은 이제 내년 시즌 구상을 위해 새로운 마음가짐을 준비한다. 그의 생각에는 아직도 도전 정신이 묻어난다. 그의 말대로 내년 시즌 수원FC의 활약이 기대된다.■조덕제 감독은?▲ 1965년 출생. 아주대학교 졸업▲ 1988~1995 부산 대우 로얄즈 선수▲ 1996 아주대학교 축구부 코치, 김희태바르셀로나축구학교 감독▲ 2004 아주대학교 축구부 감독▲ 2011 수원시청축구단 유소년 총감독▲ 2012~현재 제2대 수원 FC 감독▲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대상 감독상/글=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수원시청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리그)에서 클래식(1부리그)의 승격을 이뤄낸 수원FC 조덕제 감독이 “클래식에 올라가서 수원FC가 타 팀들과 얼마나 대등한 경기를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임열수기자

2015-12-08 이원근

[인터뷰… 그]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추대된 유정복 시장의 ‘지론’

◈자신감 넘치는 지방자치론자시·도의원 보좌관제 반대는 이기주의정무직 시·도지사 급여 차관급 머물러공공기관 명칭에 ‘지방’ 빼도 문제없어안행부장관등 두루 경험 역사적책임감◈지자체 목소리 키울 비책은심각한 재정난 국가보조금에 끌려다녀전시성 예산 감축 재정성과평가 필요지방4대협의체 연합으로 협상력 확보자치경찰제 등 분권과제 합리적 추진“형식적인 지방자치가 아닌 실질적 지방자치로 전환할 때가 됐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중앙과 지방이 상하 관계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오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난달 16일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제9대 회장으로 추대된 유정복(57) 인천시장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인천시장이 전국 시장·도지사 대표를 맡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유정복 시장은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낸 데다, 박근혜 정부와 소통이 잘 이뤄진다는 점에서 시도지사들의 기대가 크다.지난 3일 오후 인천시장실에서 만난 유정복 시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누구보다 지방자치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저는 자칭 지방자치론자입니다. 내무부와 경기도 등에서 일했고, 관선·민선 기초단체장을 지냈고, 국회의원을 거쳐 지방자치단체를 총괄하는 안행부 장관도 역임했습니다. 지금은 인천광역시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나에게는 지방자치 발전과 관련해 역사적 책임이 있다. 사명 의식을 갖고 있다”며 “자만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법까지 제시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유정복 시장은 지방자치를 왜 해야 하는지, 지방자치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유정복 시장은 “중앙과 지방이 상하로 인식되고 있는 틀부터 바꿔야 한다. 이런 상하 개념을 깨지 않으면 지방자치는 발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안행부 장관을 지낼 때 시·도의원 보좌관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지방의원은 보좌관을 두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했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지방의원은 자질이 떨어진다?’ ‘아직은 도입 시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시기는 언제입니까!”유정복 시장은 “지방의원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럼 이분들은 자질이 안 되는데 어떻게 국회에 들어왔느냐”며 “시·도의원의 자질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약화시키는 정치권의 이기주의”라고 했다. 또 “보좌관이 없다 보니 공무원에게 예속화되는 것”이라며 “보좌관의 ‘개인 비서화’를 우려한다면, 사무처에서 선발해 각 의원실에 배치하면 된다”고 했다.그는 중앙정부에서 시도지사 급여를 차관급으로 한 것도 문제 삼았다. 유정복 시장은 “20년 전 임명직 때도 차관급이었다. 2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라며 “시도지사는 정무직이다. 정무직만의 급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급여를 올려 달라는 것이 아니다. 중앙에서 시도지사를 차관급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공공기관 명칭에도 수직적 상하 관계 개념이 숨어 있다.“인천지방경찰청은 그냥 인천경찰청이라고 하면 됩니다. 왜 공공기관 명칭에 ‘지방’이라는 단어를 넣습니까. 명칭에 ‘지방’이 들어가야 하는 법적 근거도 없고, ‘지방’을 빼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유정복 시장은 “지방자치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인식 구조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며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개념을 새롭게 이해해야 할 때가 왔다. 그렇다고 중앙정부와 싸우겠다는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 발전이 곧 국가 발전이라는 점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협력 관계 속에서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다.인천 등 지자체의 재정난이 심각하다. 특히 국고보조금 제도의 경우, 지자체에서는 그에 맞게 예산을 매칭해 부담해야 한다. 이는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유정복 시장은 “지방 재정에 부담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보니,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보조금에 끌려다니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어 “보조금 제도의 혁신이 시급하다”며 “지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사업에 맞춤형 보조금이 지원되어야 한다”고 했다.유정복 시장은 지자체의 노력도 당부했다. 그는 “지역 실정에 맞는 세원과 세외수입 발굴 등 자체 세입 노력이 증대되어야 한다”며 “세출 부문에서도 전시성과 행사성 예산은 감축하고 재정성과 평가 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등 4개 모임을 소위 ‘지방4대협의체’라고 한다. 유정복 시장은 중앙에 대한 지방의 대등한 협상력을 확보하고자 지방4대협의체를 한데 묶는 연합체를 결성할 계획이다.“그동안 지방4대협의체는 사안별로 ‘같이 또는 다르게’ 활동했습니다. 중앙에 대한 지방의 협상력이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지방4대협의체를 아우르는 지방자치단체 연합체를 결성해 지방의 대등한 협상력을 확보하고자 합니다.”그는 “(연합체 결성은) 지방자치 발전에 관한 논의가 다소 산발적이었다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연합체를 중심으로 전문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참여하는 ‘공동 논의의 장’을 펼쳐 보고 싶다”고 했다. 또 “자치경찰제 도입, 지방자치-교육자치 일원화, 자치조직·입법권 확대 등을 지금까지 역대 정부에 제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지방분권 과제들의 합리적 추진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 나가겠다”고 했다.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임기는 1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유정복 시장은 “기초단체장,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의정 활동, 지방자치를 책임지는 안행부 장관 등을 지낸 저의 경험을 높게 평가해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며 “회장으로 추대된 것에 대해 여러 시도지사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그는 “개인적으로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며 “시도지사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지방의 공동 번영과 이익을 대변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성숙한 지방자치가 정착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방분권 과제를 추진하겠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상하 기관이 아닌 동반자로 인식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유정복 시장은?▲ 1957년 인천 출생▲ 송림초·선인중·제물포고·연세대 졸업 ▲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연세대 정치학 박사 과정 수료▲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1994년 제33대 김포군수▲ 1995년 제5대 인천 서구청장, 초대 민선 김포군수▲ 1998년 초대 김포시장, 제2대 김포시장▲ 2004~2014년 3월 제17·18·19대 국회의원▲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2013~2014년 3월 안전행정부 장관▲ 2014년 7월~ 제6대 인천시장▲ 2015년 10월~ 제9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전국시도지사협의회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광역자치단체장들로 구성된 협의체다.전국 시도지사들은 1999년 1월 간담회를 열어 협의회 설립을 의결했으며, 그해 8월 31일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협의회 결성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협의회는 지방분권을 선도하고 시·도 공동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자 2005년 4월 사무처를 발족하는 등 선진 지방분권 국가 실현을 최종적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대담=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정리=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인 유정복 인천시장이 “중앙과 지방이 상하로 인식되고 있는 틀부터 바꿔야 한다. 이런 상하 개념을 깨지 않으면 지방자치는 발전할 수 없다”며 “지방자치 발전이 곧 국가 발전이라는 점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협력 관계 속에서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5-11-04 박현수

[인터뷰… 그] 황준기 신임 인천관광공사 사장

◈유커·환승객·크루즈 관광객 유치 수요 증가 개별관광 자원 발굴 부족해 개항 활용 ‘차별화 공간’ 조성 1차목표 서울 직행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탓 인천도 ‘Must-see’ 콘텐츠 개발해야 ◈관광공사의 역할과 수익사업 견해 의료·항만분야 등 각 부서 일 ‘뒷받침’ 市 추진사업 관광관점으로 접근·활용 수익보다 공적 기능 우선 공익형 기업 단계적 市 재정지원 줄이기 방안 고민 인천관광공사가 인천도시개발공사와 함께 인천도시공사로 통합된 지 4년 만에 다시 출범했다. 인천관광공사는 재설립 추진 과정에서 인천시 재정난이 가중될 우려 때문에 찬반 논란이 있었다. 황준기 신임 인천관광공사 사장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2일 관광공사 출범식에서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출범하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출범식 다음날인 23일 만난 황준기 사장은 기자의 질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인천관광공사 설립과정에서 있었던 반대의견을 경청해 공사 경영에 반영하겠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관광공사 출범 초기에는 우려가 안심으로 바뀌는 것에 역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황준기 사장은 인천관광공사의 역할을 ‘모자이크’(Mosaic)에 비유했다. 그는 몇몇 사업을 가지고 수익을 내는 공기업이 아니라 인천시, 민간단체·기업 등 관광분야 관련 여러 주체가 조각 맞추듯 ‘인천 관광’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사장 임용 전 관광객으로 인천을 방문한 적은. 사실 공직생활 대부분을 경기도에서 했고, 4년 가까이 경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기 때문에 인천에 올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경기관광공사 재직시절 인천이 수도권 마케팅 파트너이면서도 경쟁대상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인천관광공사 사장 공모에 도전하기 전 중구 신포시장에서 동인천 상가, 차이나타운 등지를 3시간 정도 걸으며 둘러봤다. 소래포구도 가봤다. 인천은 참 재미있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절경을 가지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에는 충분치 않은 측면이 있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멋’은 걸어 다니며 즐길 수 있는 ‘도시관광’이 핵심인데, 특히 인천 구도심은 특이한 재미가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등 돈을 많이 들여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역사가 녹아있는 공간을 잘 활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도시관광이다. 잘 만들면 관광객의 ‘니즈’(needs·수요)를 충족시킬 요소가 꽤 많다는 걸 느꼈다. -인천은 현재 유커(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략은. 우리나라 사람이 즐겨 찾아야 외국인 관광객도 찾는다는 생각이다. 유커도 최근 굉장히 영리해져서 썰렁한 곳에는 가지 않는다. 단체 패키지 관광이 아닌 개별 관광(FIT)을 하는 유커 비율도 이미 50%를 넘어섰다. 제주도에 있는 맛집을 혼자 찾아가 줄을 서서 먹는다거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등 이른바 ‘핫 플레이스’도 다 찾아다닌다. 스마트폰 등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고, 대중교통도 편리해졌기 때문에 사람이 북적북적하고 걸어 다니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인천도 이 같은 개별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관광자원이 풍부하지만, 아직 발굴하지 못한 게 많다. 우선 구도심이 가지고 있는 개항의 역사 등 다른 곳엔 없는 독특한 콘텐츠와 연계해 국내외 관광객 모두가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1차 목표다. 중구 구도심 일대가 보행환경이 나쁜 것은 개선해야 할 문제다. -인천공항 환승객과 크루즈 관광객 유치도 과제다. 공항 환승객과 크루즈 관광객 유치는 가장 괴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공항에 내리는 사람 대부분이 곧바로 서울로 간다. 크루즈를 타고 인천항에 내리는 사람이 선택 관광을 하는데, 10개 중 1개 정도인 인천관광은 그나마 인기가 없다. 이는 인천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원인이다. 경기관광공사에 있을 때 중국으로 로드쇼나 세일즈를 가보면 국내로 5만명 이상 관광객을 보내는 대형 여행사 관계자조차 경기도를 몰랐다. 대한민국 어디를 아느냐고 물으면, 서울과 제주도만 안다. 서울 어디를 가봤는지 물으면 용인 에버랜드, 파주 DMZ 등 10곳 중 4~5곳은 경기도다. 관광하는 입장에서는 그곳이 인천인지, 경기도인지, 서울인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콘텐츠로 승부를 겨루는 것인데 인천에는 아직 ‘Must-see(꼭 봐야 할 것)’가 부족하다. 한국 또는 수도권의 ‘Must-see’ 10곳 중에 인천이 2~3곳 들어가도록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중국 여행사에 인천의 ‘Must-see’ 정보를 주고 팸투어 초청 등을 하면 공항 환승객이나 크루즈 단체 관광객 관련 상품이 나오게 된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강조하는 관광자원 중 하나가 168개의 섬이다. 아직 인천 섬을 둘러보지 않아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섬이 많으면서도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 나라도 드물다. 섬은 자연경관과 더불어 문화가 입혀져야 한다. 섬에 문화를 입히는 데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인천 섬은 아직 교통도 불편하다. 우선 섬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린 후 돈과 시간, 성의와 정성을 들여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한다. -인천관광과 관련해 인천시 역할과 관광공사 구실은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관광이란 게 마치 모자를 들고 있는 것과 같아서 ‘의료’에 씌우면 의료관광이 되고, ‘뷰티’에 씌우면 뷰티관광이 된다. 의료의 품질이 좋으면 그것을 매개로 사람들이 인천에 온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이외의 시간에 즐겁게 돈 쓰게 만드는 것이 관광이다. 의료분야·항만분야 등 인천시 각 부서가 산발적으로 하는 일들이 관광이라는 큰 그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협력하는 게 관광공사의 역할이다. 인천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관광이라고 의식하지 못해도 관광공사는 그것을 관광의 관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행정고시 23회 동기인 유정복 인천시장과의 인연을 궁금해 한다. 1981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같이 공직생활을 한 동기다. 당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 30명 남짓이 지원해 각 시·도로 흩어져 일하다가 사무관 시절 내무부 같은 부서에서 일하기도 했다. 1994년 1월 유정복 시장이 경기도 기획관을 하다 김포군수로 가고, 나는 내무부에 있다 연천군수로 갔다. 그러다가 유 시장은 민선 자치단체장을 지냈고, 나는 공무원으로 쭉 일하다가 공무원으로 졸업했다. 유 시장이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 같이 일할 기회는 없었지만, 개인적인 교류는 있었다. 서로 워낙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관광공사는 출범 과정에서 인천시 재정난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불투명한 수익사업 계획에 대한 지적도 있다. 공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을 무시할 수는 없다. 행정경험과 지방공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공기업은 수익형 공기업과 공익형 공기업을 구분해야 한다. 인천관광공사는 관광분야 인프라와 마케팅을 지원해 주는 공익형 공기업이다. 관광공사가 돈을 벌려면 민간 관광요소와 맞서 경쟁해야 하는데, 그건 적절치 않은 방향이다. 하버파크호텔처럼 그 장소에 호텔이 필요하지만, 수익이 나질 않아 공공에서 지은 것도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익이 잘 난다고 하면 매각 등을 통해 민간에서 운영토록 하면 된다. 관광공사는 공적기능이 수익 창출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공공기관이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재정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인천관광공사가 시 재정부담을 악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시 재정지원을 단계적으로 줄여가는 방안을 여러 각도로 고민할 것이다. ■황준기 사장은? ▲ 1955년 서울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아주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 1981년 행정고시 23회 합격 ▲ 2004~2006년 경기도 기획관리실장 ▲ 2006~2007년 행정자치부 지방재정세제본부장 ▲ 2008~2009년 대통령실 정무수석실 비서관 ▲ 2009~2010년 여성부 차관 ▲ 2011~2014년 경기관광공사 사장 ▲ 2015년 9월~ 인천관광공사 사장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몇몇 사업을 가지고 수익을 내는 공기업이 아니라 인천시, 민간단체·기업 등 관광분야 관련 여러 주체가 조각 맞추듯 ‘인천 관광’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밝히고 있는 황준기 인천관광공사 사장.

2015-09-29 박경호

[인터뷰… 그] ‘제2의 나비축제 준비하는’ 이석형 산림조합중앙회 회장

나비전도사, 산림지킴이 ‘변신’ 내달 산림문화박람회 열어 문화·관광·환경의시대 관통하는 숲… 성장동력 육성 노력 ‘국민과 반세기 동행’ 도심숲 조성등 생활속 정책발전 필요 오는 10월 8일 민족의 의성 허준이 의술을 펼친 산청에서 ‘2015 대한민국 산림문화박람회’가 개최된다. 힐링 여행 1번지를 슬로건으로 한 이번 박람회는 지난해 11월 산림조합중앙회장으로 취임한 이석형 회장의 첫 번째 산림 비즈니스 모델이다. “자신에게 떳떳하고 봉사하며 살자”라는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는 이석형 회장. 이 회장은 39세의 나이에 함평군수에 당선돼 3선을 했으며 나비축제 창안자로 더 유명하다. 나비전도사에서 산림 지킴이로 변신한 그를 만나 대한민국 산림의 미래에 대해 들어본다. -취임 후 첫 번째 박람회다. 박람회 국내 최고 권위자로 무엇에 중점을 두었나. “산림문화박람회는 올해로 8회를 맞이하지만, 그동안 행정기관과 산림산업 종사자만의 행사였다. 올해는 산림조합이 전면에 나서 힐링여행을 모토로 가족단위의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축제의 장으로 꾸몄다. 목공 교실과 가드닝 등 숲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테마의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더불어 숲 속의 장터를 개장하여 임업인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홍보할 기회도 제공한다. 산림과 문화, 레포츠, 유통이 융합된 전국적 규모의 축제로 준비했다.” -산림사업의 미래에서 산림조합의 역할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산림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임업은 전통적인 1차 산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 진화시키는데 산림조합이 앞장서고 있다. 21세기를 문화, 관광, 환경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숲과 산림이다. 전국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숲 유치원과 수목장 림은 산림을 6차 산업으로 진화시킨 대표사례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산림사업 수행능력을 바탕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과 함께하는 산림서비스사업을 진행 중이다. 산림을 그 자체가 아닌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 -취임 이후 줄기차게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무엇인가. “올 상반기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 가운데 산림조합중앙회가 주식형 펀드 수익률 1위를 기록했다. 중앙회의 안정적인 수익기반 구축을 위해 취임 후 가장 먼저 자금운용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을 스카우트해서 모든 권한을 일임한 결과다. 금융시장에서 큰 성과를 낸 것처럼, 산림분야에서도 새로운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경기·인천·서울이 산림조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고 어떻게 활성화 시킬 계획인지. “산림조합은 산과 함께 53년 동안 국민 곁을 지켰다. 지난 반세기가 녹화사업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오는 10월 8일부터 개최하는 산림문화박람회는 산림을 통해 행복과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시·도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 드린다. 전국 142개 회원 조합 중 경기·인천·서울에는 20개의 회원조합이 있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 수도권 지역의 산림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사실이며 개발압력을 받고 있어 이를 지켜 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앞으로 수도권 지역의 산림개념은 산림을 도심 속으로 옮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옥상정원도 도심 속으로 숲을 옮기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도심 속 자투리땅을 이용하거나 건물의 빈 공간을 이용한 도심 속 숲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현재의 자원은 후손들에게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니만큼 기본에 충실해 잘 가꾸고 보살펴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림조합중앙회가 보다 발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아울러 관련 기관의 지원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인다. 조합원들의 권익향상과 소득 증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 재정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국토의 64%가 푸른 산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숲 그리고 산림과 산주들이 생각하는 산림은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국민 여러분들은 숲과 산림을 공공재의 성격으로 바라보지만 실제로는 산림의 68%가 개인의 사유재산, 즉 사유림이다. 인식과 현실의 차이가 크다. 그러나 산주 1인당 소유규모가 2.1ha 불과하고 5ha 미만의 영세 산주가 91.3%를 차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산주들의 대부분이 산림경영에 대한 참여도가 낮고 무관심한 편이며 일부 산주들께서는 사실상 재산가치의 증식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 산림을 통한 경제적 가치와 이익창출에 대해서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우선 관계기관에서 사유림 매수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고 산림조합 또한 사유림 대리경영과 소규모 산들을 모아 규모화를 통한 수익을 창출하는 선도산림경영단지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와 함께 ‘농업의 위기’는 ‘밥상의 위기’로 국민들과 함께 대응하고 있는 농수축산업에 비해 산림산업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체감도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산림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 숲은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산림의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융합하여 숲의 ‘질적 성장’을 위해 산림조합이 노력해가겠다.” ■이석형 산림조합중앙회 회장은? ▲ 1958년 전남 함평 출생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졸업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KBS 한국방송공사 PD ▲민선 2,3,4기 함평군수 ▲ 전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초빙교수 ▲전국청년시장군수구청장회 (청목회) /글=윤재준 기자 bioc@kyeongin.com·사진=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임업정책이 1차 산업에서 6차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이석형 산립조합중앙회 회장은 자원은 후손들을 위해 잠시 빌려쓰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2015-09-15 윤재준

[인터뷰… 그] 카본 소재 스포츠용품 업계 ‘거물’ 박경래 (주)윈앤윈 대표

■한국 양궁 세계 1위에 올려놓기까지 국내 첫 국가대표 한국新 27차례 경신 일찍 지도자 준비 일본잡지 보며 공부 남자 대회 싹쓸이·남녀 동반우승 견인 지도자들 강연 ‘세계적 코치’ 목표달성 ■활제조 정상 찍고 자전거사업 진출 활 전량반품 난관 딛고 최고제품 생산 야마하 이어 당대 최강 호이트도 꺾어 활 핵심 ‘카본기술’로 MTB 개발 성공 경기력 향상 ‘韓대표 스포츠 브랜드’ 꿈 세계 양궁역사의 ‘전설’에서 카본 소재 스포츠용품업계의 ‘거물’로 변신한 사나이. 박경래(59) ‘(주)윈엔윈’ 대표의 인생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한국 최초 국가대표 양궁 선수, 한국 양궁을 세계 랭킹 1위에 올려놓은 지도자, 세계 활 제조업계 점유율 1위 기업의 대표. 그의 삶은 끊임없는 반전과 도전으로 점철돼 있고, 지금도 그의 삶은 계속 진화를 꿈꾸고 있어서다. 박 대표는 최근에 세계 1위 브랜드인 윈엔윈 양궁 활의 핵심 기술인 나노 카본 소재를 자전거에 도입해 카본 자전거 산업에 새로운 도전장을 냈다. 지난 10일 용인 기흥에 위치한 위아위스 기흥파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활동, 그리고 활 사업에서 각각 나름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면서 “그 목표들을 하나하나 이뤄냈더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경남 진주가 고향이지만 박 대표는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동아고등학교 재학시절 취미로 시작한 양궁이 박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해양대학을 나와 마도로스를 꿈꾸던 그가 고3 때 양궁 종합선수권대회에서 한국신기록 6개를 세우며 대회 전관왕에 오른 것이다. 이전까지 신통찮았던 기록이, 그 대회에서 기적처럼 솟구쳐 오른 이유를 그는 지금도 모른다. 그저 운명이랄 수밖에. 그렇게 1975년 초대 양궁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그는 “국가대표에 발탁됐을 때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예정돼 있던 국제대회 출전이 자주 취소되면서 세계 무대에서 뜻을 펼칠 수 없었다. 결국 박 대표는 국가대표의 꿈을 접고 지도자로서 성공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선수로서 실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그는 한국 신기록을 27차례나 갱신했다. 그의 개인 최다 신기록 경신 횟수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신화다. 그가 지도자 준비를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시절 무렵. 박 대표는 “목표가 좌절되고 정체성 혼란을 겪으면서 남들보다 일찍 지도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당시엔 양궁에 관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시점이었을 뿐더러 양궁에 관한 전문 기술은 일본 잡지를 통해 습득해야 했다. “지도자 공부를 할 때 커리큘럼을 스스로 만들어 공부해야 했어요. 또 일본 잡지를 읽기 위해 2학년 1학기에 일본어 공부만 하루에 15∼16시간을 할 정도로 양궁 공부에 매달렸죠.” 6개월 정도가 지나자 일본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양궁 이론을 온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1년도 토지공사 실업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박 대표는 2년 후 국가 대표팀 코치로 발탁돼 남자 대표팀을 맡으면서 세계 양궁계의 기린아로 부상한다. 한국은 1985년 세계 선수권에서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도 단체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당시 최강이었던 미국이 24회 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었고 객관적인 전력에선 일본보다도 약했던 전력을 다듬어 우승을 일구었으니 ‘박경래’ 이름 석자는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 남자 양궁은 1988년 올림픽에서 또 한번 미국을 꺾으면서 명실공히 세계 정상팀으로 발돋움했다. 박 대표는 올림픽이 끝난 후 초대 남녀 대표팀 상임 총감독에 올라 1991년 세계선수권에선 처음으로 남녀 동반 우승도 이끌었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그는 국내외 양궁역사에 ‘초대’와 ‘최초’의 수식어를 잇달아 새기면서 승승장구했다. 여기서 멈췄으면 박경래의 전설은 빛을 바랬을 것이다. 그는 한국 엘리트 양궁의 중심에서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스스로 마감하고 1993년 사업에 뛰어든다. “대학 시절 내가 생각했던 지도자로서의 목표는 ‘세계적인 코치’였고, 세계적인 코치는 ‘세계 양궁인들에게 강연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1991년 미국 양궁협회의 초청으로 400∼500명의 지도자들에게 강연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드디어 세계적인 지도자의 꿈을 이루자 목표 상실의 허무함이 나 스스로를 다른 곳으로 이끈 것 같다”는 것이 인생 전환의 이유였다. 최고의 자리를 내던질 수 있는 도전정신이 그의 안주를 방해한 셈이다. 그렇게 시작한 기업이 양궁 활 제조업체인 윈엔윈 주식회사다. 하지만 역시 사업은 낯선 만큼 만만한 영역이 아니었다. 박 대표는 사업 초기에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는 “제품을 만들기까지 2년을 준비했고 1995년 6월 첫 수출을 이뤄냈지만 활에 문제점이 발견돼 전량 반품되는 상황이 발생해 투자금을 날리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없던 지도자 커리큘럼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대성했던 그였다. 포기하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원재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설계부터 시작해서 다시 생산 라인을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활이 ‘윈액트’였다. 이 활은 안정성과 내구성에서 당시 세계 최고의 경기용 제품이었던 호이트와 야마하 보다 품질에서 월등했다. 1997년도에 유럽 시장에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했고 1999년 즈음엔 안성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때마침 이은경, 홍성철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윈액트를 가지고 각종 대회에서 우승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윤미진이 윈액트로 금메달을 따내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2001년 일본 시장에 들어간 윈엔윈은 이듬해 활 생산을 중단한 야마하 공장을 인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주변에서 시작해 본류를 장악했으니, 박 대표는 그 때의 통쾌함을 잊을 수 없다. 윈엔윈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계 최고의 활을 만들겠다’는 박 대표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제조 방식을 개발해냈고 결국 그 노력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최고 품질의 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박 대표는 “만약 처음에 일본과 미국 기술을 차용해 공장 설비를 갖췄다면 영원히 삼류에 머물렀을 것”이라며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양궁 사업을 하면서 당대 최고 활이었던 호이트를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마침내 2011년 세계 선수권 참가 선수 중 53%가 윈엔윈 제품을 사용하면서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는 “목표를 이루고 난 뒤 활의 핵심 기술인 카본 소재 기술로 자전거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2011년부터 MTB 자전거 개발을 시작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위아위스’라는 자전거 브랜드를 만들고 카본 자전거 개발에 매달렸다. 그로인해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카본 소재로 된 전통적 스타일의 자전거를 개발해내는가 하면, 프레임 630g의 초경량 자전거를 생산해내기도 했다. 위아위스는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유로 바이크쇼에서 유럽인들의 호평을 받으며 유럽 시장 진출을 준비중이며 올해말에는 일본 바이크쇼에도 참가한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국내에서 가격이 맞지 않아 자전거를 만들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한국에도 자전거 팬텀 문화가 형성됐고 한국인 만큼 자국산에 대한 애착이 높은 민족은 없다”며 성공 가능성을 자신했다. 실제로 올해 위아위스는 1천200대 판매를 목표로 삼았는데 벌써 판매가 완료된 상태다. 내년에는 2천500대가 목표라는 그는 “대학팀과 실업팀 선수들에게도 우리 자전거를 보급해 알리고 있다”면서 “선수들이 위아위스 자전거로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맞는 자전거를 제공한다면 지금보다도 더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최종 목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 포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 전문인으로 갖고 있는 노하우와 카본 기술을 바탕으로 국제적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서 “차세대에서라도 이것이 가능하게끔 내 대에서 그 토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꿈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와의 인터뷰를 마쳤다. ■(주)윈엔윈 박경래 대표는? ▲ 1956년 출생 ▲ 1975년 부산 동아고 졸업 ▲ 1979년 동아대 졸업 ▲ 1990년 중앙대학원 졸업 ▲ 1975년 국가대표 발탁 ▲ 1983년 국가대표 코치 ▲ 1985년 세계선수권 남자팀 단체전 금메달 ▲ 1986년 아시안게임 남자팀 단체전 금메달 ▲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팀 단체전 금메달 ▲ 1991년 국가대표 총감독 ▲ 1991년 세계선수권 남녀 동반 우승 ▲ 1993년 윈엔윈 설립 ▲ 2009년 나노카본 개발 성공 ▲ 2014년 위아위스 브랜드 론칭 /대담=윤인수 부국장·정리=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용인 기흥구에 위치한 위아위스 기흥파크에서 카본 소재 스포츠용품업계의 ‘거물’로 변신한 사나이 박경래(59)씨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09-08 윤인수

[인터뷰… 그] 화려하게 정계 재기한 안상수 국회의원

■여러 선거 나선 이유는 / 국회의원 할 일 많지 않나?많은 이들에 희생하라는 임무 주어졌다고 생각강화·검단, 다른 곳보다 먼저 개발하는 게 중요98번 국지도 예산 확보… 마전 도서관도 지을것■시장시절 엇갈리는 공과 / 부채문제 너무 낙관적인데?재임기간 市 공시지가, 62조서 209조로 높아져인천 채무비율, 부산·대구처럼 차츰 떨어질 것공항·항만 인프라 우수… 미래 ‘자신감’ 가져야천시지리인화 (天時地利人和)하늘이 내린 때보다도, 어떠한 지리적 이점보다도, 민심(民心)이 우선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그는 인터뷰가 한창인 중에 대뜸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 맹자(孟子)의 얘기를 꺼냈다. 그동안 정치적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는, 하늘이 내린 때보다도, 어떠한 지리적 이점보다도, 민심(民心)이 우선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국회의원 안상수. 2010년 인천시장 3선 도전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자 모두들 그의 정치생명은 끝이 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사람들 앞에 다시 나섰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당내 경선에 뛰어들어 박근혜 후보와 맞붙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죽지 않았다’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게 성과라면 성과였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인천시장 선거전에 뛰어들어 또 예선 탈락했다. 그렇게 그는 다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갔다. 그런 그가 2015년 4월, 인천 서구강화군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나서 누구보다 화려하게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인천시민을 넘어 국민들이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한다. 한여름 폭염과 소낙비가 서로 교차하던 지난 13일 국회의원회관 341호실에서 마주했다. 일을 향한 의욕이 넘쳤다. ‘업무 열정’을 놓고 볼 때 10여 년 전 인천광역시장 집무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하면 더 하지 싶었다.-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의정활동을 하는지 궁금해 한다.“먼저 유권자와 국민들께 감사의 말부터 해야겠다. (4월 29일) 재선에 나서면서 걱정이 많았다. 여러 분석가들은 여당(새누리당)이 인천 서구강화군을에서 패할 것이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인천 도심에 많이 나와서 살고 있는 강화출신 사람들이 크게 도와줬다. ‘안상수는 능력 있다’는 말이 폭탄이 되어 돌아다녔다. 그 외부 지원의 덕이 컸다고 본다. 그렇게 다시 배지를 달았는데, 인천이나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점이 내 의정활동의 기준이 되고 있다.”-인천광역시장을 두 번이나 했으면 되었지 선거 때마다 얼굴을 보인다는 비난 섞인 말도 있었다. 굳이 여러 선거에 나선 이유가 있나.“참 선거를 많이도 치렀다. 국회의원 4번 나와 2번 떨어지고 2번 되었다. 인천광역시장 선거에도 4번 나왔다가 2번 떨어지고 2번 됐다. 당내 경선도 4번이나 치러 2번 되고 2번 떨어졌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고생도 참 많았다. 지금은 ‘내가 왜 이런 임무를 졌을까’하고 생각하곤 한다.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라는 명령으로 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다.”-국회의원으로서 할 일도 참 많이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많은 이들에게 내 재능을 돌려줘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강화와 검단은 인천 면적의 절반이나 된다. 이제는 인천 어느 곳보다 이들 지역을 사람들이 살기 좋도록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해마다 가뭄피해가 극심한 강화도에 한강물을 끌어들이는 사업은 이제 합의가 다 되었다. 기초조사가 곧 진행될 것이다. 강화도는 우리 한반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기와 맥을 가진 곳이다. 다시 그 강화를 부흥시키는 것이 꿈이다. 영종과 강화를 잇는 연륙교를 건설하고 강화와 북한 개풍 쪽을 연결하는 다리 건설도 중요한 문제이다. 강화가 인천국제공항과 북한 쪽이 연결되면 나라 전체의 중심지역이 될 것이다. 검단신도시 문제도 풀어낼 것이다. 우선 경제자유구역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다. 국내 우수 대학과 병원과 같은 앵커시설도 유치할 것이다. 김포 송포에서 서구 금곡을 잇는 98번 국지도를 내년에 조기착공할 수 있도록 예산확보에 나설 것이다. 마전에 시립도서관도 지을 것이다.”-인천시장 8년에 대한 공과가 많이 엇갈린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2002년에서 2010년 사이에 정부 통계로 인천의 공시지가가 62조에서 209조로 높아졌다. 지금 300만 명 시대의 토대도 그때 쌓았다. 물론 부동산 호경기의 끝물을 탄 사람도 있기는 한데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내가 3선에 성공했다면 해결할 수 있었는데 떨어지는 바람에 그러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인천의 부채 문제를 얘기하면서 그 부분을 너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소극적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부산시가 2002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기 직전인 2001년 채무비율이 54.7%였다. 대구시는 200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열기 전인 2002년 채무비율이 무려 74.3%에 달했다. 지금 이들 도시의 채무비율은 어떤가. 2014년 부산은 8.2%였고, 대구는 28.0%였다. 인천도 채무비율이 당연히 떨어질 것이다. 그 대신 도시 인프라는 인천에 남게 된다.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해 각종 도시 인프라를 건설한 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안상수가 뭘 잘 못했다는 말이냐. 또, 내가 여러 가지로 부덕하고 잘못해 3선에 떨어졌는데, 그 때문에 151층 인천타워 건설이 무산된 점이 제일 아쉽다.”-인천의 부채 문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게 아닌가.“빚이 많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빚이라는 것은 어떻게 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인천의 예산이 8조 원이나 되지 않은가. 인천은 공항과 항만이라는 세계적 인프라를 갖고 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다. 재정난 얘기를 자꾸 하면서 위축될 필요가 없다. 시장(市場)을 믿어야 한다. 시장은 정확하다. 그 시장이 원하는 도시인 인천은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안상수 의원은?▲ 1946년 충남 태안 출생▲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제 3~4대 인천광역시장(2002.7~2010.6)▲ 제 15대(인천 계양강화갑)·제 19대 국회의원(인천 서구강화군을)▲ 현 새누리당 인천시당 위원장▲ 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예결특위 위원/대담=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schild@kyeongin.com / 사진=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안상수 국회의원이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시 배지를 달았는데, 인천이나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2015-08-18 정진오

[인터뷰… 그] 새누리당 원유철·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총선 전략·道 연정에 대한 생각은?추락 중인 당, 상승기류 탈 계기가 필요민생 정책·경제민주화 시즌2 유일 해법道 연정, 걱정 했던 것보다 잘해서 안심하나의 테스트라 생각… 좀 더 지켜봐야■총선 각오·카운터파트 소감은?첫째 인물·둘째 정책… 민생 경제 초점수도권-지방 상생할 수 있는 공약 준비李원내대표 만나 행운… 여야 떠나 합심수도권 규제완화등 협력하고 뜻 모을 것‘유종터널(원유철 유와 이종걸 종을 따서 만든 신조어)을 만들겠다’. ‘경기도가 우리 정치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 ‘지역 정치에 의존하지 않는 허리 역할을 하겠다.’ 지난달 31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경인일보 ‘인터뷰 그….’에서 새누리당 원유철(평택갑)·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안양만안 갑)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경기도 터줏대감들이 선출직 여야 사상 첫 원내대표로 선출된 것은 지역 정치권으로도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인터뷰 시작부터 “두 사람이 손잡고 경기도의 정치 르네상스를 일구겠다”는 등의 희망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서울취재본부 정의종 정치팀장과 김순기 부장이 대담했다.▲경기도 출신 여야 원내대표를 한자리에 모시고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다. 두 분도 감회가 새로울 거 같은데 소감은. 원유철 원내대표(이하 원) = 대한민국의 중심인 경기도가 정치 르네상스를 열어나가겠다. 경기도 르네상스 시대를 펼쳐 나가겠다.이종걸 원내대표(이하 이) = 그럼 저는 원유철 원내대표에 이어 르네상스 시즌 2를 하겠다.▲최근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극복 및 내수 진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예전과 달리 속전속결로 끝냈는데 어떤 비결이 있는가.이 = 원 대표께서 무조건 해 달라고 해 해드렸다.(원 대표 웃음)원 = 이 대표께서 메르스 사태 극복과 서민 생활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편성한 추경인 만큼 빨리 처리하자고 해 조속히 처리하게 됐다.이 = 이번에 원 대표의 지역인 평택에 메르스 피해가 컸지 않았나. 오히려 원 대표가 이번 추경안이 평택지원 예산이 될 거 같아 걱정하시며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제가 원 대표 지역구 도와 드리기 위해 무지 애를 썼다. 내가 평택에 가면 명예시민이 될 거다.(웃음)원 =많이 도와주셨다. 감사드린다.이 = 다음번에 원 대표가 안양에 큰 선물을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원 = 말씀만 하시면 열심히 하겠다.▲사실 경인지역 출신으로 지난번 새누리당 황우여(인천 연수)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수원 영통) 원내대표가 ‘카운터파트’였을 때 서로 협조(?)가 잘 됐는데.이 = 두 분은 장로셨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로 제가 다니던 안양 중앙성당의 양태영 주임신부님이 최근 원 대표님 지역인 평택 송탄성당으로 전근을 가셨다.원 = 얼마 전 양 신부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는데 이 대표님이 안 도와주시면 신부님한테 이를 거라고 얘기했더니 웃으시더라.(웃음)▲두 분도 대화가 잘 풀릴 거 같은데 서로 상대 당에서 본받을 게 있다면 무엇인가.이 = 새누리당이 플래카드를 너무 잘 붙인다.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는 플래카드다. 제목이나 내용이나 맵시가 공포를 느낄 정도다. 의원들이 내부에서 갈등이 있어도 굉장히 안정돼 있다. 단단한 지지기반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지지기반은 굉장히 변화가 많다. 조금만 잘못하면 그냥 채찍질하고, 또 잘하면 확 도와주시고. 우리 하는 거 보면서 지지해 주는 지지기반인데 새누리당은 변함없이 지지해 준다. 우리가 볼 때 부럽다.원 = 새정치연합은 모든 사안에 대해 치열함이 있고 진정성이 묻어 나온다. 사안에 대해 집중하고 치열하게 토론해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모습이 참 좋다. 최근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게 당 지도부의 안보 행보다. 안보는 새누리당의 전유물인데 요새 문재인 대표께서 직접 군에 가서 철모를 쓰고 유격 훈련하는 걸 보면서 상당히 위협을 느끼고 있다.▲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두 분께서는 무엇보다 내년 4월 총선 준비를 잘해야 하는데 전략과 전망이 있다면.원 =1년도 안 남았다. 총선 승리를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인물이고, 둘째는 정책이다. 새누리당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고 의총에서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합의한 바 있는데 좋은 후보를 내는 것과 좋은 정책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 희망을 드리겠다. 특히 민생 경제를 살리고, 가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릴 수 있는 정책으로 승부를 걸겠다. 수도권 승리가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만큼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할 수 있는 맞춤형 공약을 낼 것이다.이 = 정권 3년 차에 치러지는 선거라 야당에 불리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일 것이다. 저는 조금 다르게 본다. 정권심판 선거를 논하려면 우선 우리 당이 유권자들 사이에서 대안정당, 수권정당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현재 우리 당은 전통적인 지지세력들 조차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유리한 국면을 살려 총선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추락 중인 당이 상승기류를 탈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저는 우리 당이 상승기류를 타는 유일한 방법이 민생의 주름을 펴줄 정책방안, ‘경제민주화 시즌2’의 전면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풀어주는 정책, 저성장 기조의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정책을 현실화한다면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원내대표로 중앙에서 뛰다 보면 20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 관리가 소홀할 수 있는데 20대 총선에 임하는 각오는.원 = 지역 주민께서는 평택 출신의 국회의원이 집권당 원내대표가 된 것을 크게 기뻐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원내대표로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그것이 결실을 만들어 낸다면 평택 시민들께서 누구보다도 좋아해 주실 거라 믿고 있다.이 =주민 여러분 앞에 서면 겸손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제 역할이란 게 무슨 대단한 권력인 것 같지만, 결국 주민 여러분들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난공불락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수도 있다. 지역구 활동에는 정답도 없고 충분한 정도라는 것도 없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치고 하늘과 같은 주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경기도 터줏대감들이 여야 원내대표로 ‘카운터파트’가 된 것은 사상 처음인데 어떤 각오를 가지고 있는가.원 = 이번 총선을 계기로 헌재의 위헌판결 이후 수도권 의석수가 처음으로 전체 의석수 가운데 절반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수도권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 대표님과 같은 훌륭한 파트너를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여야를 떠나 수도권규제 완화와 지방의 상생발전 등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서로 협력하고, 뜻을 모아 가겠다.이 =원 대표가 워낙 정치를 오래 해 온 분이라 의회의 역할, 당·청관계, 여야관계에서 합리적인 면모를 보여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경기도정의 최대 화두는 ‘연정’인데 중앙 정치권에서 연정을 평가한다면.이 = 연정이라 한다면 기본적으로 다당제 체제에서 이뤄지는 연정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한 당이 과반수 정당 못 만드니까 그런 연정이 일반적이고, 양당제 연정은 자연스럽지 않다. (경기도) 메이저 정당끼리의 연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연정이어서 조금 부자연스럽다. 그런데 처음에 걱정했던 것 보다는 연정의 기법이나 방식을 많이 만들지 못했던 우리나라 형편에 비춰 보면 상당히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된다. 경기도에서는 도지사와 도의원 간의 불균형, 집행과 의결기구 사이의 새로운 연정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어떻든 간에 진성 연정은 다당제에서의 연정이 훨씬 순도가 높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 연정은 좀 더 지켜보는 게 좋겠다. 하나의 테스트라는 생각이 든다.원 = 국민들이 정치권에 실망하는 최대 이유 중 하나가 싸우는 모습이다. 싸우는 국회·정치에 신물이 나 있다. 일하는 국회, 일하는 정치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경기도 연정은 새로운 시도인데, 여야가 같이 힘을 합쳐서 도정을 공동으로 이끌 수밖에 없으므로 충분히 상대 정당에 대해 이해도 하게 되고 타협도 하게 돼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는 다른 거니까 대비해서 비교해 말씀드리기는 어렵다.▲현재 4선 중진인데 다음 정치 목표는 무엇인가.원 = “소 여물을 먹여 덩치를 키운다”는 말처럼 평택시민을 비롯한 경기도민과 국민 여러분들께서 꾸준히 여물을 먹여주셔서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될 수 있었다. 당장 개인적인 목표보다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주어진 소명을 다 할 생각이다.이 =산을 오르면서 다음 산을 생각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원내대표라는 자리가 다음 정치를 생각할 정도로 대단한 자리도 아니다. 무엇보다 원내대표로서 해야 할 일, 만안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싶다. 다음에도 제가 서 있는 자리는 지금과 다름없이 만안지역 주민들 옆일 것이다./대담=정의종 서울취재본부 정치팀장·김순기 부장 jej@kyeongin.com / 사진=하태황 기자 hath@kyeongin.com▲ 원유철 새누리당(사진 오른쪽),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경기도가 정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한 목소리로 뜻을 밝히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서울취재본부 정의종 정치팀장과 김순기 부장이 새누리당 원유철,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대담을 하고 있다.

2015-08-04 정의종·김순기

[인터뷰… 그] ‘고양시로 2군 구장 이전’ NC 다이노스 이태일 대표

■포항에서 고양으로 연고지 옮긴 이유는삼성 라이온즈 연고지 영향 일정조율 어려움고양시의 원더스 구장활용 제안 받아들이기로1군과 거리 멀지만 ‘고양다이노스’로 새도전■2군 리그, 어떻게 운영할것인가1군 무대위한 훈련과정 아닌 프로라는 인식 우선마스코트 고양이로 변신… 시민과 공감대 고민티켓 인증 이벤트·야구특강등 팬서비스 펼칠것“고양 시민에게 우리 동네 야구단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나아가 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지난해 11월 프로야구 NC 다이노스는 고양시와 고양 야구장 시설 임차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독립구단이었던 고양 원더스 해체 이후 무용지물이 된 구장시설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하던 고양시의 제안을 NC가 받아들이면서 진행된 것이다. NC도 고양시의 이런 제안을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NC 2군은 그동안 포항구장에서 퓨처스리그를 운영해 왔지만 모양새는 썩 좋지 못했다. 경북과 포항시의 배려로 리그를 운영했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 영향을 받아 경기나 훈련 일정을 잡는데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창원이 연고지인 1군과 거리가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지만 NC는 2군을 더욱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육성하기 위해 고양시를 선택했다. NC는 3억5천여만원의 시설 투자를 통해 고양 야구장을 새롭게 단장했고, LG 트윈스에서 1군 감독을 역임했던 박종훈 감독을 본부장으로 선임해 마산과는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은 NC 다이노스의 이태일 대표다.이태일 대표. 그는 훈훈한 외모에 비해 카리스마가 넘쳐난다. 수원 kt wiz가 1군 무대에 오르기 전인 지난해까지 NC는 늘 막내구단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첫 무대를 훌륭히 치러낸 NC는 비장한 각오로 올 시즌을 맞았고, 현재까지 10개 구단 중 3위를 달리고 있다. 1군 진출 2년 만의 비약적인 발전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NC 다이노스는 지난 2011년 창단돼 팬들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팬들이 보내주신 성원과 사랑에 감사드린다. 우리가 지금의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고 운을 뗐다. 이 대표는 야구 기자 출신으로 그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중앙일보 체육부 기자 시절 인사이드 피치라는 칼럼을 연재해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칼럼에서 이 대표는 메이저리그와 프로야구부터 아마야구까지 다양한 야구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네이버 스포츠실 실장을 거쳐 NC 다이노스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이 대표는 NC 다이노스가 창단 3년 만에 KBO리그 우승 후보 팀으로 만드는데 적잖은 공헌을 했다.이제 이 대표는 프로야구계에 ‘고양 다이노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신선한 도전을 이어간다. 그는 고양시로 2군 구장을 이전한 것에 대해 “고양 원더스의 구단 운영이 종료되면서 고양시에서 문의가 왔었다. 시장님도 직접 만나뵙고 얘기를 들었는데 퓨처스리그 운영 방안이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이어 “1군 연고지가 있는 마산과 고양은 물리적으로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지만, 고양시가 새로운 거점이 될 수 있고 전국적인 기반을 갖출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넥센 2군이 있는 화성 히어로즈도 우리와 비슷하다. 화성 히어로즈는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동반자적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소개했다.이 대표가 생각한 퓨처스리그 운영 방안은 뭘까. 그는 “2군 선수들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퓨처스리그 선수들도 프로선수다. 퓨처스리그도 이제는 팬을 기반한 육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대표는 “선수들이 1군과 2군을 느낄 때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가 되도록 하고 싶었다”며 “야구 선수로서 직업의식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프로야구 2군은 1군 무대에 오르기 위해 선수들이 훈련하고 몸을 만드는 ‘과정’ 정도로만 생각돼 왔다. 1군에 비해 2군 선수들은 늘 소외받고 있었다. 이 것은 곧 팬들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구조로 흘렀다.이 대표는 고양 다이노스를 통해 이러한 구조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를 구상했다. 그는 “‘우리동네 야구단’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프로야구의 주인은 바로 팬이다. 2군 선수들도 팬들의 관심 속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고 팬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NC는 2015 시즌 퓨처스리그 경기를 고양에서 치르면서 고양 팬들을 야구장으로 불러모으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NC 다이노스는 2군 명칭을 ‘고양 다이노스’로 바꾸고 2군 마스코트도 1군 마스코트인 공룡에서 고양시의 ‘고양’을 딴 ‘고양이’로 바꿨다.이밖에도 고양 다이노스 티켓 인증 이벤트, 아빠와 함께 하는 캐치볼·야구장 투어, 아빠·엄마와 함께하는 고양 다이노스 어린이 야구 특강 등으로 고양 다이노스가 고양 시민들과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가고 있다.이 대표는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 및 매체들과의 스킨십을 통해 2군 구장에서도 재밌는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팬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전했다.그는 유소년 야구와 여자 야구단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6월20일 마산 구장에선 육종암(팔다리 뼈, 근육 등에 생기는 악성 종양)을 이겨낸 창원 사파초 위주빈 군의 시구가 있었다. 야구 선수가 꿈인 위 군은 2년 전 육종암(오른쪽 엄지손가락 끝) 판정을 받았다. 위 군이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고된 항암 치료를 견뎌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구단에선 위 군을 시구자로 초청했다. 또 NC는 26일엔 LA 한인유소년 야구팀을 마산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LA 한인유소년 팀은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U-12 전국유소년야구대회 참가를 위해 입국했다. NC는 올해 LA 전지 훈련에서 이들과 만난 인연이 있었다. 선수단은 김경문 감독과 테임즈 등을 경기 전에 만났고 다이노스 야구모자와 선수용 배팅장갑 등 용품을 전달받았다. 이날 시구는 선수단 주장 데릭 유, 시타는 오 단장이 맡았다. 지난해엔 W 다이노스 여자야구단이 여자 야구 최초로 프로구단인 NC 다이노스의 후원을 받으며 창단하기도 했다.이 대표가 지향하는 야구는 ‘원베이스볼’이다. 그는 유소년과 아마야구, 프로야구와 사회인, 여성 야구까지 각 영역의 야구가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대표는 유소년 야구도 ‘즐기는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유소년 야구도 그 분야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는 야구가 되어야 한다”면서 “승부에 대한 긴장감은 필요하지만 ‘힘든 야구’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고양 다이노스의 경기는 다른 2군 경기들과는 다른 우리 동네 야구단의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구단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많은 팬들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고양 다이노스의 분위기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태일 대표는?▲ 1966년 출생▲ 1990~2006년 야구전문지, 중앙일간지 체육부 기자 ▲ 2006년 말 네이버 스포츠실장 ▲ 2011년 6월∼현재 NC 다이노스 대표이사/글=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사진=이원근기자·NC 다이노스▲ NC다이노스의 2군 팀인 고양 다이노스가 고양시에서 올 시즌 새로운 출발을 했다. NC 다이노스 이태일 대표는 “고양 다이노스가 ‘우리 동네 야구단’으로서 고양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15-07-28 이원근

[인터뷰… 그] ‘제2연평해전 전사’ 故 한상국 상사 미망인 김한나씨

교전 당시 중사 진급 불과 이틀 앞뒀던 남편 13년만에야 상사로 추서“현충원 갈때마다 늘 미안했는데 이제야 면이 서… 영화도 한몫한듯”‘화병’으로 미국행 녹록치 않은 생활중 2013년 광주시 공무원 ‘새삶’전사자 ‘공무상 순직’ 처리 말안돼 맘같아선 거리서명이라도 받고파“아! 그분이시죠… 몰라뵈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41)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들어선 자그마한 커피숍, 김씨를 알아본 20대 종업원이 수줍게 말을 건넸다. 영화 ‘연평해전’이 관객 500만명을 넘어서며 전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전사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광주시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김씨는 이런 영향으로 최근 자신에게도 이목이 쏠리자 부담스러움을 표하면서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솔직히 제가 인터뷰할 감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영화 연평해전에 대한 관심도 있고 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 또 이렇게 관심을 받을지 모르니 6용사의 명예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지난 2013년 광주시 9급 공무원으로 채용돼 현재 광주 곤지암도서관에서 근무 중인 김한나씨는 수줍던 첫 모습과 달리 인터뷰가 시작되자 마음에 담은 얘기를 빗장 풀듯 꺼내 갔다.단연 첫 화제는 지난 10일 해군을 통해 공식발표된 고 한상국 중사의 계급을 상사로 높이는 추서 진급으로 시작됐다.“일이 발생하고 당시부터 계속 주장해 왔던 사안이지만 13년이란 시간이 걸리게 될 줄은 몰랐네요. 하지만 이번에 추서 진급이 이뤄져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현충원에 갈 때마다 늘 미안했는데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이제야 면이 서는 것 같습니다”라는 김씨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던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사실 이번 결정은 해군본부 전공사망심사위원회가 한상국 상사의 전사일을 제2연평해전 당일인 2002년 6월 29일에서 시신을 인양한 같은 해 8월 9일로 변경한 데 따른 것이다. 연평해전 당시 침몰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의 조타장이었던 한 상사는 고속정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아 전사자 중 가장 늦게 발견됐으며 40일 만에 인양됐다.당시 국방부는 군 인사법 시행령에 따라 고인의 계급을 일계급 특진 추서했는데 그를 하사로 판단, 중사로 추서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한상국 상사가 해전 당시 중사 진급을 불과 이틀 앞둔 진급 예정자였던 점을 들어 그의 상사 진급 추서를 요구해왔다.“해군에서는 진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중사 진. 그래서 남편은 진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당시 중사 옷을 입었고 다 중사로 바꿔놓은 상태였지요. 때문에 당시에도 상사로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지적들도 많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사실 영화 연평해전이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으며 그날의 의미를 부각해준 것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걸 잘 표현해주셔서 감사했지요.”얘기는 자연스레 영화 ‘연평해전’으로 넘어갔다. 지난 19일 기준으로 영화 ‘연평해전’은 개봉(6월 24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관객 558만여명을 모으며, 올해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영화는 시사회를 포함해 2번 봤습니다. 시사회 날은 너무 울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고, 얼마 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사실감 있게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남편의 역할을 맡은 배우 진구씨가 깜짝 놀랄 정도로 남편을 표현해냈더라고요. 진짜 살아 돌아온 것 같이 느껴졌어요”라는 김씨는 무뚝뚝하지만, 속 정이 깊은 남편을 너무 잘 표현했다며 연신 배우의 연기에 감사함을 표했다.실제 배우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 얘기도 곁들였다.“실제로도 남편은 무뚝뚝하지만, 속 정이 깊어서 저를 잘 챙겨줬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연애시절 얘기를 좀 더 해달라고 했다. “1년을 만났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해군이다 보니 배를 타는 시간이 많아 만나기가 힘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만남은 열 번 남짓이고 주로 전화나 이메일 등을 하며 마음을 주고받았어요”라며 추억에 잠기던 그는 갑자기 “정말 죄송하지만 그 얘기는 그만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다 지난 얘기고 아직 옛 얘기를 할 때마다 그가 많이 생각나 힘드네요”라고 말을 줄였다.사실 김씨는 연평해전이 있고 나서 3년 후인 2005년 한국을 잠시 떠나 미국으로 갔다. 그런데 당시 미국으로 출국하는 그녀를 한 언론사에서 취재를 했는데 허심탄회하게 얘기한 것이 와전되며 나라를 버리고 간 것으로 비쳐져 수모도 많이 당했다고 한다.“당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죠. 그래서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간 겁니다. 뉴욕에서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했고, 영어가 안 되다 보니 더 힘들었지요. 낯선 곳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느낀 바도 많았습니다”는 그는 떠난 지 3년 되던 해인 2008년 귀국하게 된다.“보통 고향을 떠나 3, 5년에 향수병에 걸린다고 하잖아요. 그때가 딱 그랬습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도 보고 싶었고요.” 그녀가 귀국한 2008년은 이명박 정부가 ‘서해교전’을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한 해이기도 했다.하지만 돌아와 한국에서의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대학도 졸업(2011년)하고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전쟁기념관에서 근무하며 생활했지만 건강이 안 좋아져 담낭제거 등 각종 치료를 받았다. 일종의 ‘화병’ 증세로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자연히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고, 그러던 차에 지난 2013년 광주시 9급 공무원으로 채용되며 새삶을 찾게 됐다.“너무 감사하게도 제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광주시에 시설직 공무원으로 채용됐습니다. 이달 초에는 승진도 하게 돼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의 배려 속에 잘 살아가고 있지만, 이맘때만 되면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라는 그는 요즘 부쩍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한다.“솔직히 잊혀지는게 두려워요. 제2연평해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있을 때 남편을 비롯해 조국을 위해 산화한 6용사의 명예회복(전사자 처리)이 이뤄졌으면 하니까요”라며 조심스레 화두를 꺼내 든 그는 “아마 죽을 때까지 그날을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남편을 비롯한 6용사들이 월드컵 결승전을 하루 앞둔 2002년 6월 29일, 북측의 기습도발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음에도 현충원에 최초 안장 시 묘비명은 ‘연평도 근해에서 사망’으로 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이후에야 ‘연평도 근해에서 전사’로 수정됐지요”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하지만 여전히 전사자가 아니라 ‘공무상 순직자’로 돼 있고 명백히 북과의 전투 중에 ‘전사’한 용사들을 ‘공무상 순직’ 처리한 것은 역사적 진실과 전사자들의 명예 회복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마음 같아선 거리로 나서 6용사의 명예회복을 위한 거리서명이라도 받고 싶어요. 하지만 공무원 신분으로 쉽지 않은 일이네요. 사실 제 남편을 비롯해 전사자들은 끝까지 자신의 소임을 다했음에도 마땅히 받아야 할 전사자로서의 명예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용사들에 대한 예의와도 같은 것 아닐까요”라고 반문한다.이와 관련해선 현재 국회에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2연평해전 전투수행자에 대한 명예선양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과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군인연금법 개정안’이 상정됐으나 국방부와 이견 속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포털 다음 아고라에서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명예를 회복합시다’라는 서명운동이 진행되며 국민적 관심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제가 인터뷰하는 이유이자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제2연평해전과 관련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6용사와 18명의 유공자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 우리 역사이고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에게 그에 맞는 자리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글=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경기도 광주 곤지암 커피숍에서 故 한상국 상사 아내 김한나씨가 경인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경기도 광주 곤지암 커피숍에서 故 한상국 상사 아내 김한나씨가 경인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5-07-21 이윤희

[인터뷰… 그] 정주국제학교는

4600여명 한·중 학생 함께 공부‘1인·1예능·1체육’ 동아리 활발중국 정저우시는 화북지구 남부에 있는 허난성의 성도로서 경제·문화·교육의 중심지다. 이곳에 지난 2008년 9월 둥지를 튼 정주국제학교는 현재 4천500명 가량의 중국 학생들과 130명의 한국 유학생, 10여명의 그 외 국적 학생들이 한 울타리에서 공부하고 있다.개교한 지는 7년이 채 안 됐지만 중국에서 손꼽히는 대학 입학생들을 여럿 배출한 학교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 2010년 베이징대와 푸단대에 각각 1명씩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는 현재까지 칭화대 4명·인민대 11명 등 36명이 중국 명문 대학에 합격한 상태다. 지난해까지 이들 대학에 입학한 76명은 총 동문회를 꾸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미션스쿨로서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하게 이 학교에서 수학 중이다. 중국 현지 학교인 정저우시 47중학교와 협력해, 똑같은 학력을 인정받고 있다. 200여명의 학생들과 50여명의 한국·중국 교직원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학생들은 오전 7시 30분에 다 같이 아침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 오후 9시30분께 야간 자율학습을 끝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정규 교육과정 외에도, 1인 1예능·1체육을 원칙으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게 특징이다.학생들과 교직원이 상의해 학교에서 지켜야 할 여러 규칙들을 자율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행사하는 일과 음주·흡연 등을 금지하는 것이 그 예다. 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주중에는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중국 정주국제학교는 올해만 해도 36명의 명문대 합격자를 배출하는 등 개교 7년만에 중국 일류 대학 진학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은 올해 초 정주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모습. /정주국제학교 제공

2015-07-14 강기정

[인터뷰… 그] 이후진 정주국제학교 이사장의 ‘인생 후반기’

■불혹 삼성맨의 새로운 도전2000년대 중국의 눈부신 성장 ‘자극’새로운 땅서 글로벌 인재육성 결심■수년만에 中 명문대 진학 요람으로아이들 목소리 집중 ‘가족같은 학교’칭화대·인민대 등 11곳 잇따라 합격잘 나가던 샐러리맨은 일찌감치 세계 곳곳을 돌아 다녔다. 낯선 땅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직장 생활 20년 동안 대륙을 넘나드는 게 예사였던 그에게 한창 성장을 거듭하던 중국은 유달리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비행기 탈 일이 손으로 꼽았던 시절, 영어가 낯설고 해외 유학이 드물었던 그 시절, 외국 땅을 밟을 때마다 ‘세계화’를 아주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는 외국 아이들이 번번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2001년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교육의 도시’ 정저우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 동안의 호기심은 ‘새로운 땅에서 글로벌 인재를 키워보자’는 인생의 새로운 목표로 진화했다. 교편을 잡던 아내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 칭화대·베이징대 등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학에 졸업생들을 대거 입학시켜 화제가 된 중국 ‘정주국제학교’ 이후진(50) 이사장의 얘기다. 7월께면 마무리되는 학생들의 대입 준비를 얼추 매듭짓고, 이달 초 한국에 잠시 귀국한 그를 14일 수원 경인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샐러리맨, 낯선 땅에 국제학교를 세우다1987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 계열사에 근무한 그는 지극히 평범한 ‘월급쟁이’ 가장이었다. 해외에 공장을 짓고 영업을 담당할 지점을 내는 일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았다는 게 그나마 다른 점이었다. 지난 달 독일을 갔다면, 다음 달엔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나날들이었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당시 전 세계가 외치던 ‘세계화’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몸소 느꼈다. “정말 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그 중에서도 당시 성장을 거듭하던 중국은 갈 때마다 새로운 인상을 남기는 나라였다”는 이 이사장은 2001년 업무 등을 이유로 정저우에 4개월간 머물렀다. 중국 유학이 활발하지 않았던 때, 낯선 땅에서 방황하던 한국 유학생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이 이사장은 ‘교육열 높은 신도시’ 정저우에서 생각을 곱씹었다.직장 생활 20년, 어느덧 불혹이었다. 인생의 후반기를 제대로 보내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다. 수차례 정저우를 오가는 동안 “중국에 오는 한국 아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새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하고 낯선 땅으로 가야 하는 만큼 선뜻 답을 하지 않던 아내도 설득 끝에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았기에,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아는 아내였다. 중국어라곤 ‘니 하오’밖에 모르던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이 셋도 아빠를 따라 중국으로 향했다. 이 이사장은 “몇 년 동안 고민도 많았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참 쉽지 않았다. 묵묵히 믿고 따라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지금은 ‘명문’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정주국제학교’의 문을 열었다.■ 한국인이 세운 작은 학교, 명문대학 진학의 요람 되기까지 지금은 중국 일류대학 입학생들을 배출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정주국제학교가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언어도 서툴고, 태어난 곳도 다른 한국인이 중국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국제학교, 그것도 미션스쿨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정저우가 베이징이나 상하이처럼 잘 알려진 지역도 아니고, 이 도시에 한국인들도 많지 않다 보니 학생들을 모으는 일은 물론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는 이 이사장은 “그래도 주변의 이야기, 특히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학교를 가족처럼 위해 주는 마음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 같다”고 밝혔다.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듯” 진심을 다해 학교를 운영한 것이 오늘날의 정주국제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이징대와 칭화대에 재학 중인 그의 딸과 아들 역시 정주국제학교 졸업생이다.이 이사장은 “우리 학교에서는 원래 공부에 방해될까봐 이성교제를 금지했었는데, 요새 아이들 사이에서 제고해 달라는 목소리가 많아 고민 중”이라며 “저는 원래 교육전문가는 아니지만, 교육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에게 있다는 게 저만의 소신이고 철학”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교육에 대해 묻자 “정작 주인공인 학생의 목소리는 많이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이달 초 한국에 잠시 귀국한 그의 첫 일정은 중국에서 힘들게 대학 입시를 치른 학생들과의 ‘졸업여행’이었다. 2박3일동안 여수에 다녀왔다고 한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올해에만 현재까지 졸업을 앞둔 36명이 칭화대·인민대 등 11개 명문 대학에 합격한 상태다.■이후진 정주국제학교 이사장은?▲ 1965년 서울 출생▲ 1987~2007년 삼성코닝정밀소재 근무▲ 2008년 9월 중국 정주국제학교 설립▲ 2015년 현재 정주국제학교 이사장, 정주한인회장/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정주국제학교 이후진 이사장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는 노력과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듯 진심을 다해 학교를 운영한 것이 오늘날의 정주국제학교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2015-07-14 강기정

[인터뷰… 그] 눈감기 전 본진 복원이 소원이라는 김기송 전 김포문화원장

일기에 적힌 ‘발굴의 역사’1970년 진혼제서 만난 공무원 한마디에송두리째 달라진 인생… 반평생 ‘헌신’꿈속 서광 비춘 곳 파내자 포구 드러나접근못하다 10년지난후 포대15곳 발굴다음 세대에 남겨주고 싶은 ‘보물’병인·신미양요 외세 막아낸 전방 진지‘국가사적’ 자부심 발굴 중단에 아쉬움교육·재건운동 지도자로 지역발전 앞장“스스로 개척하라” 젊은이 향해 메시지“살아생전에 김포 덕포진(德浦鎭·사적 제292호) 본진에 대한 발굴·복원이 이뤄진 것을 보고 눈감는 게 마지막 남은 소원입니다.”김기송 전 김포문화원장(83·김포 대곶면 신안2리)은 최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덕포진은 군사용어로 설명하면 전쟁하는 전방 진지, 즉 OP”라며 “덕포마을에 본진지가 있는데, 포탄저장고(화약고) 등을 발견했지만, 현재 복원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라며 이같이 밝혔다.현재 마을에 있던 화약고 건물도 사라지고, 사유지인 우물지 등에 대한 재산권 행사가 묶이거나 막대한 발굴비용 탓에 복원은 정지된 상태다. 김 전 원장은 “통진읍지에 보면, 본진의 건물 규모와 배의 숫자 등이 나와 있는 상황인데, 복원은 더딘 상태”라며 “귀중한 문화재가 더 훼손되기 전에 조속한 시일 내에 복원할 것”을 정부 당국에 주문했다.덕포진 발굴 초창기, 2.4㎞에 달하는 진입로를 개설하는 등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덕포진’을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김 전 원장. “덕포진 복원을 위해 평생을 바친 헌신, 그리고 막대한 비용을 조달키 위해 내놓은 사재만 해도 어마어마하다”는 게 그를 아는 동네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리다.이 같은 결과가 있기까지 세간에 떠도는 그를 둘러싼 갖은 억측과 지적들에 대해 김 전 원장은 한마디로 ‘허튼소리’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돈을 벌려고 했다면 이 일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겁니다”라며 목청을 높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김 전 원장 슬하의 2남3녀는 덕포진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그 흔한 재단 하나 만들지 않았다. 박물관이나 기념관 등을 사재로 만든 뒤 공공기관에 기부, 종신직 관장을 하는 등 물러나지 않으려는 잘못된 세태와는 사뭇 다른 그의 행보가 폐부에 와닿았다.모든 공과를 뒤로한 채 덕포진을 둘러보던 김 전 원장은 “덕포진이, 아니 역사적으로 김포가 수도 서울을 지키는 길목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수도 서울의 길목을 지키는 목 진지인 토성 ‘덕포진’은 병인·신미양요때 외세의 공격을 막아낸 가장 중요한 역사현장이기 때문이다.김 전 원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심이 없는 ‘진실’로 느껴졌다. 그는 평생 거짓말 안 하는 것을 ‘철칙’으로 알고 살아왔다고 했다. 김 전 원장은 “부산서 3년간 군 복무를 할 당시 숫자를 늘리고 줄이는 거짓말에 환멸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 때문인지 김 전 원장은 일찍부터 기록에 남달랐다. 일기장에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써 온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사관이 쓴 ‘사초 일기’나 다름이 없다.1961년부터 써온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원장의 일기장에는 손돌제 복원에 이어 덕포진 발굴 및 복원 등 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손돌제 진혼제(1970년 4월 6일)를 드린 날, 경기도의 한 공무원에게 들은 ‘덕포진이 여기에 있다’는 말 한마디에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뀌고 말았다.꿈에서까지 덕포진을 찾아다녔다는 초기 3개월 동안을 술회하던 김 전 원장은 “손돌공이 꿈에 나타나 덕포진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고 말하며 빙그레 웃는다. “마을 사람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잊혀진 덕포진의 포대가 있을 법한 곳에서 서광이 비치는 꿈을 꿨으며, 1970년 9월 30일 벼를 베기 위해 산 일꾼 10여 명을 투입, 4~5m를 파고 들어가니 포대가 나와서 발굴하게 됐다”고 전한다.그러나 덕포진의 발굴은 김포의 한 촌부가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다. 덕포진을 발견한 이후 문화재청과 경찰서 등에서 경비를 세워 김 전 원장의 사적 접근을 통제했다. 마음대로 접근했다간 도굴범이 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문화재청 전문위원 외에는 아무도 삽질을 못 하게 하면서 발굴은 지지부진해졌다.그가 포대를 처음 발굴한 지 10년이 지난 1980년 5월, 대대적인 발굴 결과 포대 15개소, 화포 6문이 출토됐고 각 포대에 공급하는 불씨를 보관하던 파수청 등 덕포진 일원이 복원됐다. 한강과 염화강 등에 의해 서해로 쓸려갔던, 강화해협에 묻혔던 ‘덕포진’이 역사물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김 전 원장이 다음 세대에 반드시 남겨주고 싶은 보물은 바로 ‘덕포진’. 세계의 각 나라가 조상들이 남겨준 문화유산으로 먹고 산다고 역설하는 그는 “역사문화도시인 김포에는 세계문화유산 장릉과 문수산성, 덕포진 등 국가사적이 많이 있는 만큼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잘 발굴·복원하면 후세에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김 전 원장은 사회공헌 활동가였다. 그는 1963년 7월 김포 대명초 맞은 편에 중학교 과정의 ‘신명학당’을 세우고, 선생님과 100여 명의 학생을 모아 가르치다 3년 만에 문을 닫기도 했다. 또 1970년대 새마을운동 이전엔 재건운동을 벌였다. 새마을 지도자로 마을복원사업을 펼치던 김 전 원장은 마을문고 등 6개 단체 3천여 명을 담당하는 새마을회 김포지회장을 역임하며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김포시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여전하다. 그는 “다리 10여 개를 통해 고양과 서울·인천 등지에서 김포로 오가는 만큼 김포시는 인공섬이 됐다”며 “검단신도시 등을 김포로 편입해 온전하게 하나의 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속한 시일 내에 김포 섬을 온전하게 하나의 섬으로 만들기 위한 행정체제개편을 단행할 때만이 김포시의 미래가 열릴 것”이라며 통일시대의 김포를 꿈꾸기도 했다.김 전 원장은 젊은 세대에게 “본인이 나아갈 길, 즉 목표를 세워서 부모 재산 등에 기대지 말고 부모나 형제에 부담을 주지 않고, 나 스스로 개척해서 지역의 작은 일꾼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또 참으로 어려운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늙었다 한숨 쉬지 말고, 일찍 일어나 비닐봉지 하나 들고 담배꽁초라도 주워담는 게 스스로 운동하는 거고, 지역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것이다”며 “젊은 사람들의 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동참을 촉구하기도 했다.■김기송 전 원장은?▲ 1933년 수원 출생(83세)▲ 서울 마포고 중퇴▲ 1970~1990년 덕포진 발굴 및 복원추진위원장 ▲ 1984~1988년 김포군 새마을지회장 ▲ 1991~1995년 김포시 4·5대 문화원장 ▲ 2002~2010년 김포시 노인대학 총동문회장/글=전상천 지역사회부(성남) 기자 junsch@kyeongin.com▲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1872년 강화부지도’를 가리키며 사적 292호인 덕포진 본진의 발굴 및 복원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는 김기송 전 김포문화원장. “생전에 꼭 덕포진 본진이 복원돼 수도 서울을 지켜왔던 김포의 역사적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역설한 김 전 원장은 “덕포진을 다음세대에 온전하게 복원해 물려주는 게 마지막 남은 소원”이라고 말해 듣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김포시 제공

2015-07-07 전상천

[인터뷰… 그] ‘여성 최초’ 수식어 줄잇는 김선미 LH 평택사업본부장

■입사 당시 상황과 기억에 남는 현장은?男동기보다 먼저 현장경험 처음엔 막막희소성 탓에 인정도 빨리받아 전화위복부천서 주민갈등 해결하면서 많이 배워■개발광풍 평택지역 사업계획과 전망은?삼성의 고덕투자, 경제활성화 효과 예상시가지 인접 소사벌지구 인구 유입 기대고덕신도시 판매 ‘현장사령관 역할’ 최선■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에 해주고 싶은 말개인 삶·가정이 우선이란 말 공감하지만조직은 열심히 하는 직원 결코 잊지않아발주 담당자는 갑의 느낌 풍기지 말아야“헌신하면 헌신짝이 되는 요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 게 영광이랄까요.”얼마 전, 취직한 큰딸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던 중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언젠간 알아주니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딸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엄마, 요즘은 조직에 헌신하면 헌신짝 되는 거야.”엄마도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이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모여있는 최고의 공기업 LH에서 ‘첫 여성 부장’, ‘첫 여성 처장’, ‘첫 여성 본부장’ 등 전무후무한 역사를 쓰며 승승장구해 온 비결(?)을 늘어놓기로 한다. 지난 25일 오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 평택사업본부에서 김선미(54) 본부장을 만났다.-지금이야 여직원들도 많지만, 당시엔 건설업계에 입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결혼을 하고 큰딸이 4살 때 입사를 했다. 살림도 나름 즐거웠지만 공부도 할 만큼 했고 대학원도 졸업한 지 얼마 안된 상태였기 때문에 일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또 ‘지선이(큰딸) 엄마’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김선미’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마침 당시 ‘200만호 주택 공급’ 시기라 채용규모가 컸고, 분당·일산·평촌 등 신도시가 조성되던 때라 입사 이후에도 많은 업무를 배우기에 좋았다.아무래도 조직문화가 남성 위주인 데다, 남성에게 유리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입사 3년 차가 됐을 때, 다른 동기들보다도 먼저 분당현장으로 발령이 났다. 당시엔 왜 내가 험한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지 서럽기도 했고, 현장에 근무하는 여직원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막막했는데 오히려 고생을 많이 한 만큼 인정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희소성이 있다 보니 조직 내에서 기억들도 많이 해주셨다. 현장에 가장 먼저 나간 대신, 승진도 가장 빨랐으니 말 그대로 ‘전화위복’이었다.”-여러 현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처음 현장 발령지였던 분당에서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애착이 간다. 하지만 승진 이후 ‘현장소장’ 역할로 근무했던 부천상동지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본사에서 설계업무를 한 뒤 현장에 나가겠다고 했는데, 당시 단장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보내주셨다. 설계와 시공을 소위 원스톱으로 한 셈이다. 그 덕분에 기술자로서 성장할 수 있었고, 소장이라는 책임자로서 인정도 받을 수 있었다.부천 현장은 특히 주민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면서 많이 배웠다. 주민들은 당연히 수준 높은 환경을 요구하고, LH는 주어진 예산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양측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주민들이 퇴근 이후 밤늦게 총회를 원하면 퇴근을 반납한 채 기다렸고, 밤새 요구사항을 들은 뒤 정리하고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도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었다.”-개발 광풍이 불고 있는 평택 현장으로 전국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삼성이 평택고덕산업단지에 15조6천억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2017년부터 반도체 생산라인이 가동될 예정이다. 벌써부터 지역경제 활성화와 경제활동 인구 증가 등의 효과가 예상되고 있는데, LH 역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2008년 이후 부동산경기 침체와 글로벌 외환위기 등으로 사업추진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올해 말 공동주택용지 3개 블록과 이주자택지를 최초 공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8년 하반기를 입주시기로 보고 있다.비전동 일원의 소사벌지구도 상업용지와 주차장용지 등이 전량 매각되는 등 인기가 많다. 소사벌지구의 경우 기존 평택 시가지에 인접해 조성되기 때문에 인구 유입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사업지구 전체면적의 29%가 골프장부지와 붙어있는 청북지구도 다음달 3단계 사업준공을 앞두고 있다.평택 현장의 사령관으로서 올해를 고덕신도시 판매 원년으로 삼고, 성공적인 사업추진에 매진할 계획이다.”-롤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들이 많다. 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큰 딸이 말했듯이, 요즘은 조직에 헌신하는 사람을 보고 어리석다고들 한다. 일보단 개인의 삶과 가정을 중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에도 극히 공감하지만, 사실 조직은 열심히 하는 직원을 결코 잊지 않는다.나 같은 경우 입사 후 15년까지는 현장에서 주말도 없이, 여관에서 며칠씩 밤샘작업도 많이 했다. 똑같은 월급을 받는데 이렇게 한다고 회사가 알아줄까 싶었지만, 지나고 보니 같이 일했던 상사들과 선후배들이 모두 기억하고 있더라. 기회가 되면 좋은 평가도 해주고 추천도 해주는 등 내가 노력한 만큼 나에게 그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특히 발주 업무에 있는 직원들의 경우 ‘갑’의 느낌을 풍길 수 있는데, 조심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현장을 기피하고 사무실 안에서 근무하길 선호하는 직원들에게도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이 있기 때문에 꼭 추천하고 싶다.”■김선미 본부장은?▲ 1961년 12월 11일 출생▲ 1980년 대전여자고등학교 졸업▲ 1984년 서울대 조경학과 졸업▲ 2009년 서울시립대 조경학 박사▲ 1989년 입사▲ 2011년 주택디자인처장▲ 2013년 도시경관처장▲ 2015년~현재 평택사업본부장/글=신선미기자 ssunmi@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김선미 LH 평택본부장이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고의 공기업 LH에서 ‘첫 여성 부장’, ‘첫 여성 처장’, ‘첫 여성 본부장’ 등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 하고 있다.

2015-06-30 신선미

[인터뷰… 그] ‘인천서 가장 오래된 서점’ 대한서림 김순배 대표

■폐점결정 번복 이유 / 시민들에 하고 싶은 말보도 후 만류전화 빗발 애정어린 여론에 놀라잊혀졌다는 생각은 오판… ‘다시 해보자’ 다짐정치적 외도 탓 자책감 들어 부끄럽고 감사해■대한서림만의 힘과 동네책방이 가야할 길은?전국 첫 재고관리 전산화 등 혁신경영으로 버텨백화점식 판매 더이상 안돼 분야별 전문화 필요유아·아동용 직접 고르는 경향있어 경쟁력 충분‘좋은 책은 좋은 사람을 만듭니다’.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대한서림을 운영하고 있는 김순배(71) 대표가 건넨 명함을 들여다 보니 이런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책방 주인임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상투적인 어구 같아 보였지만, 생각해보니 요즘같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를 얻는 세상 속에서 이런 투박한 글귀가 적혀 있는 책방 주인의 명함을 받아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투박한 그의 오래된 명함처럼 1953년 인천 중구에 문을 연 대한서림은 지난 62년간 인천 사람들의 곁을 지켜왔다. 1980~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한서림 앞에서 만나자”란 말이 통용됐을 정도로 이 서점은 인천의 랜드마크로, 시민들이 언제라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큰 역할을 했다.마을 어귀의 고목 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가면 볼 수 있을 것만 같던 대한서림의 폐점 소식이 알려진 건 지난 3월이다. 6층짜리 대한서림 건물 한 가운데 ‘3·4·5층 임대’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걸리고 책방의 폐점 임박을 알리는 경인일보 보도가 나간 후 인천의 가장 오래된 서점, 대한서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대한서림의 기적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됐다. “대한서림 이대론 못 보내….” 경인일보를 통해 대한서림의 안타까운 폐점 소식이 알려지자 인천시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대한서림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중·장년층부터 서점 인근의 학생들까지 대한서림 살리기에 힘을 보탰다. 서점에는 폐점을 만류하는 전화가 매일 수백 통씩 걸려왔고, 직접 김 대표를 찾아와 뜻을 접어달라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혀진 것만 같던 대한서림의 존재는 여전히 건재했고, 김순배 대표는 이런 인천 시민의 관심을 자양분 삼아 폐업 결정을 접고 다시 서점을 되살려 보겠다고 나섰다.지난 15일 오후 중구 인현동에 있는 대한서림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폐점 결정을 번복하기 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1~2년 고민해서 폐점을 결정한 게 아니었다. 1998년 IMF 이후 서점업계가 급속히 쇠락하기 시작했고 인터넷 책 배송 시스템과 스마트폰 보급이 보편화된 이후부터 서점은 그야말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953년 개업한 대한서림을 1978년에 장인 어른으로부터 물려 받아 지금까지 수십 년간 운영해 왔다. 평생을 바친 서점이고 인천 시민의 자산이나 다름없는 이런 대한서림 폐점 결정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솔직히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서점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겠다는 유혹(?)도 여러 번 받았다. 임대 수익과 서점 매출을 비교해 봐도 수익 측면에서는 임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가족들도 서점을 접고 이제는 편히 쉬라는 권유를 해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이런 내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인천 시민들의 관심 덕분이었다.”-경인일보의 폐점 보도 이후 서점을 살리자는 지역 사회 반응이 컸다. “나도 놀랐다. 보도 이후 일을 못할 정도로 많은 전화를 받았다. 시민들이 대한서림의 존재를 잊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 오판이었다. 서울 외지에 사는 동창생은 물론 서점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 대한서림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중·장년층까지,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나를 설득하는데 마치 죄를 지은 것 같고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솔직히 인천시민들이 이렇게까지 대한서림을 기억하고 사랑해 주는 지 몰랐다. 아니 몰랐던 게 아니고 잊고 있었다. 이미 폐업 결정을 내린 상태였는데 이런 걸 보니 잠이 오지 않았다. 밤잠 설치며 수일을 고민한 끝에 다시 한번 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서점이 전 세계적으로 워낙 사양 업종이라 큰 자신감은 없었지만 시민들의 이런 관심이라면 해 볼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시민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대한서림이 지금까지 버텨온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1978년 서점을 물려받았을 때부터 내 서점 경영 철학은 ‘최소의 재고량으로 최고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서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왔다. 내가 서점을 물려받기 전 일반 회사에서 자재관리 업무를 담당했었다. 재고 관리에는 자신이 있었다. 책 재고 목록을 카드로 만든 뒤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그리고 1980년대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런 재고 시스템을 전산화 했다. 당시에는 혁신적인 시도였는데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전산화된 책 재고 시스템을 도입한 서점은 우리밖에 없었다.이런 혁신적인 경영관리 시스템으로 서점을 운영해 왔기 때문에 그 동안 잘 버틸 수 있었다. 여기에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까지 더해져 우리 서점은 서울에 있는 어느 서점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대한서림도 비슷하겠지만 동네 서점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과거처럼 동네 서점들이 백화점식으로 모든 분야의 서적을 판매하는 것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한 분야로 전문화 특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서점을 다시 운영하기로 마음먹은 후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유아·아동용 서적 중심으로 서점을 개편하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 서점 4층은 아동·유아용으로만 채워졌다. 인터넷 배송 서비스 등이 발달돼 있지만 아직까지 아동용 도서는 부모들이 서점에 와 직접 고르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경우도 역사 서적 하면 떠오르는 책방이 있고 문화 관련 책을 사고 싶으면 꼭 가야 할 서점들이 있다. 그런 식으로 특화시켜 나아가야지 그나마 동네서점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시민들의 마음 가짐이다. 책을 가까이 하겠다는 문화적 욕구가 있어야 서점에 올 것 아닌가. 요즘처럼 인터넷만 뒤지면 모든 정보가 나오는 세상에서 동네 서점이 살아 남기가 참 힘든 게 현실이다.” -성원을 보내준 인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인천 시민들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대한서림을 운영하며 7~8년은 서점 경영에 전념하지 못하고 시의원과 국회의원 출마로 외도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대한서림으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는데 나의 이런 정치적 외도 때문에 서점을 잘 돌보지 못해 대한서림이 이렇게까지 됐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폐업 결정을 철회한 후 요즘은 오전 7시에 나와 오후 10시까지 서점에 머물며 일을 한다. 가족들은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 우리 서점을 응원해주는 시민들을 생각하면 마음 편하게 집에서 놀 수 없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 전환점을 경인일보가 만들어 줬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세상이 인스턴트화 되는 상황에서 동네 서점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서점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어렵게 결정한 만큼 인천 사람들과 지역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김순배 대표는?▲1944년 8월 15일 출생▲1961년 인천중학교 졸업▲1964년 제물포고등학교 졸업▲1972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졸업▲1972~76년 동부제강 근무 ▲1977~78년 진흥기업 사우디아라비아 지사 근무▲1991~95년 인천시의회 의원 ▲1996~2000년 인천YMCA 부이사장▲1978년~현재 대한서림 대표 이사/대담=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정리=김명호기자 /사진=임순석기자▲ “폐업 결정을 철회한 후 요즘은 오전 7시에 나와 오후 10시까지 서점에 머물며 일을 한다”는 대한서림 김순배(71) 대표가 서점 책 속에 묻혀 환하게 웃음짓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2015-06-16 이영재

[인터뷰… 그] ‘폐업철회’ 김순배 대한서림 대표

시민들 성원에 빚진 마음보답위해 서점 운영 온힘“유네스코 책의수도 행사市·지역책방 소통 아쉬워”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대한서림은 지난 3월 극심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문을 닫기로 했었다.그러다가 정말 뜻하지 않은 인천시민들의 성원으로 되살아났다.김순배(71) 대한서림 대표는 고심 끝에 폐업 철회를 결정했고,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요즘 그의 서점 출근시간은 오전 7시, 퇴근은 밤 10시가 넘어서다. 시민들에게 빚진 마음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두 서점에만 쏟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올해 초 서점의 폐업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시민들의 격려 전화와 방문이 줄을 이었다”며 “이런 인천시민들의 애정도 모르고 폐업 결정을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대한서림을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했다.그는 “용기를 내 다시 서점을 운영키로 한 만큼 후회 없이 대한서림을 이끌어 나갈 계획”이라며 “최근 4층을 아동과 유아 서적 분야로 전문화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김 대표는 인천시에서 올해 진행하고 있는 유네스코 책의 수도와 관련해 따끔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런 세계적인 행사를 치르는데 인천시가 지역 서적계와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는 시간 한 번 가진 적 없다”며 “책과 관련한 깊은 고민 없이 행사를 위한 행사만 열리는 것 같아 아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소나기 한 번 온다고 가뭄이 해결되지 않듯 이런 일회성 행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책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자치단체 차원의 체계적인 도움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

2015-06-16 김명호

[인터뷰… 그] 30년 넘게 ‘독도는 우리땅’ 외쳐 온 ‘한민족 응원단장’ 정광태

■현충일 맞아 독도 다녀온 소감은?매년 4~5차례 찾는데 매번 느낌 달라어르신들 태극기 꺼내들때 가슴 뭉클반짝 요란 말로만 하는 애국 반성해야■국민가요 탄생 배경과 독도 인연은?개그프로서 처음부른 뒤 정식 음반취입홍순칠 대장이 ‘명예 독도군수’로 임명출입통제 시절 해경초청으로 첫발 디뎌■노래탓에 우여곡절도 많았을텐데…5공 실세 과잉충성에 ‘방송정지’ 겪어日비자 거부당해 대사관서 욕 퍼부어50년쯤 일본 지배했으면 속시원할 것일본 시마네현이 최근 자신들이 주최하는 연례행사인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2월 22일)’ 기념식을 정부 행사로 승격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요망(要望)서를 중앙정부에 전달했다. 요망서에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를 일본 단독으로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는데, 우리로선 참으로 ‘요망(妖妄)’한 공문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이 대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돌섬 ‘독도’를 ‘죽도’라고 우길 때 마다 생각나는 노래가 바로 ‘독도는 우리땅’이다. 2분 25초의 짧은 곡이지만 일본이 허튼 짓을 할 때마다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해주는 응원가요, 국민가요다. 가수 정광태(60)는 맨 앞에 서 목청을 높이는 응원단장이 된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9일 오전 응원단장을 자택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독도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일본을 50년 이상 지배해봤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다”는 농 섞인 표현부터, “명명백백한 우리 영토인데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후손들이 뭐라고 하겠는가”라는 진지한 표현까지, 그는 노래 가사 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다.-현충일을 앞둔 지난 4일에도 독도를 다녀왔다.“‘제2회 경기도민과 함께 하는 울릉도-독도 탐방 및 독도포럼 행사’ 참석차 다녀왔다. 경인일보 행사여서 이렇게 인터뷰까지 해주는 건가.(웃음) 독도 땅을 처음 밟은 1984년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매년 4~5 차례씩 독도를 방문하는데, 매번 느낌이 새롭다. 독도 접안에 성공한 돌핀호에서 어르신들이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며 내리시는데 어느 순간 가슴 한 켠이 저려오기 시작하더니, 뭉클해졌다. 직접 보지 않고는 절대 느끼지 못할 감정이다. 이 어르신들이 어떤 분들이냐. 아픈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부딪혀온 분들이다. 후손들에게 떳떳하려고, 부모된 도리를 다하시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독도 땅을 밟으신 것이다. ‘스스로 주장하지 않은 권리는 보장받지 못한다’는 국제법 조항을 들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말로만 애국하는 이들은 고개 숙여야 한다.”-‘말로만 애국자’들에게 할 말이 많은 것 같다.“마지막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는 패망 이후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조선인들은 (식민교육으로) 서로 이간질하며 싸울 것이다.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는 망언을 했다고 한다. 이 독종 총독의 후손이 바로 현 아베 총리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냐. 무슨 때만 되거나 일본이 망언을 하면 반짝 요란을 떨다 이마저도 금세 사라진다. 말뚝 테러에 이어 또 다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심한 모욕을 줬는데도 흐지부지다. 실천적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이한기 저, 한국의 영토 중)’는 문구를 되새겨야 한다.”-많이 들어본 질문이겠지만 국민가요 ‘독도는 우리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1982년 당시 ‘유머 1번지’라는 KBS 간판 개그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씨 이렇게 4명이 포졸복을 입고 ‘독도는 우리 땅’을 코믹하게 불렀다. 이후 레코드 제작자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 넷이 약속장소로 나갔는데 제작자가 약속 시간을 훌쩍 넘겨 왔다. 바빴던 나머지 3명은 이미 자리를 떴었고, 할일없어 혼자 남았던 나만 음반취입을 하게 됐다. 얼마 후 ‘젊음의 행진’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담당 PD의 주문으로 이순신 장군 복장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신인 가수라 얼굴을 알려야 했는데, 한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다. (웃음) 하지만 다음 해(1983년) KBS 남자가수 신인상을 수상했다.”-노래가 독도와 인연이 됐다고 보면 되나.“맞다. 지금은 돌아가신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1954년께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 순시선을 총칼로 물리친 일화로 유명한 인물)의 초청으로 1983년 7월 25일 울릉도를 처음 방문했다. 홍 대장은 ‘이런 훌륭한 노래를 불러줘서 너무 고맙다’며 나를 명예 독도군수로 임명했다. 월급이 없는 명예직이다 보니 자르는 사람이 없어 지금도 독도군수를 장기집권하고 있다. 1984년 해양경찰청에서 초청을 받아 독도 땅을 밟게 됐다. 지금이야 접안시설이 있어 선박들이 닿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민간인 출입통제 구역이라 접안시설 자체가 없었다. 독도 최초 주민이었던 고(故) 최종덕 할아버지의 작은 배로 옮겨탄 후에야 겨우 독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해경에서 환영의 의미로 예포를 발사했는데 이 같은 예우를 받은 사람은 대한민국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독도 근해에서 최 할아버지의 아들, 딸, 그리고 어부 7∼8명이 작업 중이었는데 이 같은 독도의 산 역사를 아는 인물도 드물다. 그때 미력한 힘이나마 독도에 보태겠다는 다짐이 지금까지 이어졌다.”정광태는 2000년 독도수호대원들과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뗏목 탐험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울릉군청에서 위험하다며 만류해 독도 근해까지 배에 연결해 이동해야 했지만 ‘뗏목 퍼포먼스’로 독도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다음에는 수영으로 독도를 종단했다. 2004년 울릉도에서 출발해 릴레이로 수영을 해 28시간 만에 87.4㎞ 가량 떨어진 독도에 도착했는데 수심이 깊은 곳은 2㎞나 돼 그야 말로 목숨 건 종단이었다. 그때 (사)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길종성 이사장과 인연이 돼 지금까지 ‘독도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2005년에도 33명의 여성들과 두 번째 종단에 성공했다. -독도는 우리땅 노래로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들었다.“5공화국 땐 ‘독도는 우리땅’ 노래가 금지된 적이 있다. 당시 정권 실세들이 알아서 한 과잉 충성경쟁의 결과물이었다. 방송에서 더 이상 내 노래를 들을 수 없었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일본 비자를 요청했을 때 거부당한 적도 있다. 일본 대사관으로부터 비자 발급에 결격 사유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참다 못해 대사관으로 찾아가 욕이란 욕을 다 퍼부으며 비자 관련 서류를 돌려받아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것 같다. 일본을 평생 방문하고 싶지 않고, 우리나라가 50년쯤 지배했으면 좋겠다.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웃음) 금강산을 방문한 적 있는데 북한 안내원이 먼저 알아보곤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가수가 아니냐’고 물었다. 독도는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성소다.”정광태는 ‘김치 주제가’의 인기에 힘입어 1986년 3월 삼양의 김치라면 CF를 촬영했다. 당시 배종옥 등 배우들이 함께 출연했다. “난 그 때나 지금이나 촌스러운 것 같다”고 낮춰 말하지만 우리 민족의 응원단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치라면 씨엠송에 ‘김치라면 어떤 맛일까, 없으면 허전해요’라는 부분이 있는데 정광태 없는 독도, 왠지 허전하다.■가수 정광태는?▲ 1955년 서울 출생. 본적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20 ▲ 서라벌고 졸업▲ 명지대 무역학과 졸업▲ KBS ‘젊음의 행진’ 데뷔▲ 1983년 KBS 남자가수 신인상 수상(독도는 우리땅) ▲ 1984년 독도 첫방문. KBS 가사대상 동상수상(도요새의 비밀)▲ 2000년 독도수호대와 울릉도∼독도 뗏목탐사 ▲ 2004·2005년 울릉도∼독도 수영종단 ▲ 2007년 한국연예제작자협회 이사(현 고문)▲ 2010년 국제대학 연예매니지먼트과 초빙교수 ▲ 2011년 동해해양경찰서 홍보대사▲ 2015년 현재 뮤직라이프엔터테인먼트 대표, 독도명예군수, (사)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명예회장 ▲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2005)▲ 주요 히트곡 = 독도는 우리땅, 도요새의 비밀, 힘내라 힘, 김치 주제가, 화랑관창, 의병대장 곽재우, 계백장군, 광개토대왕 등 다수/글=김민욱기자 kmw@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국민가요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가수 정광태(60)씨가 독도는 명명백백한 우리 영토라며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고 있다. /김종택기자

2015-06-09 김민욱

[인터뷰… 그] ‘지역과 상생’ 유쾌한 반란 일으킨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

■아주대 총장이 된 배경과 비전은?공직 내려놓고 조용히 살려했지만젊은이와 함께 호흡하고 싶어 수락백화점식 계획보다 실천이 중요차별화된 콘텐츠 만들어 갈 것■파격적인 ‘AFTER YOU’ 취지·선발기준은?형편 어려운 학생 국제무대 기회 제공경기지역 타 대학에서 정원 20% 뽑아학업성적 대신 ‘열정’ 등 심층면접반대 많았지만 건강사회 시도■SOS 프로젝트에 대해 / 교육 방향은?학업 포기 위기극복 긴급지원 제도열정 북돋우는 동력 기대실력은 기본 도전정신 중요매력있는 인재로 키울 것우리 대학교 총장님이 다른 대학 학생들까지 유학을 보내준다면?교수와 학생들의 만류에도 지역사회를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대학 총장이 있다. 교내 도서관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했고, 명사 초청 강연도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했다.바로 김동연 총장이 부임한 이후의 아주대학교 모습이다.김 총장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수도권 대학, 지방 대학이 아닌 ‘지역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가감 없이 어필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와 상생을 강조하는 김 총장에게 반란은 ‘현실을 극복하고 변화시키려는 가장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아주대는 물론이고 경기도내 대학가에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는 김 총장을 경인일보가 만나봤다.-32년간 공직생활을 한 뒤 장관급 자리(국무조정실장)를 스스로 내려놓고 칩거하다 7개월 만에 뜻밖에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변신했다.여러 차례 표한 사의가 어렵게 수용돼 지난해 7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지방 농가에 방을 얻어 조용히 지냈다. 물러난 공직자로서 ‘속세’를 멀리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에서였다.총장 후보로 추천됐다는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고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취업난 등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아주대와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법인, 이사회, 심지어 안면이 있는 교수도 전혀 없었다. 급기야 총장 선임을 두고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왔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취임한 지 100일이 막 지났다. 아주대 총장으로서 비전을 말해달라.“총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발전계획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백화점식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우선순위와 순서를 정하도록 하겠다. 특히 아주대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모으도록 하겠다. 그러나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일이 되게 하는 전략과 자원을 동원하는 방안을 고민하겠다.”-파격적인 행보가 눈에 띈다. 학생들과 직접 대화하는 브라운 백 미팅(Brown-Bag Meeting)은 무엇인가.“브라운 백 미팅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총장과 학생들이 격의 없이 소통하는 자리다. 대화를 나누며 간단히 먹는 샌드위치나 햄버거 봉투가 갈색이라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학생은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고,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처음에 학교 측에서 ‘총장님, 지원자가 많지 않을 겁니다’라며 말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지원자가 넘쳐 대기자까지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학교에 대한 건의가 주로 나왔지만, 차례를 거듭할수록 가치관, 진로, 사회 진출에 대한 고민 등 주제가 다양해지고 있다.”-‘AFTER YOU’ 프로그램은 학교 안팎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과거 신분 상승의 수단이었던 교육이 오히려 사회적 지위와 부를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교육의 틀 안에서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을 원활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AFTER YOU’는 ‘나보다 너 먼저’라는 의미다. 어려운 환경 탓에 국제무대를 직접 경험할 기회를 놓친 학생들에게 해외 연수의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항공료, 프로그램 참가비, 숙박비 등을 장학금으로 지원한다. 참가 학생은 올 여름 4주 동안 집중연수와 문화체험을 경험한다.미국 미시간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중국 상하이교통대학 등에 80명을 보내기로 했다. 아주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도내 다른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실제로 미시간대와 상하이교통대의 경우 전체 20%를 경기도 지역 타 대학 학생으로 선발했다. 다른 학교에서 놀라면서 반겼다고 들었다. 아주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타 대학 학생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방식이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학교 안팎에서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건강한 사회란 계층이동이 원활한 사회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계층 이동이 아주대라는 울타리를 넘어 우리 사회로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다.”-학생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했는가.“선발 기준에서 영어나 학업성적은 보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성적이 낮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형편과 열정을 기준으로 선발했다. 서류에만 의존하지 않고 모든 신청자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했다. 필요한 경우 직접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미시간대의 경우 선발된 학생의 절반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소득분위 1등급 이하였다.예산은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로부터 모금 중이다. 한 명이 1억원을 내는 것보다 100명이 100만원을 내는 것이 더 소중하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프로그램의 취지가 널리 퍼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00만원의 기적’이란 이름으로 모금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기부자를 중심으로 참가학생들에게 멘토링도 제공할 예정이다.”-‘SOS 프로젝트’도 직접 기획하고 만들었다고 들었다.“이 프로젝트 역시 사회적 이동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학기 중에 학업을 계속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에 직면한 학생들에 대한 긴급지원제도다. 가족의 실직이나 질병 등으로 학업을 포기할 위기에 처한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이는 어린 시절 부모님 사업이 갑자기 부도나면서 청계천 판자촌과 천막생활을 전전하다 가정 형편 탓에 원치 않게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던 내 경험에서 비롯됐다.당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던 원동력은 허황될 정도로 큰 꿈과 나를 온전히 바치는 열정, 낙관적인 자세였다. SOS 프로젝트는 부득이한 형편 때문에 학생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끔 열정을 북돋우는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신속하게 지원한다는 목표다. 동시에 어려운 학생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학생도 많다는 사실을 구성원들이 알게 되고 일체감을 느끼는 것도 하나의 수확이다.”-아주대 학생들을 어떤 인재로 키우고자 하는가.실력과 매력을 갖춘 젊은이들로 키우고 싶다. 실력은 기본이다. 실력에 더해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학생을 길러내고 싶다. 진정성과 겸손함, 남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매력 있는 젊은이’들로 키우고 싶다. 그래서 아주대 졸업생들에게는 누구나 붙는 ‘아주 프리미엄’을 만들고 싶다.■김동연 총장은?▲ 1957년 충북 음성 출생▲ 덕수상업고등학교 졸업▲ 국제대학 법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美, 미시간대 정책학 석·박사(석사 1991, 박사 1993)▲ 행정고등고시(26회), 입법고시(6회)▲ 2002 대통령비서실장 보좌관(국장급)▲ 2002~2003 美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SAIS) 풀브라이트 교환교수▲ 2002~2005 세계은행(IBRD) 프로젝트 매니저겸 선임정책관▲ 2008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 2012~2013 기획재정부 2차관▲ 2013~2014.7 국무조정실장(장관급)▲ 2015 (현)아주대학교 총장▲ 홍조근정훈장(2011)/글=강영훈·조윤영기자 jyy@kyeongin.com ·사진=아주대학교▲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이 경인일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항공료, 프로그램 참가비, 숙박비 등 장학금을 지원하는 ‘AFTER YOU’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5-06-02 강영훈·조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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