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유산을 찾아서

[경기 문화유산을 찾아서·22] 서애 유성룡과 여주 파사성의 포루

화포 최적화 시설 ‘수원화성 포대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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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성에서 확인된 포루(왼쪽)와 ‘화성성역의궤’ 속 포루 그림. /경기문화재단 제공

1층 대형포·2층 승자총통 배치한 3층 규모 누각 추정
왜란 직후 수차례 방문·축조… 국방력 강화 의지 담겨


‘하늘이 내린 재상’이라 불리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서애집(西厓集)’에서 조선의 특장 무기인 화포의 위력을 최대화하기 위해선 포루의 설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구조와 운용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 내용은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전면에 모두 구멍을 만들 것, 아래로는 천(天)·지(地)·현자(玄字)·총통(銃筒)을 안치시키고 조금 위에는 승자총통(勝字銃筒)을 안치할 것, 맨 위에는 루(樓)를 만들어 활도 쏘고 적의 동정을 관망하는 장소를 만들 것 등으로 요약 된다.



2011년 경기문화재연구원은 여주 파사성(사적 251호)에 대한 5차 발굴 조사를 실시, 성벽에 바로 붙여 만든 부속시설을 확인했다. 이 부속시설은 삼국시대 곡성(曲城)을 개축해 그 윗부분에 축조됐는데, 정면 2칸·측면 2칸의 규모였다.

상부에서 다량의 기와가 출토된 사실로 미뤄 기와건물이었으며, 초석 사이에 돌을 쌓아서 만든 벽체가 일부분 확인돼 건물 외벽은 석축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발굴 결과는 유성룡이 제안한 포루의 구조와 흡사했다. 이에 발굴조사단은 부속시설이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포(砲)를 설치하고 쏠 수 있도록 만든 구축물, 즉 포루(砲樓)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결론은 유성룡이 파사성에 수차례 방문한 역사적 사실로도 입증되며, 파사성에서 확인된 포루 유구는 유성룡의 주장에 따라 축조된 임진왜란 직후의 포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파사성의 포루는 우리나라 포루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인 화성(華城)에 설치된 포루의 시원형(始原形)으로 볼 수 있다.

‘서애집’의 기록과 ‘화성성역의궤’의 내용, 그리고 발굴 결과를 종합할 때 원형의 복원도 충분히 가능하고 이를 기초로 포루의 복원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 모습은 3층의 누각건물로 1층에는 대형화포를 발포하기 위한 시설, 2층에는 승자총통을 발사하기 위한 공간, 3층은 누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1층에는 포혈이, 2층에는 총안이 5개 이상 배치됐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화성의 포루와 기본적으로 비슷한 구조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축조재료는 전축이 아니라 당연히 석축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파사성의 포루는 단순히 포를 발사하기 위한 군사 시설이 아니다. 임진왜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방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유성룡의 의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고학적 자료다.

‘미리 징계해 후환을 경계한다’는 취지로 그가 저술한 ‘징비록(懲毖錄)’의 정신이 담겨 있는 실물이자, 그의 사상과 우리를 연결해 주는 매개물이다. 이러한 파사성 포루가 복원돼 그를 직접 대면하고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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