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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 경기도 소부장산업, 자립화 지원 성과·과제

반도체·자동차·휴대폰 '혁신 마중물'… K-산업 '뿌리기술' 북돋다
입력 2022-07-14 20:35 수정 2022-07-16 22:35
지면 아이콘 지면 2022-07-1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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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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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이 없고 땅덩이도 좁은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건 8할이 '기술력' 덕분이다.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뛰어난 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한 한국인들이 치열한 세계 경제 속에서 살아남는 생존방식이었다.

지금도 그 생존방식은 유효하다. 코로나19 등 대내외 악재로 저조한 경제성장률이 계속되지만, 여전히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제조산업이 우리 경제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최근엔 해외에서만 관심받던 한국의 기술산업이 국내에서도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지난 대선 '기술강국'을 만들겠다는 대선주자들의 공약이 봇물을 이뤘다.



정부 역시 경기도를 '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해 반도체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로 한 것과 더불어 반도체 기술인력 육성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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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전경. /융기원 제공

경기도는 '경제통'으로 불리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민선8기 경기도를 이끌면서 기술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스타트업 육성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아 힘차게 출발했다. 그렇다면 기술강국을 향한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특히 기술의 핵심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지난 정부부터 '국산화' 열풍이 불었다.

대표적인 수출효자종목인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등 완성품에는 튼튼한 소재와 부품, 장비들이 필요한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소부장 산업이다. 특히 소부장 중소기업이 대거 몰린 경기도를 보면 우리 현실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경기도는 2019년 10월부터 3년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융기원)에서 '소부장 자립화 연구지원사업'을 시작해 연간 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왔다.

전문연구원과 소부장 기업의 동행
"대학교 연구실 같죠?"

12일 찾은 융기원 3층 '소재부품오픈랩' 안에 들어서니 각종 실험도구들이 즐비했고 덩치가 큰 실험기계들도 잔뜩 배치됐다. 실험기계들에는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인 시료들이 놓여 있어 기업들의 열띤 연구가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었다.

이 곳은 기술 연구에 매진하는 도내 중소기업이라면 누구나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소재부품장비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장비들이 구비됐고 시료 분석을 위한 전처리실도 구축됐다. 전처리실은 소부장 기업들이 연구를 하면서 가장 애를 먹는 공간이다.

소부장 관련 융기원 사진
'소재부품오픈랩'에서 기업의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기술연구를 하고 있다. /융기원 제공

기업들이 사용하는 황산, 불산 등 각종 시료는 위험물질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준비하고 또 사용한 후 처리하는 모든 과정에 별도의 처리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처리시설은 고가의 비용이 소요돼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소부장 기업들이 부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융기원은 공용 연구공간인 소재부품오픈랩을 만들면서 전처리실을 별도로 설치했고, 기업들이 자유롭게 연구한 후 안전하게 시료를 처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융기원 관계자는 "시료의 보관부터, 사용할 때, 사용 후 처리 등 모든 과정에서 안전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픈랩에서 연구하면 다 같이 한꺼번에 모아 융기원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기업들 입장에선 부담 없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산업 밑거름 '핵심 원천 기술' 국산화 열풍
道, 2019년부터 융기원서 연간 100억 투입 사업
소재부품오픈랩, 장비·시료분석 전처리실 안전
중앙분석지원실, 연구해석 박사급 연구원 의뢰
'문제해결사' 프로그램, 현장 방문·애로 상담도

오픈랩에서의 연구는 단순히 물리적 연구 지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기업들이 연구 결과를 자체적으로 분석할 때 고도의 분석장비와 전문지식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이들 소부장 기업들 대부분엔 연구인력과 예산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결과를 받아들어도 이를 해석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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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분석지원실 내 설치된 'FIB-SEM' (집속이온빔 주사전자현미경). /융기원 제공

이 때문에 오픈랩 옆 공간에는 '중앙분석지원실'이 있다. 중앙분석지원실은 말 그대로 기업의 연구 결과를 분석해주는 곳인데, 융기원 내 박사급의 전문연구원들이 상주하며 전문적인 분석장비를 설치해 기업의 연구 결과를 함께 분석한다는 게 장점이다.

김예경 전문연구원은 "보통 기업들에서 연구한 결과물의 분석을 의뢰하면 우리 같은 전문연구원들이 지정되고 기업들이 원하는 과정을 분석해준다. 기술들이 기업의 영업비밀인 경우가 많아 공개하는 범위 안에서 기업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우리가 풀어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학들도 연구분석실이 있긴 하지만 기업의 접근성이 쉽지 않다. 우리는 전문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보다 편하게 접근하고, 전문연구원들이 의뢰한 기업과 계속 소통하면서 결과를 분석하니 함께 연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실제로 중앙분석지원실은 재이용률이 높은 편이다. 꾸준히 의뢰를 해오는 기업들은 올해에만 30~40곳 정도 되고, 상반기에만 200건 가량의 분석 의뢰를 수행하기도 했다.

전문연구원들은 비단 연구결과만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해결사'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연구원들이 소부장 기업의 현장에 직접 방문해 상담하고 어려움을 듣고 필요한 부분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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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분석지원실에 설치된 XPS(X-선 광전자분광기). /융기원 제공

김 연구원은 "소부장 지원사업은 오픈랩, 분석지원실, 문제해결사 이렇게 3가지로 구분하지만, 사실 경계가 없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프로젝트라고 보면 된다"며 "융기원의 전문연구원과 직원들이 직접 기업현장에서 들은 어려움을 바탕으로 사업을 구성했는데, 서류상으로 만나는 것과 실제 기업현장에서 만나는 것은 천지차이다. 만나서 이야기하면 연구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역할도 하지만, 연구한 기술을 어떻게 상용화 할지, 시장의 분위기는 어떤지 등도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고민할 수 있다. 같이 고민하면서 해결책을 찾다 보니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연구개발 인프라 지원에서 양산연계 지원까지, 경기도 소부장 산업의 꿈
"소부장 산업은 그렇게 간단하고 쉽게 해결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박종만 융기원 경기도 소재부품장비 연구사업단장은 소부장 산업을 지원하며 느낀 소회를 밝혔다.

그는 "빨리 지원한다고 빨리 끝나는 것도 아니고, 지원에 대한 성과물이 즉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라며 "경기도와 융기원이 지난 3년간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연구 지원을 위한 일종의 메커니즘을 만들었다. 지금은 씨를 잘 뿌려 놓은 수준인데, 열매를 맺으려면 길게 시간을 갖고 인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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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만 경기도소재부품장비 연구사업단장. /융기원 제공

박 단장은 이를 '경기도 소부장 지원사업 1.0'이라 말했다. 그는 "소부장 지원사업의 핵심은 어떤 소부장 기업들이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지원사업을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도내 소부장 중소기업을 만나 그들이 원하는 지원방안을 청취하는 일이었다.
'경기도 소부장 지원사업 1.0' 3년간 씨뿌린 시기
경기도 반도체특화단지 지정에 핵심기관 선정
융기원, 소부장 공급·수요 기업 만나는 장으로
테스트베드에 기술상용화 양산연계형 있어야
"대한민국 성장 이끌 심장… 긴호흡 도전해야"

박 단장은 이들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두고 "중소기업의 연구 인프라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만난 기업들이 이구동성으로 토로한 것이다. 심지어 대기업들도 제품을 개발하면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선 분석을 일본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우선 순위로 지원사업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야 진짜 열매를 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기업이 원하는 연구 인프라를 구축해서 중소기업, 대기업들이 이 곳(융기원)에서 연구를 하면 기업들이 융기원을 매개로 모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공급이 가능한 소부장 기업과 이 기술을 구입하고자 하는 대기업 등 수요기업이 만나는 장이 열리는 셈"이라며 "중소기업들이 겪는 큰 문제 중에는 기껏 비용을 들여 기술을 연구해 개발해놓아도 이를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우리가 다음 단계로 구상하는 소부장 지원사업의 모델도 우리 지원사업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사업으로 연결하는 고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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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실험에 필요한 환기시설의 일종인 흄후드에서 중소기업 연구원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 /융기원 제공

이 같은 지원사업의 경험을 인정받아 융기원은 중앙정부가 지정한 경기도 반도체특화단지 지정에 '특화단지 핵심기관'으로 선정됐다. 이를 통해 기술개발을 테스트할 수 있는 1단계 테스트베드 사업도 할 수 있게 됐다.

박 단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도내 소부장 중소기업들이 꾸역꾸역 어려운 절차를 거쳐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1단계 테스트베드 뿐 아니라 실제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이 상용화했을 때 어떤 결과를 얻을지를 볼 수 있는 '2단계 양산연계형 테스트베드'까지 있어야 중소기업의 활로를 열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근차근 한 단계씩 경기도 소부장 기업들이 자라고 있다. 3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 느리지만 정확하게, 소부장 기업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이 성장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다.

박 단장은 "소부장 지원사업이 올해 3년 차로 1단계가 막을 내리고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한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경기도가 대한민국 성장을 이끄는 심장인 만큼 긴 호흡을 가지고 지원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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