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용인시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입력 2024-04-01 19:32 수정 2024-04-01 21:19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4-02 15면

性에 갇힌 번뇌·염원·공헌… '불교 속 여성'에 주목하다


한·중·일 불교미술 걸작품 한곳에
세계 첫 '女의 시선' 조망 전시
각국 공수품·국보·보물 92점 선봬
구상도·관음보살도… 6월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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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실 입구 모습. /유혜연기자 pi@kyoengin.com

그들은 이름이 기록되는 대신 '본보기'로 화폭에 구현됐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인자한 어머니, 혹은 지옥에 떨어지거나 나체로 죽어 있는 불경한 존재. 길게는 수천 년 전, 아시아 불교 문화권에서 당연하게 인식되던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렇다 보니 당시 불교미술을 바라보는 현재 시점의 시선에서도 그들의 자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하는 세계 최초의 전시다.

화폭에서 대상화된 존재였던 여성을 살피는 것을 넘어, 그림 밖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받들고 불교미술을 후원하던 또 다른 여성들에게까지 주목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보스턴미술관, 영국 영국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공수한 작품을 비롯해 국보·보물 등 92점을 선보인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실 모습. /유혜연기자 pi@kyoengin.com

특히 전시실에 자리한 '국내 최초 공개' 타이틀을 지닌 몇몇 유물보다, 이번 전시 특유의 참신한 시선이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전시는 한국, 중국, 일본 불교미술에서 드러나는 당대 여성들의 번뇌, 염원, 공헌을 포착했다.



'성불할 수 있는 사람은 남성뿐'이라는 편견을 은근하게 거스르듯, 여성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받들었다. 이런 수 세기 전의 조용한 분투가 깃든 작품이 과연 동시대에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지도 주요하게 생각해볼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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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실 모습. /유혜연기자 pi@kyoengin.com

전시는 크게 2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1부: 다시 나타나는 여성'에서는 아시아 불교미술이 표현한 여성상의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조선시대와 중국 원대·일본 에도시대의 불전도·구상도·관음보살도·백자 관음보살 입상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의 몸으로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경전에서, 여성의 몸은 집착과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악'이었다. 일본 에도시대의 '구상도(1848)'에서는 이런 인식이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여성의 시신이 부패하는 모습을 기괴하게 그려내며 부정함을 경계한다.

반면 여성의 모성애를 상찬하는 불교미술 작품도 공존한다. 불교의 자비를 모성적인 가치로 인식했던 중국사회는 관음보살의 모습을 차츰 여성으로 묘사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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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도(1848)’, 보스턴미술관 소장(왼쪽).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13~14세기 추정).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부: 여성의 행원行願'은 불교미술을 꽃피웠던 여성 후원자와 제작자를 발굴해 이들의 '주체성'에 주목한다. 이들은 '여성의 몸'이라는 제약 조건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성불을 간절히 염원했다. 법화경에서는 "여성의 몸에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어서 부처가 될 수 없다"고 설파하는데, 이 말을 들은 여덟 살 난 용왕의 딸이 몸을 남성으로 바꿔 성불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를 토대로 왕족 여성들은 불화를 의뢰했고, '감지금니 묘법연화경(고려, 1345)', '유마불이도(중국, 1308)' 등이 제작됐다. 아미타여래삼존이 망자를 극락정토로 데려가기 위해 맞이하러 오는 장면을 수놓은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13~14세기 추정)'는 당시 부정하다고 여겨졌던 여성의 머리카락을 사용해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금동 관음보살 입상(7세기 중반 추정)'도 실물로 만나볼 수 있다. 지난 1907년 부여의 한 절터에서 발견된 뒤,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인이 소유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곡선미가 돋보이는 해당 입상은 어깨와 허리를 미묘하게 비튼 자세를 취했고, 특유의 편안한 미소가 눈에 띄는 등 백제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짐작게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95년 만에 대중에 공개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전시는 오는 6월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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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금동 관음보살 입상이 95년 만에 호암미술관 전시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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