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뿌리를 찾다·1·프롤로그]다시 쓰는 경기·인천 언론史

수도권 첫 한글신문 '대중일보'가 전신

김명래 기자

발행일 2013-08-05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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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연합신문 등 거쳐
언론 통폐합때 경기신문으로
40년만에 제호연혁 바로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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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7월 31일 오후 3시, 경기도 인천시 중구 오림포스 호텔. 경기매일신문 발행인 송수안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성명서를 읽어 내려갔다.

"경기매일, 경기일보, 연합신문은 1973년 8월31일까지만 발간하고, 1973년 9월 1일부터는 새로운 제호인 '경기신문'으로 발간키로 하였습니다."

당시 정부의 언론 통폐합 정책에 따른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연합신문 등 경기도 지역 3개 언론사 통합 성명서였다.

이로부터 1개월 뒤인 8월 31일, 3개 신문사는 폐간하고, 이튿날인 9월 1일, '경기신문' 지령 1호가 세상에 나왔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강제적인 언론계 지각 변동은 이렇게 일어났다.

그리고 경기신문은 10여년 뒤인 1982년 1월 1일자로 9년가량 지켜 온 지령(紙齡)을 변경한다. 인천신문의 창간 연도인 1960년으로 지령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경기신문은 대중일보에서 시작하는 경기매일과 인천신문에서 출발한 연합신문, 그리고 경기일보의 3개사가 통합해 탄생했다는 점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경인일보의 연혁이 되었다. 경인일보는 이제껏 1면에 '1960년 9월 1일 창간'이라고 명기해 왔다. 인천신문의 창간연도와 경기신문의 창간 날짜를 어정쩡하게 섞은 표기였다.

2013년 8월, 경인일보가 1973년 언론통폐합 40년 만에 원뿌리를 찾았다. 그리고 선언한다. 경인일보는 뿌리가 셋 이라고. 해방 후 수도권 첫 지역일간지 대중일보와 그 뒤를 잇는 인천신문, 그리고 경기일보.

경인일보는 언론통폐합 당시 주도권을 쥐었던 연합신문(인천신문)의 정통성만을 인정해 온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경인일보는 이제, 경기매일과 경기일보의 창간정신까지 모두 아우르고 그 통폐합의 아픔까지도 감내하기로 했다.

경인일보는 솥의 발(鼎)처럼 뿌리가 셋이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작은 뿌리 하나만을 근본인양 여겼다. 이제야 경인일보는 원뿌리를 찾았다. 그리고 다른 2개의 뿌리도 모두 솥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삼으려 한다.

경인일보가 애써 외면해 온 뿌리, 대중일보는 언론통폐합 직후부터 전국의 언론계에서 경인일보의 뿌리로 인식해 왔다.

1975년, 한국신문연구소가 발간한 사료집 '한국신문백년'에는 대중일보를 '경기신문의 전신'으로 명기했다.

전문가들까지 경기신문의 전신은 대중일보라고 인식하고, 그렇게 기록했지만 정작 경기신문은 인천신문의 벽을 넘지 못했다.

통합 주도권에 너무 매달린 탓이다. 또한 통폐합의 앙금이 제대로 가시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경인일보는 글로벌 시대에 앞장서는 신문사로서 언제까지나 작은 뿌리에 안주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과감하게 원뿌리를 찾고, 세상에 밝힌다.

이제 경인일보의 역사는 경기·인천 지역 언론사(史)가 됐다. 전국에서 언론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 수도권에서 경인일보가 걸어 온 길에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발자국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경인일보는 새로운 창간 68주년을 맞아 해방 후 대한민국 역사의 고갱이를 담아 낸 경기·인천 지역 언론사를 되짚어 보는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해방 직후 수도권 언론의 태동 과정, 언론 통폐합의 과정, 지역언론의 역할, 사명을 다한 경인지역 언론인들을 새롭게 만나게 될 것이다.

/김명래기자

※창간 연도와 지령 변경은 9월1일자부터 표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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