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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보통 아저씨'를 거부하는 별종들의 '뉴노멀 라이프'

청춘보다 찬란하고 싶은 나이 50
청춘보다 찬란하고 싶은 나이 50
52세 상남자, 난생 처음 고양이와 동거
물린 상처마저도 기분 좋은 '집사의 삶'
등산·낚시보다 공연·패션에 더 큰관심
취미·자기 관리로 '제2의 전성기'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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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집사

그의 손은 할퀴어진 상처로 빈틈이 없다. 거친 손으로 그가 집어 든 것을 깃털이 달린 막대기다. 깃털이 부드럽게 흔들리도록 막대기를 건들거리며 살가운 목소리로 '꿍이야~'한다. 쥐돌이나 캣닢도 꿍이의 관심을 끌기 좋은 물건이다. 간식이 든 통조림은 언제나 '꿍이'를 유혹하는 데 성공적이다.



김모(52)씨는 고양이 집사다. 꿍이(♂)는 그가 섬기는(?) 생후 4개월 된 스코티시폴드다. 아직 집사로서 많이 부족하지만 그는 "내가 꿍이에게 '선택받은 집사'라는 것을 가족들에게도 인정받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4개월 전까지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고, 고양이라는 생물체가 지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살았고, 여가시간에는 술을 마시거나 낚시를 취미삼아 물가를 떠도는 아재였다. 지난 초겨울 그의 스무살 아들이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선언했고, 그는 집에서 고양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생후 25일 된 꿍이를 만난 후 김씨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50년 동안 상남자로만 살았던 그가 조막만한 꿍이와 얼굴을 맞대기 위해 바닥에 납작 업드렸다. 공들여 쌓아올린 가장의 권위를 털어버리고, 함부로 기어오르는 꿍이에게 어깨를 내주었다.

네일숍 만큼이나 낯설었던 팻숍을 기웃거리며 고양이 입맛에 맞는 간식을 고르고, 꿍이의 식사를 준비하며 사료와 소고기의 비율을 고민한다. 낚시터에서 잡아올린 물고기 사진으로 가득했던 그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꿍이 얼짱 사진, 꿍이랑 같이 찍은 셀카, 꿍이가 뛰노는 동영상으로 채워졌다.

가족들의 생활도 조금씩 달라졌다. 아침이 밝으면 김씨의 가족들은 그날의 스케줄을 정리한다. 한 시도 꿍이 혼자 집에 남아있지 않도록 일정을 조정한다. 저녁에 모이면 각자 새로 발견한 꿍이의 습관이나 능력, 그 날의 특이사항 등 정보를 교환한다.

김씨는 이런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회식을 줄이거나 일찍 끝낸다. 전과 달리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흥이 실렸다. 그는 "집에 들어가면 꿍이가 저에게 달려와 그르렁거리며 반겨주고 뽀뽀도 해주며 애정을 표한다"며 "가족들과의 대화도 늘어서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만 나면 사람들에게 고양이 이야기를 한다. 꿍이가 손을 문 상처도 자랑거리다. 애묘인이라면 언제든 친구로 받아들일 태세다. 이제 그를 아는 모든 이가 그를 '집사'라고 인정한다.

# 공연 덕후

박 모(52)씨는 인터넷 공연예매사이트를 펼쳐놓고 신중하게 좌석을 고른다. 앞 열은 가장자리만 좌석이 남아있고, 뒷 열은 무대와 너무 멀다. 지난번 공연장에서 산 오페라 글라스를 생각하니 2층 1열도 구미가 당긴다. 아내와 상의를 하고 클릭을 한다. 예매완료라는 글자를 보고 그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예매한 공연까지 2주가 남았다. 그는 2주동안 행복할 것이다.

박 씨는 2007년 처음 공연장을 방문했다. 그 때는 그저 한 번쯤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지난해에는 한 달에 한 번 이라는 목표를 세웠었고, 모두 19차례 공연을 관람했다. 뮤지컬, 클래식 연주회, 무용, 국악, 연극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대에서 진행되는 모든 공연을 섭렵했다.

1년 중 공연장을 가는 19일뿐 아니라 공연 날을 기다리던 훨씬 더 많은 날들을 그는 즐겁게 보냈다. 이제 스스로를 마니아라고 칭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덕후'라고 놀려도 그러려니 한다. 뭐라고 부르든 그는 인정한다. "제가 공연 좀 봤죠."

그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즐거워 보이네요' 혹은 '젊게 사네요'다. 무릇 중년답게, 50대의 트렌드에 따라 등산이나 낚시를 취미로 삼지 않은 그는 별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친구들 중에 함께 공연장을 가자는 이는 없다.

취미에 관해 박 씨와 대화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보다 어리다. 간혹 공연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도 받는다. 매우 능숙하게 장르를 제시하고 요즘 뜨는, 요즘 가장 핫한, 지금 아니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올해 문화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공연을 소개한다. 듣는 사람이 만족할 때까지. 자신이 공연을 즐기게 된 이유가 '정보력'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 씨는 "모르고 살았던 게 아쉽다. 40대까지는 일하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관심도 못가졌고, 관심이 생긴 후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공연장에 가보니 정보의 길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공연장, 문화단체의 유·무료 회원으로 등록해 잡지나 인터넷 등으로 매달 공연 안내를 받고 있다. 요즘은 국공립 단체가 마련하는 소규모의 무료공연도 즐긴다. 대보름날에는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달집태우기를 즐겼다. 중년 힙스터의 스웨그가 물씬 풍기는 그다.

박씨는 "50대가 되면 취미생활을 하나쯤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해보았는데 공연이 나랑 잘 맞았다. 감동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공연장에 있는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는 게 편안함을 준다"며 "요즘은 공연장에서 내 또래의 부부나 솔플(혼자 온 관람객)러들을 자주 볼 수 있어 반갑다"고 말했다.

# 중년 패션피플

올해 50이 된 이모씨는 최근 급부상한 패피 형님의 기사를 꼼꼼히 읽고 그의 스타일을 면밀히 분석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가 염탐(?)하는 인물은 이규철 특검보다. 인터넷 초록창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연예인 못지않은 다양한 이미지가 뜬다.

사진 속의 그는 버건디, 인디언핑크, 바이올렛 등의 세련된 색상의, 혹은 하운드 체크, 스트라이프 등 패턴이 있는 머플러를 활용해 다양한 스타일을 뽐내고 있다. 코트와의 매치도 적절하다. 검은색 코트에 버건디 컬러를 매치해 시크함을 더하고 과감한 보라색 코트도 더할나위 없이 소화해냈다.

각잡힌 슬림핏 코트에서부터 패딩코트 까지 예쁜 코트는 다 가지고 있는 듯한 그는 코트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 밖에도 꽃중년이나 패잘알(패션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규철은 안경, 가방 등 패션 소품뿐 아니라 도시락 가방으로도 패션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젊은 시절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이씨는 제 2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옷장을 뒤집고, 아내와 함께 쇼핑에 나섰다. 쇼핑몰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이상 지루하지 않다. 15년만에 운동도 시작했다. 그는 "노력하고 있지만 꽃중년이 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특검보가 떠오른것 같고, 패피가 되기를 꿈꾸는 중년들의 희망이 되었다. 그를 보며 느끼는 것은 패션감각도 중요하지만 역시 중년에게 패션의 완성은 자기관리라는 것"이라며 조금 느슨해진 실천 의지를 다 잡았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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