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95]문장부호와 장르문학

경인일보

발행일 2017-11-29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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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나폴레옹의 탄압을 피해 망명 중이던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출판사에 보낸 물음표(?) 한 개와 출판사가 답신으로 보낸 느낌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서신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이 잘 팔리느냐에 대한 위고의 물음에 잘 팔린다 답변한 출판사의 재치문답이었다.

SNS가 일상화하면서 문자가 아니라 이모티콘이나 부호로 대체하여 소통하는 방식이 널리 자리 잡았다. 문학/장르문학의 차이와 특성도 문장부호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추리소설의 신기원을 연 김내성(1909~1957)은 '탐정소설의 본질적 요건'(1936)이란 짧은 논문을 통해서 '탐정소설의 본질은 '엉?'하고 놀라는 마음과 '헉!'하고 놀라는 마음이며, '으음!'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심리적 작용'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퍼즐을 제시하는 도입부가 물음표(?)로 시작된다면, 조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밝혀지는 범인의 트릭과 탐정의 명쾌한 해명은 느낌표(!)로, 그리고 미스터리의 해결(demystification)과 대단원(denouement)은 통쾌한 마침표(.)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루카치(1885~1971) '소설의 이론'(1914/15)은 근대문학예술을 신이 떠나고 총체성이 붕괴된 시대 시작된 문제적 개인의 여정, 곧 숨겨진 총체성을 형상화하고 복원하려는 역사철학적 시도로 본다. 신화시대는 자아와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시대이다.

서사시 시대에는 자아가 모험을 해야 할지언정 위험과 고통에 빠지지는 않으며 결국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이 존재하는 조금 덜 행복한 시대의 예술이다. 근대소설은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영혼과 작품, 내면성과 모험이 서로 일치하지도 않으며, "길은 시작되었는데 여행은 완결된 형식"이다.

즉 물음표(?)에서 시작하여 물음표(?)로 끝나버리는 시대의 예술인 것이다. 더구나 "새로이 도래할 세계를 알리는 조짐은 너무나도 희미하다"며 "그 희망마저 메마르고 비생산적인 힘에 의해 언제라도 쉽사리 파괴될 수 있는 운명에 처해 있다"고 했다.

반면 장르문학은 길이 시작되자마자 여행이 끝나버린 시대, 억지로 모험과 여행을 만들어내고 세계와 자아의 조화를 꿈꾸는 만들어진 서사시―가짜 서사시다.

그럼에도 조화와 희망을 만들어내고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것은 역사철학적 조건상 본격문학과 근대의 문학예술이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려는 소중하고도 억지스런 시도다. 물음표(?)에서 시작되나 기어코 행복한 끝내기(!)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스즈키 슌류(1870~1966)의 말대로 한겨울의 폭설 속에서도 새 생명이 움트고 따뜻한 봄날에는 오이를 먹을 수 있다. 루카치는 이를 간과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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