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의 인사이트

[신지영의 인사이트] 잃을 것 많고 얻을 것 적은 LH 해체론의 '허와 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체된 해경, 2년 3개월만에 복귀 경험

대형사건 정치적 파장 조직 와해로 막으려 했다가 안 좋은 결과

올바른 개혁은 확실해야 'LH 혁신안' 관심 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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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을 해체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한 달 가량 지난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해양경찰청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사고 당시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해경에 대한 징벌적 조치였고, 같은 해 11월 해경은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격하돼 국민안전처로 편입됐습니다. 해경청사 역시 인천을 떠나 세종시로 옮겨졌습니다.

그랬던 해경이 돌아온 건 2017년 7월. 해양수산부 외청으로 해경의 이름을 되찾은 해경은 이듬해 다시 인천으로 청사를 옮기게 됩니다. 2년 3개월 동안 해체, 부활, 복귀라는 일련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해경 해체'는 대형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조직 와해로 막으려 했다가 가장 안 좋은 결과로 되돌아 온 대표 사례로 거론됩니다. '반면교사'인 셈이죠.



'해경 해체'의 실루엣이 다시 한국 정관계를 떠돌고 있습니다. 모습을 바꿔서 말이죠. 바로 'LH 해체'입니다.

반대에 부딪힌 LH 해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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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경제인들 'LH 분할 반대' 기자회견. /연합뉴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LH 투기 사태' 이후 정부가 고심해 마련한 대책에선 물론 'LH 해체'를 직접 거론하지 않습니다. 

'LH 혁신안'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으나 뜯어보면 사실상 'LH 해체', 'LH 재구조화'를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는 걸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많이 보도된 내용입니다만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현재 LH를 모자회사로 분할해 주거복지공사가 통제 기능을 쥔 모회사 역할을 맡고 토지 조성·주택 건설·임대주택 관리 등 기능을 나눠 여러 자회사를 두는 게 LH 혁신안의 내용입니다.

LH 혁신안 내용이 알려진 건 지난주. 사석에서 만난 LH 직원은 "사실상 해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후 LH 본사가 위치한 진주 및 경남 지역, LH 노조(기사 읽기), 참여연대(→기사 읽기)까지 차례대로 'LH 혁신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눈에 띄는 건 민변과 함께 LH 사태를 폭로한 참여연대가 정부 안에 반대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기류가 영향을 미쳤을까요. 당정 협의는 아직 공전하고 있습니다. 여느 때보다 신중한 모습입니다.

LH 해체는 뭐가 문제일까?
진주·경남 지역은 해경 해체 이후 세종시로 옮긴 인천 해경청사의 사례가 눈에 밟혔을 것입니다. LH 혁신안이 관철된다면 헤드쿼터 역할을 맡을 주거복지공사는 어디 위치할까요? 적어도 현 LH 본사가 있는 진주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진주혁신도시의 핵심 기능이 사라지거나 약화되는 꼴이 됩니다.

LH 노조의 반대 주장을 요약하면 한 마디로 '징벌적 해체'라는 것입니다. LH가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야 하지만, 조직을 나눠버리면 각종 공급 대책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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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LH 조직개편 방안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발언하고 있다. 심 의원은 정부안을 '조삼모사'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LH는 2009년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통합해 출범한 공공기관입니다.

출범 이후 물리적·화학적 통합에 상당한 진통이 수반됐습니다. 쉽게 말해 어디 출신이 승진할지, 어디 출신이 고위직을 맡을 지가 조직 내부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돼 버렸고 지금도 주공 출신, 토공 출신 1명씩 공동으로 노조위원장을 맡습니다.

10여년 세월이 흘러 통합이 진척됐는데 다시 조직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때문에 효율적이고 빠르게 공급 대책을 추진해야 할 조직이 분해되면서 3기 신도시와 같은 중요한 정책을 실행하는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참여연대는 '민영화'를 우려합니다. LH 분해가 당장 민영화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그렇게 될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이죠. LH는 개발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임대 주택을 짓습니다.

쉽게 말해 LH 내부 조직에서 토지를 개발한 뒤 상가 용지·주택 용지로 분양하는 부서가 돈을 벌고, 임대 주택을 짓는 부서에서 그 돈을 쓰는 식입니다. 한 회사 안에서야 어딘 돈을 벌고 어딘 돈을 쓰는 구조가 가능해도 서로 다른 회사에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정부 안대로라면 자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을 모회사로 보내 모회사가 임대주택 사업을 벌이게 됩니다. 지금까진 조직 내부의 '교차보전'이었지만, 앞으로는 회사 사이의 '교차보전'이 됩니다.

LH는 필요한 재원을 공사채를 발행해 충당하는데, 수익 사업이 없이 오로지 자회사 수익으로만 운영되는 모회사는 신용도가 낮아 공사채를 발행하기 힘들어 집니다. 장기적으로 공공재원이 투입될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공공재원은 바로 세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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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가 참석한 당정협의회가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지금까지 LH가 벌어서 지었던 임대주택을 세금을 투입해 지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참여연대가 주장 한 대목을 직접 인용해보겠습니다.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수익에 사실상 의존하게 되어 자회사에게 더 많은 수익사업을 벌여 이익을 확대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지주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또 자회사는 지주회사인 공기업이 출자하여 설립한 상법상의 주식회사가 되기 때문에 주식회사인 자회사의 공적 규율이 어렵게 되고, 수익 발생 사업과 적자 사업간의 법인 내부 교차보조가 어려워진다"

LH 해체는 나와는 무슨 관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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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 관계자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개발사업으로 인한 피해 보상 및 LH 해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바로 공공재원 투입 확대에서 일반 시민, 저와 독자 여러분과의 연결고리가 생깁니다. 사실 어느 공기관이 어느 지역에 있건, 어떻게 조직 개편을 하건 일반 시민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업무가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그리고 세금이 들어간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정부에서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과 2·4 대책 등 수도권 사업 물량은 205만호 수준으로 LH가 이 중 60% 수준인 114만호를 담당합니다. 과반 이상이 LH 물량으로 공급 대책에 LH의 역할을 막중한 편입니다. 실제로 정부가 LH에 지나치게 의존해 'LH를 키워준 것'을 LH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 옳은 대책은 무엇일까요? 제 관찰에 따르면 대체로 여론은 적발 시에 재산상 징벌적으로 처벌하는 형태의 대책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한 번 걸리면 폐가망신하게 만들어야 안 한다는 말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강 신호등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LH 내부는 어떨까요? 전 직원에 대한 부동산 조사(직계 존비속 포함), 사업 지구 내 직원 소유는 보상 배제, 다주택자 승진 배제와 같은 대책을 시행하고 있고 또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게 LH 내부 대책의 골자입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수사를 통해 LH 직원 뿐 아니라 지자체 공무원, 지방 공기업 직원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투기를 벌여왔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해체'는 당장의 여론을 잠재우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해경의 사례에서 보듯 불필요한 낭비만 초래할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 명언 중 "사유재산을 훔친 도둑은 족쇄를 차고 살지만 공공재산을 훔친 도둑은 쾌락에 묻혀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공의 것(그것이 정보든 돈이든)을 훔쳐서는 결코 쾌락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게 개혁의 핵심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여론은 공공의 것을 이용한 사익화가 LH 만의 문제는 아니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올바른 개혁은 더딜지라도 확실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곧 발표될 'LH 혁신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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