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의 인사이트

[신지영의 인사이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폐지 후폭풍 등록 임대사업자

등록 임대사업자들, '정책의 신뢰성' 지적

부동산 가격 폭등… 독일식 민간 임대 활성화 실패

차기 대선 주자에게 공 넘어가
오늘 인사이트에선 각종 매체의 경제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등록 임대사업자 폐지의 후폭풍' 기사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이 기사의 맥락을 통해 정책의 속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지난 27일 집권 여당이 모든 주택 유형의 매입임대 신규 등록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주택자인 매입임대사업자가 주택 매물을 내놓도록 유도하기 위해 등록 말소 6개월 내에 주택을 팔지 않으면 양도세를 중과하겠다는 내용과 함께였죠.

후폭풍이 거셉니다. 임대사업자를 투기꾼 취급하고 있다는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방향성은 이미 지난해 7·10 부동산 대책에서 예고됐습니다. 당시는 아파트 매입임대 유형을 없앴고, 이번에는 그 범위를 모든 주택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우선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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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송석준 의원 등 부동산 특위 위원들과 대한주택임대인협회가 14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등록주택 임대사업자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1.5.14 /연합뉴스

등록 임대사업자, 그때는 옳았다
여당의 대책은 경제의 기본인 수요·공급 때문입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부동산 광풍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값 상승이 불러온 세금 증가가 바로 지난 4월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라는 것이 여당의 진단이고, 이런 배경에서 부동산 대책이 나온 것입니다.

집값 안정을 꾀하기 위해선 매물이 필요합니다. 공급이 돼야 시장이 안정화될 텐데, 대규모 공급 대책인 3기 신도시는 아직 청약 절차도 밟지 못했습니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선 시장에 강한 신호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매입임대 신규 등록을 폐지해서 등록 임대사업자가 보유한 매물을 내놓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등록 임대사업자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이 '정책의 신뢰성'입니다. 정권 초기인 2017년 임대사업자 등록을 장려하던 정부가 이제 와서 임대사업자를 '투기꾼' 취급한다는 것이죠. 정부여당은 왜 입장이 바뀌었을까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2017년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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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와 김진표 부동산특위 위원장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관련 정책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1.5.27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초기 정책 입안자들이 독일 임대시장에 관심이 많았다는 건 알려진 사실입니다. 독일은 임대주택의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임대 주택 시장·정책이 발달한 나라로 꼽힙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독일의 민간임대주택 점유 비율은 39.8%였습니다. 자가는 51.7%·공공임대와 사회주택은 불과 8.4%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 임대주택은 사실 민간이 공급해온 것이었습니다. 그 비결은 민간 임대 영역에 대한 공공의 지원. 민간 임대주택 역시 공적자금을 지원하되 높은 수준의 규제로 주거 품질을 유지하도록 한 게 바로 독일 민간 임대의 비밀이었습니다.

독일처럼 자가 의존도를 줄이면(민간 임대를 활성화하면) 자연히 부동산 경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었을 겁니다. 2017년 정부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소득세 중과세 배제와 금융 혜택을 주겠다는 '당근'을 시장에 던집니다. 제대로 등록하고 임대를 주면 공적 지원을 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취득세와 재산세 혜택을 임대인에게 부여하는 대신 임대 의무기간 중 주택 양도를 금지하고,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없도록 하며 임대료 증액을 제한해 임차인 거주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이었죠.

상황은 지난해 급변합니다. '단군 이래 최대 폭'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입니다.

그들은 맞고, 우리는 틀리다
독일식 민간 임대 활성화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부동산 시장에 유래 없는 유동성이 흘러들어 왔다는 것, 그로 인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출렁였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철학적으로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은 주요 도시와 지방 중소 도시가 함께 성장하는 토대가 마련된 국가입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신성로마제국·독일제국·바이마르공화국 시절부터 지방분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한국보다는 국토 균형발전이 훨씬 더 성숙한 편이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은 서울 및 수도권의 종주 도시화·집중화가 극심한 국가입니다. 수도권과 비 수도권의 주택 가격 차이도 심합니다. 나라 전체가 비교적 균일한 부동산 시장인 독일과는 상황이 다르죠.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강력한 임대주택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정책을 집행하더라도 변수가 많게 됩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전국적으로 거의 파괴된 주택을 새로 짓게 됐고, 이 과정에서 임대주택을 다수 건설해 임대주택 정책의 토대가 견실한 반면 전후 산업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택 공급의 양과 질이 변화해 온 한국과는 기본 값 자체가 달랐던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독일식 민간 임대 활성화라는 정책은 실패한 셈입니다. 독일식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어떻게 임대주택 정책을 설계·시행해야 할까요? 그 공은 차기 대선 주자에게 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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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주택임대사업자 세제 혜택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5.27 /연합뉴스

등록 임대사업자, 지금은 틀리다 
지난해 기준 등록된 매입임대주택은 모두 160만여채가 됩니다. 지난해 7·10 대책에선 4년 짜리 단기임대, 8년 짜리 아파트 매입임대를 폐지하면서 자동·자진 말소를 유도해 왔습니다. 현재 100만호 정도의 매임임대주택이 남겨져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정은 이 매물을 임대사업자가 내놓으면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임대 사업자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형평에 어긋난다는 주장입니다.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는데 임대 중인 임대인에게는 감면 혜택을 주기 때문에 세금이 깎이고, 임대 기간 이후 주택을 팔 때는 양도소득세 중과도 배제돼 일반 매매에 비해 특혜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죠.

특히 1가구 1주택, 즉 거주를 위한 주택 외에는 모든 주택을 '투기'로 보는 시각에선 다주택자인 임대 사업자에 혜택을 주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다주택자들이 거주 목적 주택 외에 주택을 모두 시장에 내놓는 것, 그래서 보유세 실효세율 상승과 호응할 때 시장이 안정화 된다는 시각입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선 민간 임대사업자 혜택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지난달 "민간 임대사업자 특혜 폐지는 주택정책의 올곧은 방향성과 의지를 보여주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죠.

하지만 2017년과 정책 지향이 달라졌다는 점만은 명확해 보입니다. 독일을 꿈꾸었으나 불 같이 끓어오른 부동산 시장에 화들짝 놀라 자신의 정책을 거둬들인 꼴입니다. 매입 임대 폐지로 임차인은 거주 중인 주택에 장기 거주가 어려워질 테고, 임대료 상승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청문회 과정에서 등록 임대 주택 제도 폐지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모든 정책에는 양면이 있을 것이나 특히 주거 정책과 같이 생활에 밀접한 정책은 모두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 식이 아니라 갓길이 아닌 대로를 통해 목적지에 가닿는 정책을 기대해봅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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