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인천생활물류쉼터'에 모여든 이동노동자들

입력 2024-01-24 20:53 수정 2024-01-25 01:32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1-25 1면

"몇시간째 빵콜" 한파·불황에 발목잡힌 대리기사 


인천시, 작년 11월 지역 최초 오픈
등록된 이용자 2천여명중 76% 찾아
연일 강추위 지속에 찾는 손님 끊겨
"계양구청·부평역 등도 생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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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3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로데오거리에 체감온도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가 불어닥쳤다. 매서운 한파를 피해 인천생활물류쉼터에 찾아온 대리기사들이 추위로 굳어진 몸을 녹이면서 마지막 '복귀콜'을 기다리고 있다. 2024.1.2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명절 앞두고선 보통 손님이 줄어들긴 하는데 며칠째 이어진 한파 영향에 3시간 넘게 복귀콜은커녕 빵콜(대리운전 배차 콜을 잡지 못했다는 의미)이네요."

24일 오전 3시 인천 남동구 구월동 로데오거리 이노프라자 2층에 위치한 인천시 '인천생활물류쉼터'. 7년 차 대리운전기사 홍승인(61·부평구)씨는 혹시나 배차 콜을 놓치진 않을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홍씨는 전날 오후 8시에 출근해 남동구, 연수구 지역 8곳에서 손님을 태워다준 뒤 여러 차례 방문했던 쉼터를 찾았다. 로데오거리를 도착지로 운행한 덕분에 쉼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고 안도했다. 다른 지역으로 갔더라면 매서운 한파 속에 몇 시간 동안 밖에서 꼼짝없이 새벽 버스를 기다려야 했을 테다.



홍씨는 "물가는 가파르게 치솟는데 대리운전 비용은 5년 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보니 플랫폼 수수료, 셔틀버스비, 차량보험료로 30% 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다"며 "한겨울에는 추위를 피하려고 편의점이나 무인 카페를 이용했는데 이마저도 지출이다 보니 상가 계단에 앉아 첫차를 기다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전했다. 그가 새로 생긴 쉼터를 종종 찾는 이유다.

인천시는 지난해 11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에 따라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열었다. 쉼터는 연면적 181.4㎡의 휴게실, 취업 상담실, 회의실, 취식 공간으로 구성됐다. TV, 안마기, 휴대폰 급속 충전기, 커피 기계, 냉장고, 보관함 등 편의물품이 비치돼 있다. 운영 일정은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익일 오전 6시다.

낮에는 퀵·택배 배달기사, 돌봄·요양 노동자,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등 사무실이 없는 노동자들이, 늦은 시간에는 대리기사가 주로 찾는다. 등록된 이용자 2천여 명 중 76%가 대리기사다. 이어 퀵 배달기사(15%), 돌봄·요양보호사(3%) 등 순이다.

이날 새벽에는 20여 명의 이용객이 쉼터 곳곳에 자리 잡고 쉬거나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이용객 대부분이 대리기사였다. 쉼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들의 표정에는 남들보다 늦은 일과를 끝냈다는 안도감, 장시간 운전으로 누적된 피로감이 교차했다. 여러 차례 쉼터에서 마주치며 안면을 튼 대리기사들은 눈인사로 반가운 기색을 나타내거나 "오늘 몇 콜 잡았느냐"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시간 주점, 음식점, 게임장, 병원이 문을 닫은 거리에는 쉼터 불빛만 새어나왔다. 연일 영하 10도 아래 한파가 지속된 탓에 번화가를 오가는 행인을 찾아보긴 쉽지 않았다. 인근 순댓국집 사장은 평소 2차, 3차 술자리를 찾는 이들을 받기 위해 동틀 무렵까지 영업하는데 "수일간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파 직격탄은 가게 주인은 물론, 취객을 집까지 바래다줘야 돈을 벌 수 있는 대리기사, 음식·물품 배달기사들에게 들이닥쳤다. 휴대폰을 응시하며 로데오광장 일대를 배회하던 한 중년 남성은 "배차 콜 잡기가 쉽지 않다"며 멋쩍게 웃더니 빨개진 귀를 감싸쥐고 종종 걸음으로 쉼터를 향했다.

김남중(56·남동구)씨는 집 방향으로 가는 손님을 태우기 위해 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본업이었던 용접, 패널 조립 업무 중 몸을 다쳐 수입이 줄자 부업으로 했던 대리운전으로 눈길을 돌렸다. 김씨는 "겨울에는 대리운전하기가 쉽지 않아서 주로 봄, 가을에만 아르바이트 삼아 했었다"며 "계양구청, 부평역, 연수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도 늦은 시간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쉼터 영업이 끝나는 오전 6시가 가까워졌지만, 콜을 잡아서 자리를 뜨는 이들은 없었다. 인천, 서울, 경기 김포·수원·화성 등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쉼터 이용객들은 인근 버스터미널, 지하철역, 버스정거장으로 나섰다. 다들 모자, 장갑, 두터운 외투로 중무장한 뒤 휴대폰 배터리 충전기와 잔돈으로 거슬러 줄 현금을 담은 가방을 둘러멨다.

인천시로부터 쉼터를 수탁 운영하는 사단법인 노동희망발전소에 따르면 쉼터 누적 이용객은 3천348명이다. 연일 한파가 이어진 22~24일 이용객은 197명으로, 추위가 덜했던 지난달 비슷한 기간(18~20일) 이용객 130명보다 약 51.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쉼터 관계자는 "갑자기 추워지는 시기에는 쉼터를 찾거나 머무는 이용객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며 "쉼터가 지친 노동자들을 위한 휴식공간이자 상담실, 교육 지원 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 관련기사 (늘어나는 이동노동자… 업계 구조개선·권익향상 '갈길 멀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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