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등 경기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9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 용인서울고속도로 용인방면 하산운터널 입구 경사면 토사가 전날부터 내린 많은 비로 무너져 내려 긴급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2.8.9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
자연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 수도권에서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노인의 단칸방은 물에 잠겼고, 돈을 벌러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는 컨테이너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노인분들 많이 살아 대피 어려워"
"밤에 무슨 일 있을까 잠도 못 자"
지대 낮고 둑 노후돼 빗물에 잠겨
9일 오후 남양주시 퇴계원읍의 신하촌마을. 마을주민 김옥희(68)씨가 물이 흥건한 집안 바닥을 계속해서 닦았다. 몇 년 전 폭우로 지붕이 무너져 보수공사를 했지만 소용 없었다. 16.5㎡ 남짓한 그의 단칸방은 지붕이 새 벽을 타고 흐른 물로 가득 찼다.
김씨는 "우리 마을에는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이 주로 산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분들은 대피하기도 힘들어 도와드려야 한다"며 "이 동네에 40년째 살고 있는데 비만 오면 이러니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잠을 못 잔다"고 푸념했다. 그의 방 벽에는 수십 년의 폭우가 만든 곰팡이 자국이 가득했다.
9일 오후 집중호우로 남양주시 신하촌마을에 침수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50여년 동안 여름철마다 침수 피해를 입고 있는 신하촌마을의 한 집 내부 모습. 2022.8.9 /이자현·수습 김산기자 naturelee@kyeongin.com |
이곳 신하촌마을은 지난 50여년 동안 여름철마다 침수 피해를 겪어왔다고 한다. 약 1.5m 높이의 둑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천을 마주하고 있는데, 마을이 위치한 지대가 낮고 둑이 노후화돼 빗물이 마을 쪽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번 집중호우도 예외는 없었다. 전날 오후부터 내린 많은 양의 비로 신하촌마을은 하천의 수위가 상승하자 배수관이 역류하며 물에 잠겼다. 이로인해 5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어 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남양주시의 한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만난 마을주민 김선래(64)씨는 "집안으로 빗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컴퓨터, 김치냉장고 등 온 집안 가전제품이 빗물에 잠겨 복용하는 약만 챙겨 체육관으로 대피했다"며 "살림이 전부 물에 잠겼는데 지원받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토로했다.
머물던 컨테이너 기숙사 무너져
같은 날 오후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단잠을 자던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 현장. 공장의 기숙사로 쓰던 컨테이너 2동은 흔적도 없이 무너져 있었다. 침대, 책상 등 컨테이너 숙소에 있던 가전제품들은 흙더미에 묻히거나 부서진 상태였다.
앞서 오전 4시27분께 화성 정남면에서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컨테이너가 무너져 중국인 노동자 A(40대)씨가 사망했다. 컨테이너에 머물던 2명 중 60대 남성은 2층에서 뛰어내려 탈출했지만 1층에 고립됐던 A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공장 관계자는 "사고 건물은 집이 먼 직원들이 숙소로 쓰거나 직원들이 편하게 쉬는 곳이었다"며 "A씨는 평소 성실하게 일했던 친구였다. 대비를 좀 잘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폭우로 야간에 한 노인이 엘리베이터에 갇혀 변을 당할 뻔한 사고도 있었다.
전날인 8일 오후 10시 80대 노인이 성남시 서현동의 한 아파트 지하 1층 엘리베이터에 갇혀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엘리베이터 안은 빠르게 물이 차고 있었지만, 다른 피해 신고로 인해 출동이 늦어지고 있었다. 10여분 후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노인은 주민들의 도움으로 자력으로 대피한 상태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피해가 더 크게 발생하자 취약계층을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도 관계자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대책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우선은 상황이 긴급한 만큼 계층 구분 없이 이재민에 대한 임시주거시설 마련과 구호물품 지원, 사상자에 대한 피해 지원을 우선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관련기사 2·9·13면(중부지방에 멈춘 정체전선 영향… 12일까지 집중호우 예고)
/고건·이자현·수습 김산기자 naturel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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