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

[방민호 칼럼] 상생의 공동체 세상 만들기

입력 2023-08-07 19:54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8-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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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뉴스에 우크라이나 드론이 모스크바를 공격했다고 하니,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도 편할 수만은 없는 듯하다. 편하지 않은 게 아니라 큰일이다. 뉴스에 의하면 푸틴 대통령은 징집 연령 상한선을 27세에서 30세로 높이고 소집 영장이 발부된 사람은 출국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싸울 군인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금방 끝내려던 전쟁이 오래 계속되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강화되면서 러시아 청년들이 허무하게 대량으로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탱크 안에서나 들판에서 우크라이나 드론의 표적이 된 병사들이 희생되는 장면을 텔레비전은 전자게임을 보여주듯 송출하곤 한다. 비록 전쟁을 먼저 건 나라의 병사라 해도 꽃 같은 목숨이 아니던가. 우크라이나는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고골을 러시아 작가로 알고 성장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민족적 정서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은 이번 전쟁을 통해서야 비로소 소상히 알려지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를 코앞에 두고 여러 쟁점들이 산적한 가운데 나토 가입을 서둘러 푸틴의 전쟁 정책에 빌미를 제공한 점은 없었던가? 그렇지 않아도 푸틴은 체첸 지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전쟁 상태를 야기함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끌어올리는 지도자가 아니었던가? 두 나라는 비록 지배와 피지배로 얼룩진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전쟁으로 서로를 또다시 살상해야 하는 새로운 비극을 연출하지는 않았어야 한다. 이 전쟁에서 나는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얼마나 현명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봉기로 세상 바로잡고자한 전봉준
젊은 강일순 무고한 희생 염려 거부


고부에서 전봉준이 거사를 일으키고자 하여 같은 고을의 젊은이 강일순을 찾아갔다. 이는 증산교 경전인 '도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정확하게 옮길 수 없지만, 봉기를 일으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한 전봉준의 이야기에 강일순은 무고한 백성이 희생될 것을 염려하며 거부하였다고 한다. 동학군이 결정적인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것은 공주 우금치전투에서였다. 남접, 북접을 합쳐 2만명에 달하는 농민군은 관군 3천200, 일본군 200명에 불과한 병력 앞에서 도륙을 당하다시피 했다. 관군과 일본군의 크루프제 야포, 개틀링 기관총, 스나이더 소총 앞에서 구식 조총으로 맞선 농민군은 몰살에 가까운 희생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이 최후의 결전을 앞에 두고 강일순은 전봉준을 찾아가 임박한 전투를 치르지 말라고 간언한다. 전봉준은 응당 그에 따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죽음을 불사하고 일어난 몸으로, 어떻게 싸움을 중도에 그칠 수 있었을 것이냐.

나중에 강일순은 동학의 노선과는 다른 자신의 논리를 '해원상생'으로 요약 제시한다. 원한을 풀어 서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다. 역사는 항상 외부, 내부의 적대적인 세력들의 각축으로 전개된다. 추상적으로 말해 각축이라 했지만 실상 그것은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죽음, 희생, 피를 의미한다. 이 적대적 투쟁의 논리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상대방이 막강하고, 무력으로 지배, 억압을 행사하려 할 때 '해원상생'은 자칫 그러한 '적'에의 투항이자 비굴한 타협으로 여겨지기 쉽다. 바로, 강일순의 '도' 또한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에 대한 회유의 논리로 악용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과연 로마 제국이 유대인들을 피로 다스릴 때, 유대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로마 병사 하나하나를 쳐 없애 해방을 이루자는 논리를 부정하기 쉬웠을 것인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떤 현실성도 없는 공론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전봉준의 시대에도,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전쟁 때도, 역사는 비정한 적대적 살상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계속되는 '러-우전쟁' 떠올리게 해
적대적 살상논리 따라 움직인 역사
'함께사는 인류 공동체' 필요한 오늘


바야흐로, 세계가 지금 요동을 치고 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미국의 러시아, 중국 고립화 전략과 연결되어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정파적인 대립, 반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모든 다툼은, 함께 사는 인류 공동체, 민족 공동체라는 공통의 목적에 의해 조율될 수 있어야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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